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왕휘 (아주대 교수)
[경인일보=]지난 20일 오후 2시30분 해병대는 연평도에서 대규모 포사격 훈련을 실시하였다.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훈련 취소 요구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피격 이후 허술한 안보라는 비판을 받아 오던 이명박 정부는 K-9 자주포, 105㎜ 견인곡사포, 81㎜ 박격포, 20㎜ 벌컨포, 90㎜ 해안포 등으로 약 1천600발의 포탄을 발사하였다. 서해를 출렁거리게 만든 포성은 약 11만㎞ 떨어진 뉴욕에까지 울려 퍼져, 러시아는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연평도에서 100㎞도 떨어지지 않은 서울에서 연평도 포성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훈련이 예고된 오전에 코스피 지수가 30포인트 이상 떨어져 2천선이 무너졌으며,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도 달러당 20원가량 급등하기도 하였지만, 사격 훈련이 실시된 오후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6.02포인트(0.30%) 하락하는 데 그친 2천20.28,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도 2.7원 내린 1천150.2원으로 마감하였다.

서울 금융시장의 차분한 반응은 뉴욕 UN 본부의 부산했던 일정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단호한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지난 15일 1975년 민방위법이 제정된 이래 처음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민방공 특별 대피훈련을 실시하였다. 또한 20일에는 하루 종일 다양한 언론매체를 통해 연평도 주민이 대피소로 들어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은 소위 '북한 위험'에 흔들리지 않았고, 생필품 사재기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금융시장에 '북한 위험'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미국과 북한의 양자 대화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 정책으로 교류가 거의 끊긴 남북관계와 달리, 북미대화는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지난 달 북한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의 지그프리드 헤커 소장 일행에게 영변 핵시설을 공개한 바 있다. 또한 16일부터 방북했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는 포사격 훈련이 실시된 20일 오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 사찰단의 영변 핵시설 복귀, 우라늄 농축을 위한 핵연료봉의 외국 반출, 1만2천개의 미사용 연료봉의 해외 판매를 약속했다는 소식을 CNN 방송을 통해 전하였다. 또한 그가 제안한 남북한과 미국 3국간 분쟁지역 감시 군사위원회 설치, 남북 군사 핫라인 구축에도 북한이 동의했다고 발표하였다.

중국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중국은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주변국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 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한반도에서 대규모 무력충돌을 바라지 않고 있다. 물론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북한에 대한 제재를 반대해 왔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의 무력도발을 옹호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는 있다. 그러나 중국의 대북 지지는 무조건적이지 않다. 중국이 북한을 지지하는 이유는 혈맹 또는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표현되는 안보적 상호의존이라기보다는 서해상에서 벌어지는 한미 합동군사훈련 때문이다. 중국은 베이징(北京)·톈진(天津) 등 수도권 도시와 랴오둥(遼東)반도 등이 작전 범위 안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미국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의 서해 배치를 군사적 도발로 간주하겠다고 주장해 왔다. 이 때문에 한국과 미국은 6월 말~7월 초 서해상 합동군사훈련의 시기를 한 달 이상 늦췄으며, 장소도 서해에서 동해로 변경하였다.

20일 하루 동안 1천832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했던 해외 투자자들은 연평도 포사격 훈련보다는 미국과 중국 정부의 외교협상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1천억원 이상 주식을 순매수한 기관투자자들과 생필품 사재기를 하지 않은 시민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북한 위험'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우리 경제가 튼튼해졌다는 상징일 수도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단호한 의지가 국제 외교무대에서 무시당하고 있다는 징표일 수도 있어, 금융시장의 차분한 반응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