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서 벗어날수 없다는 좌절
폭음으로 해결하려던 고육지책
또는 빈곤시대의 자화상같기도
칠순을 바라보며 헤아려본 마음

가난의 굴레는 벗어날 수 없다는 체념의 마음으로 폭음을 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탄식의 마음도 있었을 것이라고 지금에 와서 짐작해 본다. 한편으로는 '가난'이라는 것을 세상의 탓으로 돌리려는 마음이 바닥에 깔려있지 않았을까 한다. 제대로 배운 것 없고, 부모 잘 만나 경제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술에 의존한 삶이 아니었을까. "그까짓 예수가 밥 먹여 주냐?"라는 말과 함께 "예수님을 믿느니 차라리 내 주먹을 믿는 게 더 낫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던 것은 삶에 대한 처절한 좌절의 마음을 술로 해결하려는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본다.
아버지의 술주정이 극에 달할 때면 돌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 술이 깰 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렸던 아픈 기억도 있다. 날씨가 따뜻한 계절에는 그렇다 치고 오동지 섣달 혹한의 추위를 밖에서 견딘다는 건 당시에는 지옥이었다. 혼자 떠들다 스스로 잠이 드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려니 가슴이 저려온다.
술은 왜 마시는 걸까? 인터넷을 검색하니 '건강상으로는 하등 도움이 될 것이 없는 식품'이라고 설명한다. 술 자체의 맛으로 마시는 사람이 있고, 기분 내려고 또는 술자리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마시기도 한다고 술을 마시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건강에는 백해무익(百害無益술)이라고 하지만 술을 통해 보다 유연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용되는 것은 분명하다. 특별히 내성적인 사람의 경우 온전한 정신으로 쉽게 꺼내기 어려운 말을 취기(醉氣)를 이용, 본심을 전하고자 하는 이른바 취중진담(醉中眞談)의 정신으로 말이다. 물론 요즈음의 세태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남자들이 군 입대하면 신병으로서 고참병 앞에서 술을 마셔야 하는 이른바 '신고식'이라는 게 있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때부터 술이라는 걸 접하고 술을 가까이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혹독한 경험(?)이 있었기에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던 터라 고참병의 지엄한(?) 지시에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아 곤욕을 치렀던 추억도 있다. 군 제대 후 공직 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게 되었고 지나치게 많이 마실 때도 있지만 귀가 후에는 말없이 잠자리에 드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은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겠다는 어린 시절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려 혼신을 다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술에 의존해 방황했던 아버지의 고단했던 삶.
비록 방법은 온당치 못했을지라도 순수하고 심성 착한 분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 세상에 안 계시지만 그런 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살아 나가야 할 방향을 잡게 해 준 고마운 아버지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를 흉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존경의 의미를 담는 것이기도 하다.
'차라리 내 주먹을 믿는다'라는 말의 의미는 그만큼 살기 힘들고 어려웠던 1960~70년대 처절했던 절대 빈곤시대 우리들의 자화상이었음을 반증하는 표현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인생 황혼기를 살아가는 요즈음 어릴 때 가졌던 한없는 미움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삶에 측은지심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김한섭 광주문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