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선 축구 유니폼이 패션… 신포시장 어르신도 입는날 오길"
韓 대표팀·나이키·아디다스부터 최근 김민재 소속팀 콜라보 제작도
인천Utd 창단 20周·SSG랜더스 등 고향팀과 작업 "행복했던 경험"
글로벌 구단과 협업하며 스포츠 문화 확산 도움 "하나의 장르되길"
"신포시장의 할머니도 인천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자연스럽게 입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프로축구나 프로야구 유니폼은 '직관 갈 때 입는 옷'이라는 인식이 짙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니폼을 일상에서나 여행 갈 때 입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마케팅 수단으로 유니폼의 일상화를 추구하는 게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축구를 주제로 한 패션 브랜드인 '오버더피치'의 최호근 대표는 유니폼과 스포츠 관련 상품의 일상화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그는 "팬이 아닌 사람도 축구 패션을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소화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며 "미국이나 유럽처럼 국내에서도 스포츠 유니폼을 자연스럽게 입는 문화가 퍼지길 꿈꾼다"고 했다.

■ 축구선수 꿈 포기했지만 결국 축구로 향한 디자이너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최 대표의 꿈은 축구선수였다. 브라질의 축구 스타 호나우두의 팬이었고, 그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축구 유니폼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학생 때는 프로축구 인천유나이티드가 주최하는 미들스타리그에 학교 대표로 참가해 문학경기장에서 열리는 결승전까지 뛰었던 축구광이었다.
그는 "농구로 유명한 송도중학교와 야구 역사가 오래된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모든 스포츠를 좋아했지만, 축구를 향한 꿈이 더 컸다"며 "집안의 반대로 축구선수의 길을 포기한 뒤에도 계속 운동장에서 축구공만 찼다"고 했다.
인천대에서 시각디자인학과를 전공한 최 대표는 학부생 시절 축구와 디자인을 접목한 활동에 나섰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오롯이 축구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최 대표는 "처음에는 축구 유니폼 디자이너를 하고 싶어 포트폴리오를 만들 겸 아마추어 팀 유니폼을 디자인하거나, 축구용품과 관련된 콘텐츠를 제작했다"며 "창업이 뭔지도 몰랐고 대학교 동기 친구들과 학교 안의 빈 사무실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프로구단에서도 협업 제의가 왔다"고 했다.
■ 갈등 많았던 초창기…'구단 포스터·현수막도 팀의 정체성 녹아야'
그가 본격적으로 K리그 팀들과 작업을 시작한 2015년만 해도 프로스포츠 구단의 브랜드 개념이 전무한 시기였다. 각 구단의 직원들은 최 대표를 외주 제작업체 직원 정도로 여겼다고 한다.
최 대표는 디자이너의 시선에서 팀의 정체성을 살린 디자인을 하려 노력했지만, 구단 측에서는 자신들이 요구한 내용만 반영해 달라고 한 탓에 갈등도 많았다.
그는 "당시 구단들의 홍보 포스터나 경기 일정 안내 현수막은 간판업체나 인쇄소에서 제작하는 수준이었다"며 "디자인과 축구를 접목하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구단에서는 글씨체나 색깔 종류까지 지시하다 보니 언성 높여 싸운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최 대표는 구단들을 끊임없이 설득하면서 결과물을 만들어냈고, 그의 디자인을 눈여겨본 팀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국내 축구 팬들이 유럽 축구를 접하면서 유니폼 디자인이나 마케팅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자, 국내 구단들 사이에서 이를 따라가기 위한 인식이 퍼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최 대표는 이후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나이키·아디다스 등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와 함께 스포츠 패션을 주제로 다양한 협업을 펼쳤다. 최근에는 축구국가대표팀 수비수 김민재의 소속팀인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과 콜라보레이션 유니폼을 제작하기도 했다.
■ 애정 지닌 고향팀과의 협업… 다시 태어난 '슈퍼스타즈'
수많은 팀과 작업해온 그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경험은 인천 프로스포츠 팀과의 협업이다. 오버더피치는 지난해 인천유나이티드 창단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프로젝트 작업을 진행했고, 인천의 첫 프로야구팀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영감을 얻어 SSG 랜더스와 협업한 '슈퍼랜더스' 유니폼도 제작했다.
지역과 종목을 가리지 않고 많은 팀과 일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인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건 다른 구단과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경기장조차 찾지 않았던 최 대표에게 두 팀과의 작업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는 "지금껏 일을 해오면서 느낀 점은 인천이 저에게 정말 좋은 자양분을 제공해 준 고향이라는 것"이라며 "작년에 공교롭게도 두 구단에서 먼저 제안이 와서 작업하게 됐는데, 인천팀에 대해 항상 많은 애정을 품고 있었던 터라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작업했다"고 했다.

■ 해외로 보폭 넓히는 오버더피치
최 대표는 '스포츠 문화의 확산'을 꿈꾸고 있다. 남녀노소 모두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이나 굿즈를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착용하는 '문화'가 자리 잡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그는 "뉴욕에 가면 누구든지 양키스의 모자를 쓰고, 유럽에서는 어느 지역이든 연고 팀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며 "경기장이 아닌 그 지역의 중심가나 관광 명소에서도 구단 관련 상품을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일상에 스며드는 게 스포츠가 하나의 문화로 정착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인천을 예로 들면 신포시장의 어르신들도 인천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인천공항에서 SSG 랜더스의 유니폼을 살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며 "인천유나이티드가 신포시장에 '블루마켓'이라는 상설 매장을 냈고, SSG 랜더스도 모기업인 이마트에 유니폼과 굿즈를 파는 매장을 운영하는 행보는 정말 좋은 사례"라고 했다.
최 대표는 앞으로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스포츠 구단들과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 확장을 도모할 계획이다. 해외 팀들과 작업하면서 국내 스포츠팀들이 참고할 만한 사례를 많이 만들어야 스포츠 문화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축구뿐 아니라 야구와 농구, 모터스포츠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협업하면서 얻은 결과물을 국내 시장에 접목해 하나의 패션 장르로 만들어내고 싶다"고 했다.
글/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최호근 대표는?
▲1990년생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졸업
▲인천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졸업
▲2014년 ~ 현재 H9pitch 스튜디오 대표이사
▲2016년 '오버더피치' 브랜드 론칭
주요 활동
▲2002 월드컵 20주년 기념 유니폼 제작 프로젝트
▲KBO리그 출범 40주년 기념 콜라보레이션 상품 출시
▲K리그 출범 40주년 기념 브랜딩 작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