올해 완화 농수산물 등 30만원까지
퇴계는 출처·명분·공유·답례 원칙
지역 단체장·유지들 기념품 고민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건 어떨까

설 준비 모습도 설이 다가옴을 느끼게 한다. 가족들이 음식을 만들고, 떡을 굽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정겨움에서 설은 묻어난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의 북적거림에서도 설은 재촉받고 있음을 느낀다.
설 명절은 시기적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이다. 온 가족이 설빔과 함께 차례를 올리고 맛있는 떡국과 음식을 나눈다. 서로의 안부와 새해의 복을 나누는 날이다. 지난해를 돌이켜 평소 고마웠던 이웃들에게 감사의 덕담과 선물을 주고받는 나눔의 날이기도 하다.
설 명절의 선물문화는 한동안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다소 위축되기도 했다. 하지만 올 설에는 완화되었다. 설 명절 기간 중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과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상품권은 30만원까지 가능하다. 역사 인물 중 청백리로도 잘 알려진 퇴계(退溪)는 선물을 많이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고 퇴계가 근거 없이 무작정 선물 교환을 한 것은 아니었다. 퇴계학과 선비정신에 조예가 깊은 김병일의 '퇴계처럼'에 나오는 퇴계 이황 선생이 선물을 받는 방법을 소개한다. 우선, 퇴계는 '의리취사(義利取捨)'의 정신이 누구보다 강했다고 한다. '의로운 것은 취하고 이익은 버리라'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퇴계는 남으로부터 선물을 받을 때 네 가지 원칙을 세우고 실천했다. 첫째, 출처가 분명해야 한다. 들어온 선물이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지 분명치 않다'면 철저히 물리쳤다. 둘째, 명분이 명확해야 한다. 왕의 하사품도 책은 받고 말이나 가죽옷은 반환하였다. 셋째, 주변과 공유해야 한다. 선물을 받으면 가족과 친척, 이웃들과 나누었다. 넷째, 반드시 답례해야 한다. 보내 준 사람의 성의와 수고에 반드시 답례하는 것이다.
지난해 8월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화장실 세면대에서 시계를 발견하게 됐다. 시계를 가져와 팀장에게 맡기고, 주인을 찾아주라고 했다. 며칠 후, 한 부부가 와서 시계를 확인하고 찾아갔다.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부부가 방문했다. 부부의 얘기에 따르면 그 시계는 롤렉스였고,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시계라고 한다. 자치센터의 프로그램에서 배움을 이어가고 있으며,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깜빡했었단다. 부부는 차 한 잔을 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뒤로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후 시계 주인이 다시 찾아왔다. 손에 쇼핑백이 들린 채. 시계가 큰 의미도 있고, 고가여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며 쇼핑백을 주고 갔다. 롤빵 정도로 별스럽지 않게 생각했다. 손님이 돌아간 후 선물을 살펴보고 예사롭지 않아 팀장에게 확인을 부탁했다. 팀장이 알아본 바에 따르면 130만원 정도 하는 물건이란다. 그분을 다시 불러야 했고, 선물을 돌려줘야 함을 이해시켰다. 며칠 후 그분은 또다시 고향에서 만든 도라지청을 가져와 고마움을 전하기에 받았다.
동장에게는 지역의 단체장과 단체원, 지역유지들이 가끔 기념품 등 선물을 가지고 온다. 처음에는 어떻게 할까? 고민도 했었다. 그러다 퇴계 선생을 떠올리고 과한 선물이 아니면 받는다. 선물은 모아 직원들 회식 때, 게임을 통해 하나씩 선물로 주고 있다. 물론 선물의 출처도 함께 곁들여 준다. 퇴계가 보여준 실천적 선비정신과 삶을 살기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언저리라도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번 설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서로의 마음을 깊이 나누는 것은 어떨까? 비싼 선물보다 더욱 소중하고 따뜻한 마음의 선물을 주고받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보자.
/장보웅 수원 화서1동장·행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