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남 (공공정책硏 SNP대표·성결대겸임교수)
[경인일보=]이명박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표방하면서 녹색이 사회적 화두로 재차 강조되고 녹색주의 실천을 위한 다양한 전략이 제시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한 방안으로 지방자치단체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대한 논의와 실천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1994년 메가리드 헌장은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특성 존중 : 보행ㆍ자전거에 우선권 부여, 대중교통수단 중심체계 확립' 등을 주요 의제로 다루고 있다. 또한 1996년 뉴어바니즘 헌장은 대중교통중심개발을 내세우며 '친환경 보행로 조성, 도보권내에 시설의 배치' 등을 강조하고 있다. 1990년부터 강조되기 시작한 스마트성장도 '보행중심의 네트워크 구축과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네트워크 구상'을 주요 실천과제로 삼고 있다.

한편, 네덜란드의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률은 27%로 자전거 이용자 1일 이용거리는 2.5㎞이다. 덴마크는 자전거 통근비율, 자전거 위험도,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의식, 시내 자전거 주행속도, 자전거 이용 중 사상자 수 등 자전거 지표(Bicycle Account)를 2년에 한 번씩 조사하여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시는 2001년 25%인 자동차 이용률을 2020년까지 17%로 줄이고 자전거 등 기타 교통수단 이용률을 75%에서 83%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런 가치와 적용을 가지고 우리의 자전거 정책을 돌아보면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부끄러운 것이 현실이다. 당시 내무부 주관으로 자전거 정책이 시작된 건 20년도 훨씬 넘었다. 그러나 아직도 정확하고 유용한 통계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하다. 보도위에 줄만 긋고 자전거도로라는 이름을 붙인 채 우린 그냥 시간을 보내왔다. 이렇게 부실한 자료 위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는 정책이 수립될지 의문이다. 그래서 재탕 정책과 충분한 비교 검토없이 선진사례랍시고 외국 것을 베낀 복사기 정책이 되풀이되고 있다. 멀쩡한 보도를 뜯어내고 자전거도로를 만드는 무지함과 쇼맨십, 이것이 우리 자전거정책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자전거는 고사하고 인간마저 무시되는 우리의 도시, 편리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는 우리 도심에서 누가 자전거를 타라고 강요할 수 있는가? 그러기 전에 무엇보다 정확한 실태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자전거 이용의 안전성을 높이는 데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새로 건설되는 도시, 도시 재정비사업 등을 통하여 공간구조를 개선하는, 도심에서부터 계획성 있게 보행자와 자전거를 배려하는 인간 중심의 도시로 디자인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모든 것을 일시에 할 수는 없다. 재정 형편, 정책우선순위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여 도시 전체에 대한 공간계획의 틀을 짜고 순차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자전거 이용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가시적 성과에만 집착하여 멀쩡한 보도를 뜯어내거나 재정 부족에 허덕이면서 전시성 자전거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해 온 호박에 줄긋는 자전거 정책을 되풀이할 뿐이다.

2007년 시작된 파리의 공공자전거 대여제도 밸리브(Velib)는 이제 세계 제1의 제도가 되었다. 그 바탕에는 자전거를 이용하기에 안전하고 편리한 도로구조 등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유럽의 도시들처럼 시민의 자발적 이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정확한 실태파악과 인프라의 지속적 확대, 다양하고 편리한 콘텐츠 마련 등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전거 타는 시민이 한 명 더 늘어나기를 바란다면 전시행정에서 탈피해 자전거 타는 것이 안전하고 편리하다는 신뢰를 심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도시공간구조, 교통신호체계, 보행공간에서 인간중심의 가치와 원칙이 자리 잡아야 한다. 도시계획과 사업현장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의 가치가 충분히 반영되고 관련 법규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허겁지겁 내세우는 당장의 가시적 성과보다 철저한 자료 조사를 토대로 3년, 5년, 10년의 장기적인 안전기반 조성과 활성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자전거를 통해 얻고자 하는 가치를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는 바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