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시 사업은 국가균형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것인데, 형평성을 도모하려면 계층간 격차, 즉 사람간 격차를 줄이는 방식을 택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국토 공간 개발밀도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이 잘못된 신념이 혼란의 핵심 원인이다. 국가간의 관계와 달리 한 국가 안에서 사람은 비교적 쉽게 옮겨 다닐 수 있으므로 지역 격차는 사람들 간의 형평성과 별다른 관련이 없다. 1인당 평균소득이 같다면 인구 5만의 도시가 50만 도시로 변하더라도 삶의 질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 힘들고 1인당 평균소득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50만 명 중에 48만 명이 유입된 외지인이라면 형평성 차원에서 무슨 이득이 있는가?
또 다른 문제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헌재에서 위헌판결을 받자 대신 수도를 분할하는 방식이 입법화되었다. 국민투표를 했으면 행정수도 이전이 가능했을 텐데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소수의 이해관계가 불특정 다수의 이해관계보다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의 국민은 피해를 보더라도 피해가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적게 체감되면 강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지만 강력한 이해관계(그것도 사실 착각이지만)를 가진 소수 집단은 목소리가 크고 정치인들은 표와 연결될 경우 이들에게 신경을 더 쓰게 마련이다. 국민투표는 통과 가능성이 불확실했지만 대선과 총선을 앞둔 마당에 정치인들이 세종시에 반대하기 어려워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무난하게 통과되었다.
따라서 세종시 원안 추진을 그 당시 민의의 결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수도가 반으로 나뉘어 겪을 비효율을 감안하면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원안을 수정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은 옳은 일이다. 화상회의 등의 기술을 활용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무리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해도 대면접촉을 대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업무 연관성이 높은 경제주체들이 집적하여 얻는 장점을 전부 대체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다면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한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땅값이 비싼 서울 중심부에 본사를 두려고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세종시 수정안은 첫 번째 실수를 두 번째 실수로 대체하는 것으로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원안보다 더 비용을 들여서라도 원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부지를 제공하고 각종 특혜를 제공하여 기업과 대학을 유치한다면 이는 재정부담의 증가를 의미하므로 다른 지역의 주민이 이들을 지원하는 격이 된다. 특히 여타 혁신도시와 갈등을 빚으면서 전에는 강 건너 불 보듯 하던 여타 비수도권 지역의 반발이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적 합리성에 기반을 두지 않고 정치논리로 과학비즈니스 벨트를 만든다면 세종시 원안과 다를 것이 없고 흉내만 내려다 말려는 것이라면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가 된다. 국가적으로는 언론에서 언급되는 사업비의 반에 반이라도 인천경제자유구역에 투자되면 훨씬 더 효과가 클 것이다.
지금이라도 여야 모두가 국민에게 사과하고 세종시 계획은 백지화하는 대신 생활터전을 잃은 일부 원주민들에게 추가보상을 하고 사업 중단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금융비용까지 포함할 경우 사업비가 우리 돈으로 11조원에 달하고 공정률이 70%를 넘은 얀바 댐의 공사를 중지시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세종시 사업이 백지화될 것으로 예상하는 순진한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혼란을 지켜보면 세종시와 4대강이 중첩돼 떠오른다. 헌재판결로 인해 행정수도 이전이 어려워지자 수도분할을 추진하고,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여론의 벽에 부딪히자 4대강 사업으로 변하는 것은 닮은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적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천문학적인 비용이 수반되는 사업을 대못을 박듯 밀어붙이고 정권이 바뀐 후에 큰 혼란을 겪어야하는 일이 되풀이 된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비슷한 사업이 하나 더 있다. 새만금 사업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