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상욱 (와세다대학 상학학술원 특별연구원)
[경인일보=]중국 베이징 시내를 지나다 보면 검은색 바탕에 금색 글씨로 상호를 큼지막하니 써넣은 간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아무래도 검정 바탕에 휘황찬란한 금박 간판이다 보니 멀리서도 눈에 잘 띈다.

하지만, 이 간판은 아무나 내걸지 못한다. 회사고 상점이고 적어도 창업한 지 100년은 넘어야 이 간판을 걸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중국어로 이 간판을 라오쯔하오(老字號)라고 하는 데, 현재 1천600여 개가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중 류비쥐(六必居)라는 식료품가게가 있다.

이 가게가 문을 연 것은 명나라 때인 1530년. 햇수로 근 500년 가까이 장사를 해 온 터줏대감이다.

어떻게 그토록 긴 세월 동안 망하지 않고 장사를 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을 보니, 창업주부터 지금껏 한결같이 지켜온 6가지 원칙에 그 답이 있었다. 좋은 원료, 충분한 자재, 청결한 공정과 정확한 가공, 좋은 설비와 깨끗한 물 사용 등 6가지는 그 어떤 상황에 부닥쳐도 꼭 지킨다는 경영원칙이 결국 500년 장수의 자양분이었다.

그래서 가게 이름도 6가지(六)를 반드시(必) 지키겠다는 뜻에서 지었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6원칙의 내용이 시대에 맞춰 조금씩 변했지만, 원료와 제조과정 등을 원칙대로 충실히 지킨다는 그 기본은 바뀌지 않았다.

또 한 회사가 있다. 청심환으로 유명한 통런탕(同仁堂)이다. 이 역시 1669년에 창업해 34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회사의 장수비결은 본사 현관에 걸려 있는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아 반드시 이웃이 생긴다(德不孤必有隣)'라는 현판에 담겨 있다. 이 글귀대로 이 회사는 옛날부터 가난한 사람과 베이징을 찾은 외지 사람들이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무료로 치료해 주고, 밤이 되면 등을 내걸어 밤길 행인에게 길을 밝혀 주었다고 한다.

또 장수기업 하면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일본에는 100년 이상 된 기업(개인기업 및 각종 법인 포함)이 2만1천개사나 있다.

이중 일본 오사카에 있는 콘고구미(金剛組)는 지난 578년에 개업을 했으니, 무려 회사 나이가 1천430살이다. 주로 절과 신사를 짓는 건축회사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회사의 힘의 원천은 무엇보다 본업중시, 신뢰경영, 투철한 장인정신과 혈연을 초월한 후계자 선정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기본에 충실하여 눈에 띄는 곳보다 가려진 부분에 더 신경을 써 고객의 믿음과 사회적 신뢰를 쌓았다.

지금도 이 회사는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천장 등을 더 깨끗하고 말끔하게 처리하고, 또 천장 속이나 땅에 묻히는 곳을 더 비싼 자재로 마무리해 기초공사를 실하게 하는 데 애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보이지 않는 곳이라도 대충하지 않으니, 보이는 곳은 얼마나 더 꼼꼼히 하겠느냐는 것이 고객들의 평이다.

그리스를 필두로 유로존의 경제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경제선진국을 위시해 각국의 경제 체력이 갈수록 약해지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사그라지지 않고 다시금 이중침체의 덫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펼쳐질 위세다. 그나마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경제가 구미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나, 세계경제 흐름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는 않다.

경기가 나빠지고 세계경제가 맥이 풀리면 기업으로서는 영업 타격은 물론이고 잘못하면 생존의 끈이 약해져 버린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무수한 위기상황에 대응하고 적응하면서 스스로 명운을 터 온 장수기업들의 면모를 보면, 이번 위기도 무난히 넘길 방법은 분명 있다. 그것은 바로, 원칙을 지키고 정직한 사업운영으로 고객과 사회의 신뢰를 쌓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기업은 정도를 걷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