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조영달기자]최근 국내 농수산물도매시장의 유통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1996년 유통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도매시장은 소비자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특히 대형마트와 슈퍼, 전자상거래, 외식업체 등이 직거래에 나서면서 도매시장의 역할도 축소되고 있다.

이에 경인일보는 우리나라 도매시장과 일본 현지 도매시장을 찾아 도매시장의 문제점과 개선점 그리고 개선 방향에 대해 모두 4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 '산지와 소비자의 가교' 공영도매시장=1977년 8월 농수산물유통센터 건립방침이 결정되고, 85년 6월 가락시장이 개장됐다. 영세한 소규모 출하자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국내 현실에서는 생산자인 농민이 농산물을 손쉽게 판매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도매유통기구가 바로 도매시장이다. 특히 '농수산물가격안정에관한법률'(이하 농안법) 규정이 적용되면서 ▲모든 반입상품의 도매시장법인 상장은 물론 ▲중도매인의 상장물건 외 취급금지 ▲공개적인 경매·입찰거래 ▲수탁거부 금지 ▲판매즉시 대금 지급 ▲경매가격정보를 공개하게 됐다.

현재 전국 33개 공영도매시장의 청과물 거래량은 연간 7조2천억원에 달한다. 전체 국내 유통되는 농산물 거래량의 45% 이상이 도매시장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락시장이 3조원으로 중앙도매시장에 집중되고 있다. 경매방식은 경매사가 손으로 나타내던 수지식에서 최근에는 무선응찰방식인 전자식으로 바뀌었다.


# 베일에 가린 '경매사'=경매사는 경매사자격증을 가진 도매시장법인 소속의 직원이다. 이들은 경매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가격평가와 경락자를 결정하는 도매시장의 핵심 인물이다.

그들은 내정가격을 책정하기 위해 품목에 따라 ▲작황 ▲모양 ▲색깔 ▲당도 ▲생산원가 ▲해당출하자 신뢰도 ▲포장재 ▲재고량 ▲당일 반입량 ▲산지·타시장 가격 동향 ▲날씨 ▲소비자 구매동향 등을 사전에 파악해 경매 예상 가격을 정해둔다. 여기에 특정물량에 중도매인이 집중되지 않도록 분산시켜 적정가격을 받아내는 것도 경매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경매사가 흔히 경매도중에 내뱉는 소리는 먼저 ▲생산지와 출하자이름 ▲품목 ▲등급 ▲단위 ▲수량 등의 순이다. 이들은 중도매인들이 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도록 의미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후렴구를 넣기도 한다.

# '위기의 도매시장'=최근들어 도매시장의 점유율은 점점 정체되고 있다. 공급대상이 소매점 중심에서 가공업체, 외식업체로 다양화됐기 때문이다.

현재 대형소매점의 점유율은 13.5%에 불과하지만 매년 직거래가 확대되고 있다. 소비지와 인접해 있는데다 거래 품목이 대중적 품목을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도매시장보다는 소비자들에게 친숙하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도매시장의 중도매인과 유사시장 위탁상, 시장도매인, 산지수집상, 산지조합, 작목반, 영농조합법인, 대농 등을 벤더화해 경쟁을 통한 구매원가 절감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농산물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전자상거래의 확대도 농산물의 규격화, 브랜드화 등 농산물의 차별화에 가속도를 붙이면서 도매시장을 위축시키는 이유다.


# 그들만의 리그 '상장예외 품목'=도매시장법의 경매를 거치지 않고 상인이 물건을 가져와서 알아서 판매하는 방식이다. 수의계약이나 상대매매가 가능하다.

여기에 해당하는 품목은 무, 배추 등으로 수원이나 구리, 가락시장 등 전국 7곳에서 상장예외품목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들 품목은 가격기준이 없어 투명성이 약한 것이 대부분이다.

가락시장에서 거래되는 162개 품목가운데 112개 품목이 상장예외품목이고 나머지 49개 품목이 정상적인 입찰을 통해 거래된다. 하지만 매출 면에서는 40% 정도를 상장예외품목이 차지한다.

※ '도매시장 1번지'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밤 11시 긴장감도는 활기… 전국시장 '가격기준'

지난달 20일 밤 11시,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은 늦은 밤이 돼서야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기자를 맞은 것은 주차장에 늘어선 4.5t 트럭 30여대. 이른 새벽부터 전남 해남 등 전국 산지에서 올라온 트럭에는 3개씩 한망에 묶인 배추가 한가득이다. 이 배추는 보통 8등급으로 나뉘어 판매된다. 한 트럭에는 보통 800망 정도가 실려있다. 가격으로는 180만~220만원 정도.

이어 청과물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싱싱한 과일이 한눈에 들어온다. 새벽 경매를 위해 오후부터 입고된 과일들이 공판장 빈공간에 채워지고 있다. 긴 꼬리의 트럭들이 경매장 바로 옆까지 들어와 과일을 내려놓고 돌아서면 일꾼들이 일일이 분류해 정리한다.

"캬아~, XXX, ○○○원, △△△번"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린다. 이미 채소가 놓인 경매장에서는 경매사의 구호에 따라 경매가 한창이다. 채소의 경우 유통주기가 짧아 가격 등락폭이 심한 편이다.

중도매인들은 생산자별로 분류된 채소를 하나하나 뜯어보고는 전자입찰기로 실시간 응찰하느라 분주하다. 채 10초도 걸리지 않아 이내 최고가를 찍은 중간도매인에게 낙찰된다.

경매사가 경매시작 버튼을 누르면 품목별, 응시자, 낙찰자 등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메인컴퓨터에 전해진다. 이같은 시스템 도입으로 경매 진행이 빨라지고 신뢰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

경매가 끝나면 낙찰명세서를 중도매인에게 주고 생산자에게는 낙찰금액이 통보된다. 몇개의 품목에 대한 경매가 끝나면 중도매인과 경매사는 수탁된 순서에 따라 다시 이동해 경매를 진행한다.

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160여개 품목이 보통 새벽 4~5시는 돼야 경매가 모두 마감된다고 한다.

가락시장 관계자는 "거래 물량이 많은 만큼 이곳의 낙찰가격은 곧 전국 시장의 기준가격이 된다"며 "경매가 끝나면 바로 다음날 농민에게 입금하는 것을 법으로 정해 농민들의 수익을 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공동기획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