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조영달기자]일본은 우리의 도매시장과 시스템이나 외형상으로 비슷한 점이 많지만 그 실체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산지에서 대형마트, 슈퍼 등과 직거래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 농산물 유통물량의 75%만 도매시장을 거쳐 유통된다. 소비가 많은 과일은 고작 절반만이 도매시장을 통해 거래된다.

하지만 일본 도매시장은 철저한 생산자 중심의 시장논리와 신뢰를 바탕으로 제 2의 부흥기를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최근에는 대형유통업체에 빼앗긴 산지물량 유치에 전력하고 있다. 급성장하고 있는 외식업체에까지 손을 내밀며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편집자 주


# 산지 중심의 일본 도매시장

우리나라와 일본의 도매시장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일본은 도매상과 중간도매상 그리고 생산자가 함께 공존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특히 도매시장에서 수의계약을 통해 대형마트나 슈퍼에 납품하는 비중이 높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형유통업체들이 바이어를 통해 산지와 직거래하는 형태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GS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유통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간도매상 역시 도매시장, 대형마트 등에 납품하는 밴더로서 활동이 활발하고 영향력도 강한 편이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는 가격이 200원인 신선 과일을 대형마트에서 100원에 판매하려고 이를 산지에 요구한다거나, 중간도매상이 대형마트 요구가격에 맞추기 위해 생산자에 전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스란히 생산자가 부담을 떠안게 된다. 반면 일본은 중간도매상이나 도매시장에서 거래 자체를 거부한다. 최근 일본도 중간도매상인 산지수집상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지만, 도매시장 물량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철저히 생산자 위주로 유통시장이 형성돼 있다.

도매시장 납품 비율도 우리나라는 개별농가나 작목반이 주를 이루지만 일본은 개별농가의 위탁을 받은 농협이 70%로 비중이 가장 높고 작목반이 29%, 개인농가 1% 정도다.


# 도매시장은 '가격 투명성'이나 '신뢰'가 기본

우리나라 도매시장은 전자경매를 통해 가격에 대한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일본 최대 도매시장인 도쿄 오타도매시장조차 생산자와 미리 물량을 계약하는 정가수의계약제로 거래되고 있다. 경매방식도 우리나라처럼 전자경매가 아닌 옛날 방식 그대로 수기로 행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곧 가격안정은 물론, 소비자, 생산자 보호를 위한 것이다. 일본은 현재 시장의 가격을 예측해서 판매하는 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년 4월에 나올 물량의 적정가격을 정해 올 11월에 미리 계약하는 형식인데, 부족물량이나 가격 오름세 등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대형유통업체가 산지와 직거래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대형마트나 슈퍼에서도 물량 확보를 위해 가급적 도매시장과 사전계약을 통해 거래한다. 도매시장은 매입 요구가 있으면 중개 역할을 하고, 가능하면 높은 가격을 받아 산지 생산자에게 높은 가격을 보장해 주고 있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대형마트나 슈퍼 등은 소비자가 특정사이즈, 특정상품에만 집중되기 때문에 물량 배분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도매시장의 경우 물량의 품질이 좋지 않더라도 경매를 통해 출하된 상품의 가격을 적정가격에 판매를 시도한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 산지가 살아야 도매시장이 산다

일본의 도매시장이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은 특별한 전략보다는 풍부한 정보를 철저하게 분석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와 슈퍼가 급성장하는 등 유통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실제 오타도매시장에서 가장 큰 법인인 동경청과 직원 500명 가운데 200명 이상이 산지개척 등 영업에 나서고 나머지 300명은 물건 입고나 출고 업무에 종사한다.

지금도 산지의 거래 물량을 늘리기 위해 외식산업에 공급하는 법인과 가공업체에 공급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대형마트나 슈퍼, 외식업체는 산지 직거래를 통해 물량을 조달했지만 최근에는 도매시장을 통한 물량 공급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은 일반적으로 정부가 도매시장 운영이나 물량공급과 관련해서는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중앙도매시장과 지방도매시장간의 역할 분담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지방도매시장은 생산자와 가깝다는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다른 도매시장으로 보낼 것은 보내고, 대형마트에 납품할 것은 납품하는 등 역할 분담을 확실히하고 있다. 중앙도매시장이나 지방도매시장 할 것 없이 '산지가 살아야 도매시장도 산다'는 공통적인 확신만 있을 뿐이다.

※ 인터뷰 / 오타케 이페이 오타 도매시장 동경청과(주) 영업본부 부장

"유통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 다양한 서비스 제공 우선돼야"


오타도매시장의 오타케 이페이(55·사진) 동경청과(주) 영업본부 부장은 도매시장에서 30년 이상을 일해온 베테랑이다.

그는 "일본의 도매시장 유통환경은 주변 환경변화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도매시장도 이런 유통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오타케씨는 "도매시장이 오래되면서 물량은 늘어난 반면 규모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며 "산지 농가와 고객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 제공이 우선돼야 한다"며 도매시장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이어 "고객들의 접근성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주차장 부지 확보가 문제"라며 "현재 고객 유치를 위해 도매시장내 유휴부지를 활용해 3층 건물을 지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신축 건물은 1, 3층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2층에는 분류장과 저온저장고를 설치, 보다 신선한 과일을 공급할 예정이다. 이미 예산 40억원을 확보했다.

농산물 시장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쓰레기 문제다. 오타도매시장의 경우 도쿄시내 도매시장 가운데 가장 깨끗하다고 직원들은 자부한다.

실제 도매시장의 청결을 위해 별도의 쓰레기처리장을 두고 여기에서 1차 분류작업을 실시한다. 자체 소각장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는 방식으로 박스만 소각하고 있다. 이어 오후 1~2시가 되면 자원봉사자가 쓰레기를 정리해서 2차 분류한다. 오후 2시께 전문환경업체가 나머지 쓰레기를 회수해 소각하고 있다.

하지만 도매시장 이전 계획은 늦어지고 있다. "이전은 하고 싶지만 소음과 쓰레기 등으로 이전 예정지 인근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어 여의치 않다. 이전 계획도 벌써 5년이나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오타케씨는 오타도매시장의 거래 물량이 다시 늘어나고 있는데 대해 희망을 갖고 있다.

그는 "오타도매시장은 전국에서 물량이 집결돼 무엇보다 소비자의 선택의 폭이 넓다"며 "산지별로 상품에 따라 가격비교는 물론이고 가격 예상도 가능하고, 무엇보다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신뢰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