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방치 문제… 공통적 걱정거리

수치심 못 느끼는 것처럼 대하거나

기저귀 교환 안해 욕창 등도 다반사

 

비언어적 방식으로 감정 표현 확실

신체적·정서적 고립에 시설 꺼려져

개선 없으면 가족들만 부담 떠안아

존중받는 돌봄 환경 마련 한목소리

치매 환자를 요양시설에 보낸 보호자들은 ‘내 부모가, 배우자가 방치되는 건 아닐지’ 걱정한다. 가족들은 치매 환자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보살핌을 받도록 주야간 보호센터나 요양원·요양병원 등 시설에 맡겼지만, 실제로는 수치심 등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살아있는 인형’처럼 다뤄지는 모습을 봐 왔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가 다른 보통의 질병을 치료받는 이들처럼 신체·정서적으로 배려받는 돌봄 환경이 마련됐으면 한다는 것이 가족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경인일보는 10월8일과 11월14일 두 차례 인천 미추홀구 인천시광역치매센터 두뇌톡톡 뇌건강학교에서 치매 환자 가족들을 만나 이 같은 고민을 들었다.

인천 치매 환자 가족들이 지난 14일 미추홀구 인천시광역치매센터 두뇌톡톡 뇌건강학교에서 환자를 돌보면서 겪었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11.18 /박소연PD parksy@kyeongin.com
인천 치매 환자 가족들이 지난 14일 미추홀구 인천시광역치매센터 두뇌톡톡 뇌건강학교에서 환자를 돌보면서 겪었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11.18 /박소연PD parksy@kyeongin.com

조금순(67·부평구)씨는 남편 김용덕(사망 당시 69세)씨의 치매 증세를 알게 된 2009년부터 떠나보낸 올해 4월까지 15년간 간병 생활을 이어왔다.

조씨는 인지 능력과 신체 기능이 떨어진 남편을 일으켜 휠체어에 앉히고 밥을 먹이는 것조차 버거워지자 주간보호센터를 찾았다. 반나절만이라도 숨 돌릴 시간이 필요해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평온한 일상도 잠시였다. 남편은 옷을 흥건히 젖어서 돌아오는 사례가 잦아졌다. 요양시설에서 환자 기저귀 교체 시기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욕창, 습진 등 피부 질환을 앓는 남편을 데리고 병원을 다녔다. 요양시설 간병인에게 “조금만 더 신경 써달라”고 어렵사리 입을 뗐다.

“내가 못 돌봐 시설에 보내는데 ‘우리 남편 좀 잘 봐주세요’ 이런 요구를 해도 되나, 이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저 한마디를 수십 번 속으로 삼켰네요.”

인천 치매 환자 가족들이 지난 14일 미추홀구 인천시광역치매센터 두뇌톡톡 뇌건강학교에서 환자를 돌보면서 겪었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11.18  /박소연PD parksy@kyeongin.com
인천 치매 환자 가족들이 지난 14일 미추홀구 인천시광역치매센터 두뇌톡톡 뇌건강학교에서 환자를 돌보면서 겪었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11.18 /박소연PD parksy@kyeongin.com

조씨는 조금 더 힘이 들더라도 남편을 집에서 보살피기로 했다. 치매 초기에는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집에 찾아온 예비 사위에게 몇 분 전 물어봤던 질문을 되풀이하던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와 자녀 이름을,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을 못 할 만큼 증상이 악화됐다.

남편은 빠르게 잃어가는 기억과 같은 속도로 신체 기능이 저하됐다. 세상을 떠나기 전 2년간은 침대에 누워 지냈다. 그래도 가까이에서 자주 보는 사람을 기억하고, 웃거나 찡그리는 등 비언어적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도 기분이 좋으면 웃었고, 돌보는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채고 찾았습니다. 나중에는 제 몸이 망가지고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요양시설에 보냈는데 2주 만에 떠났네요. 내가 조금만 더 참고 버텼더라면 남편이 익숙한 곳에서 더 편했을 텐데….”

치매 환자 가족은 환자 증상 악화에 따라 치료 부담이 커지면 24시간 돌봄이 가능한 요양시설을 찾는다. “죽어도 요양원은 싫다”고 말했던 부모님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만, 오랜 돌봄에 지친 가족으로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조금순씨가 지난 14일 인천 미추홀구 인천시광역치매센터 두뇌톡톡 뇌건강학교에서 치매 환자였던 남편을 간병하면서 겪었던 어려운 점을 얘기하고 있다. 2024.10.14 /박소연PD parksy@kyeongin.com
조금순씨가 지난 14일 인천 미추홀구 인천시광역치매센터 두뇌톡톡 뇌건강학교에서 치매 환자였던 남편을 간병하면서 겪었던 어려운 점을 얘기하고 있다. 2024.10.14 /박소연PD parksy@kyeongin.com

치매 환자 가족들은 요양시설을 꺼리는 주된 이유로 환자의 ‘신체적·정서적 고립’을 들었다. 요양시설에 있는 치매 환자 상당수는 중증으로, 안전상 식사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을 누워서 지낸다. 가족과 생활할 땐 가까운 곳을 산책하면서 사소한 얘기라도 나누지만, 이 같은 활동이 줄어들면서 증상이 더욱 악화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일례로 한 요양시설의 경우 치매 환자의 안전을 이유로 이동을 제한하고 정서적 교류도 전무했다. 간병인이 오전·오후 정해진 시간에 병실로 들어와 치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거나 기저귀를 갈아주는 게 돌봄의 전부였다. 간병인과 환자가 눈을 마주치거나 대화를 나누는 행위는 없었다. 간병인은 ‘기저귀를 갈겠다’는 말 대신 환자 팔을 ‘툭툭’ 치는 것으로 대신했다.

민정숙(68·남동구)씨는 지난 10년간 치매 환자인 시어머니를 집에서 돌보다가 여력이 되지 않아 요양시설에 맡겼다. 민씨는 “간병인은 한국말을 못 하는 중국 국적이었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며 “간병인은 시간과 인력이 부족한 요양시설 특성상 주어진 업무만 수행하면 되지 환자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귀영(사진 오른쪽)씨가 지난달 8일  미추홀구 인천시광역치매센터 두뇌톡톡 뇌건강학교에서 치매 환자 가족 자조모임 ‘물망초’ 회원들에게 아내를 간병했던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2024.11.18 /박현주 기자 phj@kyeongin.com
소귀영(사진 오른쪽)씨가 지난달 8일 미추홀구 인천시광역치매센터 두뇌톡톡 뇌건강학교에서 치매 환자 가족 자조모임 ‘물망초’ 회원들에게 아내를 간병했던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2024.11.18 /박현주 기자 phj@kyeongin.com

소귀영(81·연수구)씨는 15년 전 치매 판정을 받은 아내 안정자(82)씨를 위해 많이 하는 일 중 하나가 ‘호박죽 끓이기’라고 했다. 평소 좋아했던 호박죽을 먹으면 여느 때보다 밝은 목소리와 표정을 보이면서 상태도 좋아졌기 때문이다.

“늘 누워만 있으니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바보가 되는 모습을 수없이 봤습니다. 내가 살아있는데 누가 내 가족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싶겠어요. 치매 환자라고 해도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기분이 어떤지 다 알고 있습니다. 묶어 놓고 가둬 놓는 현실이 개선되지 않으면 가족들은 돌봄에서 해방될 길이 없어요.”

인천 치매 환자 가족 자조모임 ‘물망초’ 회원들이 지난달 8일 미추홀구 인천시광역치매센터 두뇌톡톡 뇌건강학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11.18 /박현주 기자 phj@kyeongin.com
인천 치매 환자 가족 자조모임 ‘물망초’ 회원들이 지난달 8일 미추홀구 인천시광역치매센터 두뇌톡톡 뇌건강학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11.18 /박현주 기자 phj@kyeongin.com

65세 이전 인지저하증상이 발현된 초로기(初老期) 치매 환자의 경우 환자는 물론, 가족도 돌봄을 위해 생업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잦다고 했다. 가족들은 치매 환자에게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거나 가족이 돌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공고히 다지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가명을 요청한 김지원(59·부평구)씨는 “남편이 초로기 치매 판정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7년간 근무했던 고등학교 전문상담사를 관둬야 했다. 당시 자녀 넷 다 독립하기 전이라 눈앞이 캄캄했다”며 “발달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례처럼 치매 초기 환자에게도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를 제공하는 제도가 활성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씨의 남편은 인천의 한 공기업에서 노인 시설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다가 치매 판정을 받은 뒤 곧바로 업무를 그만둬야 했다.

※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