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 전환후 '제4차 파고' 위기
여름철 흉악범죄 등 경각심 증대
개인 스스로 인지하고 치료 '중요'
부끄러워말고 각종 서비스 활용을
정부, 체감 가능한 시책 실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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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정 前 경기도복지여성실장
지난해 같이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때는 없었다. 6월부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일상으로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국민의 정신건강은 좀처럼 회복되고 있지 않다. 3년여 동안 쌓인 정신적·사회적·경제적 문제로 인해 정신질환, 심지어 자살까지 증가하는 '제4차 파고'를 겪고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에 의한 흉악범죄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정신건강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 마음을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을 촘촘하게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래서인지 '정신건강의 날'인 10월10일을 전후로 국립정신건강센터,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주관으로 1천여 건에 달하는 홍보와 인식개선 행사가 열렸다.

나는 35년여 공직 생활을 하면서 가끔 우울증과 불안증을 겪어 치료받았으며, 퇴직 직후 다시 우울감과 고독감이 찾아오면서 현재 약을 복용하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나의 정신건강 병력을 커밍아웃하면서 그간의 경험, 정신건강 트렌드와 정책의 변화를 토대로 다음 사항을 강조하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개인 스스로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치료를 받는 것이다. 지난 몇년 동안 관련 법률과 제도가 개선되어 정신질환 치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고용, 인사, 금융 등에서의 불이익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 나도 3년 전에 한 건강보험 상품에 가입할 수 있었다. 정신건강 의학의 권위자인 서울대병원 권준수 교수는 정신질환은 특별한 사람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뇌의 질환이라며 전문가의 도움을 청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둘째는 의사의 도움뿐만 아니라 환자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는 계단 오르기 등 비용이 들지 않는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명상과 기도를 병행하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셋째는 각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서비스를 적극 이용할 것을 권한다. '정신건강복지법' 제15조에 근거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정신건강 증진 프로그램의 제공과 지역사회 연계 사업을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1대 1뿐만 아니라 그룹을 조직하여 치료를 돕는다.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각자의 처지와 경험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나아가 자신이, 타인이 정신질환을 극복할 수 있도록 기꺼이 힘이 되어주면서 이타심도 갖게 된다.

사안에 따라서 치료비 일부를 지원해 준다. 수원특례시의 경우 다른 자치단체는 한 곳밖에 없는 데 반해 아동·청소년정신건강복지센터(18세 이하), 성인정신건강복지센터(19세 이상 64세 이하), 노인의 노인정신건강복지센터(65세 이상) 세 곳이 있다.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와 자살예방센터도 각각 별도로 설치돼 있다. 나는 올해부터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마음 건강을 돌보고 다른 사람들의 치유를 도울 계획이다.

올해 1월10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대표적 정신질환으로 꼽히는 우울증 환자가 2018년부터 꾸준히 상승하여 2022년 말 현재 1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조현병, 조울증, 분노조절장애 등 다른 정신질환을 포함하면 이보다 큰 수치일 것이고, 증상이 있는데도 치료를 받지 않는 사람들도 상당수일 것이다. 이 통계에서 특히 주목할 사항은 20대가 20%로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국가미래를 이끌어갈 청년의 마음건강이 취약하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는 올해 1월5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발표에만 그치지 말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시책들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중점적으로 실행해야 할 일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불이익이 사라질 수 있도록 인식과 제도를 개선하는 일과 이러한 장애로 인해 치료를 꺼리는 사람들을 '치료의 장'으로 오게 하는 일이다.

/이세정 前 경기도복지여성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