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일 (경기도 검도회장(검도 범사))
[경인일보=]전 국민이 그 시간 김연아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다. 숨죽여 관전한 결과는 2등이었다. 아쉽지만 2등도 크게 수고한 결과라고 여겨 박수를 쳤다. 그는 시상대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나는 그 눈물이 좌절로 연결되는 슬픔의 눈물이기 보다는 분해서 못 견디는 재기를 다짐하는 분루(憤淚)임을 안다. 세계 정상을 지켜야 하는 정신적 부담과 육체적 고통은 당사자 아니면 잘 모른다.

필자가 70년대 초 국내 대회 개인전에서 3년 간 전국 정상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그 질투와 시기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심지어 심판들도 그 시기 3연패 기록이 없었던 시절이라 떨어뜨리려고 애썼다. 결국 4연패를 못하고 마친 기억은, 김연아에게 비할 바는 아니지만 김연아를 이해한다. 김연아의 가치는 물질적 도움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생명력있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조치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과거 꿈도 못꿨던 이 종목의 석권은 김연아만 가능했다. 그의 기록은 탁월하고 가치성도 높다. 길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인데, 언제 어느 시기 아득히 잊혀지는 김연아가 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먼훗날 찬연한 공적을 세우고도 잊혀지는 슬픔에 또 한 차례 분루를 삼키는 일이 없기를 바라서 하는 말이다. 그가 있어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했나. 그래서 김연아의 눈물이 이 보다 더한 아픔이 아닌 서글픔으로 연장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과거 전설의 복서로 일본의 피스톤 호리구찌를 이겨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심어줬던 서정권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복수 등을 모두 잊었다. 입담 좋은 홍수환만 살아있다. 씨름의 이만기, 강호동은 그래도 성공한 경우다. 특히 이에리사 교수는 여성 최초 태릉선수촌장을 지내고 여성 체육 신장의 최선봉에서 활약중이다. 그들만의 뛰어난 두뇌와 지혜, 식견이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스타급 선수들은 어느새 아득히 잊혀진 선수가 됐다.

어느 날 어느 지인의 조카가 탁구 선수를 지망한다고 이에리사 교수를 좀 소개시켜 달라했다. 평소 교분 두터운 이에리사 교수가 고맙게 응해줘 그 지망생과 대면하자 이 교수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2등의 슬픔을 넌 알겠니?"

그때 그 말을 감명깊게 기억한다. 씨름 이만기의 끈질긴 샅바 싸움이나 홍수환의 4전5기 같은 시합 근성은 바로 이에리사 교수가 물은 '2등의 슬픔'과 맥을 같이한다. 강호동의 다른 분야 우승도 다행이다. 어쩌면 체육인들이 축하해줘야 한다. 강호동만 보면 공연히 체육 세계로 발들인 것이 자랑스러울 때가 있다. 체육인들도 남다른 자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체육인도 어느 날 정치세계로 진출해 국회에서 몸싸움도 못하는 자들이 하는 몸싸움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연극·영화배우들 다하는 그 장(長)의 자리를 체육인들이라고 못할까. 체육인도 국회의원, 국무총리, 대통령이 되는 꿈을 가져볼만 하지 않은가.

먼 안목으로 봐서 김연아의 분루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에리사 교수, 이만기 교수, 홍수환 선수 등은 모두 그 체육 분야에서 자기관리 능력이 있다. 적자생존의 살벌한 세상에 살아남은 좋은 표본이다. 그런 의미에서 먼 훗날 김연아도 잊혀지는 잘못된 풍토가 지금의 분루 못지 않은 슬픔으로 분루를 삼키는 일이 없도록 하자. 위로하고 칭찬하고 그 고향 모교에 동상 세우고 김연아길 만들어서 영원히 안 잊는 문화 역사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