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반도체기업 ‘산재 불승인’ 가족들 처분취소 소송
근로복지공단 유해물질 ‘적정’ 판정
“피해 당사자 의견 반영 미흡” 반박
“철저한 진상조사 해야” 아버지 호소

“우리 아들과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오면 안 되잖아요….”
고등학교 재학 당시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인천 한 반도체기업에서 일하다 독성간질환 판정을 받은 20대 한 청년과 그 가족이 노동 당국과 인천시교육청 등에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인천 한 반도체 기업 공장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했던 김선우(가명·23)씨는 2022년 1월 ‘독성간질환’으로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평생 통원 치료를 받으며 약을 복용해야 한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20년 10월부터 이 업체에서 일했다. 화학제품 등을 사용해 반도체 칩에 전자기판을 부착하는 업무 등을 맡았다. 입사 후 1년이 지났을 무렵 구토와 졸음 증세가 나타났다. 몸에 멍이 들거나 자주 코피가 났다. 급기야 황달 증세까지 보인 그는 그해 12월 독성간질환과 무형성 빈혈 판정을 받았다. 군 입대 신체검사에서 ‘1급’ 판정을 받은 지 8개월 만이었다.
김씨를 진료한 의사는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간질환은 작업장에서 노출된 미상의 세척 용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을 냈다. 김씨는 이를 토대로 이듬해 9월 근로복지공단 경인지역본부에 산업재해 신청서를 제출했다.

1년 만인 2023년 10월에야 김씨의 근무지를 상대로 한 근로복지공단의 역학조사가 시작됐다. 7개월간 기다림 끝에 나온 결과는 ‘산재 불승인 처분’이었다. 작업장 유해물질이 법적 노출 기준을 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였다.
김씨와 가족은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진단을 받은 지 22개월 만에, 산재 신청서를 낸 지 1년 만에 시작된 조사인 데다, 피해 당사자인 김씨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김씨와 가족은 지난해 8월 산재 불승인 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을 냈다. (2024년 12월11일 온라인 보도)
김씨를 돕고 있는 이종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노무사는 “피해자가 아닌 사업주 의견 위주로 역학조사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현장에서 의견을 말하지 못한 피해자는 추후 근로복지공단에 메일까지 보냈는데, 이것이 충분히 반영됐는지도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김씨 가족의 바람과 달리 수년 전 발생한 일인 데다, 현재는 기업 공정도 일부 바뀌어서 소송에 필요한 증거나 증언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김씨와 가족은 “유사한 피해자가 또 생겨나선 안 된다”며 노동 당국과 인천시교육청 등이 참여하는 진상조사를 바라고 있다.
이 기업에는 매년 인천 등 전국 직업계고 학생들이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입사한다. 올해 기준 인천지역 학생 22명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천시교육청은 김씨가 산재 판정을 받은 것이 아니어서 교육청 차원의 조사나 실습 중단 등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일할 때와는 작업 현장이 바뀌었을지 몰라도 어린 학생들이 일하는 건 똑같다”며 “점검 차원에서라도 고용노동부와 교육청이 협의체를 만들어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해당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근로복지공단 조사에서 이미 김씨 근무 환경과 간 질환 발병 간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김씨가 근무했던 2021년과 역학조사가 이뤄진 2023년 사이 근무 조건이나 환경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 관계자도 “산재 신청일과 역학조사 시기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근무했을 당시 노출됐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물질을 반영해 조사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변민철·송윤지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