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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찬락 대표는 20년 전에 이미 '가만히 앉아 멍때리는 게 최고의 힐링'이라 생각하고 그런 농장을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했다. 장수이야기가 김포에 터를 잡은 뒤 직원들은 생산시설을 더 짓자고 건의했지만 그는 넓은 농장을 없애지 않고 유지했다. 2022.8.24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아픈 아내 위해 '몸에 좋은 것' 건강원서 찾아
고압 방식으로 만들어진 즙에서 역한 맛이나
직접 항아리에 정성껏 달여서 만들기 시작해
아내가 아팠던 터라 대강 먹일 수가 없었다. 몸에 좋은 걸 해주려고 건강원을 찾았는데, 고작 몇 시간 만에 고압 방식으로 만들어진 즙에서는 역한 맛이 났다. 처음에는 우리가 한 번 먹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운영하던 방앗간 한쪽에 직접 항아리를 놓고 호박이며 양파며 24시간 정성껏 달여서 줘봤더니 아내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번졌다.

손찬락(64) '농업회사법인 장수이야기' 대표는 자신이 이렇게 크게 사업을 꾸리게 될 줄 몰랐다. 그만큼 우연한 계기에 시작한 사업이었고, 생협운동을 자연스럽게 병행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을 찾는 사람이 늘어 있었다.

똑같은 포도주스라도 장수이야기 제품에서는 '생포도 먹는 맛'이 난다며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설립 초기 홍삼과 장류 정도만 취급하던 장수이야기는 이제 소비자가 먼저 알아보는 품질에 힘입어 김포를 대표하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전국 284개 유기농식품이 출품된 '친환경 유기농 스타상품 경진대회'에서 장수이야기는 어린이용 홍삼제품으로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을 받았다. 지난 2017년 유기농 생강제품에 이어 벌써 두 번째 장관상이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사업 점점 커져
친환경 유기농 스타상품 경진대회 참여
장관상 수상… 2017년 이어 두번째 '쾌거'
손찬락 대표는 1980년대 중반 서울 등촌시장에서 채소 등 노점으로 돈을 모아 방앗간을 열었다. 사람 몸에 들어가는 음식은 정직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주민들과의 신뢰를 차곡차곡 쌓은 결과 직원이 7명이나 될 만큼 번성했다. 그러던 와중에 찾아온 아내의 병환은 항아리 중탕방식에 눈을 뜨게 했다.

손 대표는 "옛날에 궁중에서 잿불로 밤새 달였다는 데 착안해서 항아리로 홍삼과 채소 등을 24시간 달였더니 향미나 색감이 차원이 달랐다"며 "떡을 사러 온 손님들에게도 대접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주문이 들어왔다"고 회상했다.

얼마 안 가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손찬락의 장수이야기'를 창업하고 전국을 돌며 전통 항아리를 구하고 다녔다. 천주교 수도원에서 50년간 미사주를 생산하던 항아리부터 전남지역의 오래된 항아리, 경주 양동마을 항아리 등을 확보해 1996년부터 전 제품을 중탕 가공했다. 이 방식은 현재 기업의 모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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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 감정동 장수이야기 앞뜰에 놓인 3천여개의 항아리는 손찬락 대표의 인생을 상징한다. 손 대표는 "항아리에서 발효가 진행되면서 주변 식물도 아주 잘 자란다"고 했다. 2022.8.24 /장수이야기 제공

손찬락 대표는 약 25년 전부터 생협운동에 투신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두레생협에서 연 100회 이상 강의하기도 했다. 요즘도 이따금 강단에 서는 그는 "생협운동은 첫째 우리 농촌을 살리고, 둘째 우리 몸을 살린다"며 "우리 땅에서 친환경으로 키운 걸 100% 팔아주도록 노력한다는 책임생산·책임판매 시스템이 생협"이라고 설명했다.

장수이야기 제품은 자연산 및 유기농 재료 사용이 원칙이고, 그게 안 되면 무농약 재료를 사용한다. 유일하게 수입하는 재료는 정제하지 않은 설탕을 뜻하는 원당(마스코바도)이다. 첨가제가 안 들어가고 미네랄은 풍부한 원당을 공정무역으로 들여오는데 국내 소비량의 60%를 장수이야기에서 소화한다.

손 대표는 "건강식품은 소비자들의 패턴이 변화무쌍해 유행이 빨리 바뀐다. 그래도 우리는 유행에 따르지 않았다"며 "어떤 기업과 붙어도 지지 않으려면 우리만의 것이 있어야 했고, 그 우리만의 것은 자연 그대로의 맛이었다"고 말했다.

부단하게 올바른 먹거리 외길을 걸은 장수이야기는 2012년 FDA에 등록되면서 까다롭다는 미국 수출길을 뚫고 2014년에는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센텀시티점, SSG프리미엄 식품관(청담)에 입점하며 이름을 알려갔다.
25년 전부터 생협운동 투신… 연 100회 강의도
자연산·유기농 사용 원칙… 2012년 FDA에 등록
흑염소즙 '세균 제로' 달성 "가장 보람됐던 순간"
자연 그대로의 맛을 추구해도 실제로 맛은 있어야 하니까 원물이 좋아야 했다. 또 한 가지, 장수이야기는 통상 146도에서 이뤄지는 고온멸균을 하지 않고 저온살균만 하는 방식을 택했다.

손 대표는 "예를 들어 포도주스를 고온멸균하면 카라멜화하면서 텁텁해지고, 살균만 하면 경쾌한 맛이 나는데 이는 장수이야기의 중요한 생산노하우"라며 "3년 전쯤 생협 측이 우리 흑염소즙을 고온멸균 해주길 원했는데 멸균은 세포변형과 단백질 파괴가 일어나고 즙이 퍽퍽해진다. 멸균은 곧 회사의 의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살균을 고집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이어 "살균으로도 충분히 세균을 억제하겠다고 약속하고 만약 세균이 발생하면 흑염소즙을 생산하지 않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며 "결국 한 달 동안 세균검사를 의뢰한 끝에 '세균 제로'를 달성했다. 회사를 이끌며 가장 보람됐던 순간"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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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찬락 대표는 약 25년 전부터 생협운동에 투신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두레생협에서 연 100회 이상 강의하기도 했다. 2022.8.24 /장수이야기 제공

손찬락 대표의 어릴 적 꿈은 멧돼지 연구, 청년 시절 꿈은 흑염소농장 운영이었다. 손 대표는 "어릴 때 집에서 키우던 돼지와 닭은 병에 잘 걸리는데 멧돼지와 꿩은 병에 걸리는 경우가 없었다. 흑염소도 병에 강했다"며 "내가 어릴 적 자주 아파서인지 그런 게 너무 궁금했고 그때의 호기심이 지금 하는 일들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호기심 많은 손찬락 대표는 2018년부터 본사 옆에 커피나무 30그루를 재배해 로스팅에도 성공했다. 이뿐 아니라 열대과일 파파야 재배실험도 진행 중이다.

손 대표는 "국산 커피와 파파야의 생산이 안정되면 주변 농업인들에게도 권유할 계획"이라며 활짝 웃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