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와이퍼' 안산공장 노동자들이 1년여 투쟁 끝에 '사회적고용기금'을 이끈 것은 노동조합의 쾌거인 동시에 안산 지역사회와의 끈질긴 연대 결과로 꼽힌다. 반복되는 외국인투자(외투)기업과 자본의 '먹튀' 움직임에 맞서 해고 위기 노동자들이 성과를 만드는 데 '한국와이퍼 모델'이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9일 금속노조 경기지부 한국와이퍼분회에 따르면, 회사가 안산공장 청산을 단행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 '안산시민행동'이 결성됐다. 안산YWCA·안산노동안전센터·안산환경운동연합 등 안산지역 45개 시민단체가 모인 결사체다.
이들이 모인 것은 실직 위기에 놓인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이라는 단일 목표를 위해서였다. 이들은 노동자들이 투쟁과 연대를 이어가는 데 물심양면으로 힘썼으며, 끝내 사회적 고용기금이라는 합의를 이루는 것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들 단체는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이 사측과 협상에 난항을 겪을 때마다 등장해 지역 정치권과 고용당국의 움직임을 이끄는 등 존재감을 보여줬다. 당시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안산시의회를 찾아 해고 위기 노동자들에 대한 개선책을 촉구한 게 대표적이다. 그 결과 시의회는 '안산 일자리 지키기 공동행동 결의문'을 전원 찬성으로 채택하는 등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회사가 공장 청산 단행하기 직전
지역 45개 시민단체 결사체 꾸려
사측과 협상·정치권 움직인 동력
공제조합도 나서 '물심양면' 지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주요 정당을 가리지 않고 직접 찾아 외투 기업 청산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국회 내 여론형성을 이끄는 데도 이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황훈재 안산시민행동 집행위원장은 "노동과 인권 문제 등 안산지역 사회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면서 '공동체 회복'이라는 화두를 항상 가지고 있었다"며 "한국와이퍼가 반월공단은 물론 안산지역에서 작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었고, 노동자들을 살려야 한다는 목표로 목소리를 결집한 것"이라고 결성 배경을 설명했다.
안산시민행동뿐 아니라, '좋은이웃'이라는 안산 지역공제조합도 노동자들에게 힘이 됐다. 끝 모를 농성 속, 투쟁 노동자들의 생계를 뒷받침할 대출금을 무이자 형식으로 지원하는 등 든든한 뒷배 역할을 자처했다.
전국을 오가는 투쟁현장에서 노동자들에게 필수적인 끼니뿐 아니라 투쟁 플래카드 등 각종 '투쟁비용'을 부족하지 않게 지원한 것도 이들의 몫이었다.
최윤미 한국와이퍼 분회장은 "'좋은이웃'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투쟁 현장마다 나와 도움이 컸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지역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사측과 '사회적고용기금'이란 합의를 이룬 '한국와이퍼 모델'이 향후 외투 자본의 '먹튀'에 대항할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역의 시민단체 등 지역사회와의 전략적인 연대가 있었기에, 교섭에서 키를 쥔 정치권뿐 아니라 고용노동부 등 행정관청의 개입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도 "'외투' 사업장과 맞서는 것에 지역사회를 어떻게 포섭시키는지는 중요한 요소"라며 "과거 위로금 정도를 이끄는 데서 그친 외투 사업장 노동자들의 사례와 비교하면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지역 연대는 크게 평가할 만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