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1월 한탄강변, 코펠에 물을 끓이려 가져온 삼발용 돌멩이 하나가 세계 고고학 지도를 새로 그렸다. 고고학을 전공하다 주한미군으로 입대한 그렉 보웬의 예리한 눈썰미와 연인 이상미씨의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됐다. 타원형의 거친 돌은 어딘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렉의 직감은 적중했다. 프랑스의 구석기 권위자 프랑수아 보르드 교수에게 편지를 띄웠고, 서울대 박물관장이던 김원룡 교수를 거쳐 이 돌이 구석기 유물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마침내 ‘전곡리 주먹도끼’라는 이름을 얻었다. 호모 에렉투스가 쥐었던 돌이 30만 년 후 세상에
제8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기괴한 밈이 또 극성이다. 삼일절 무렵 ‘유관순 방귀 로켓’과 ‘안중근 방귀 열차’ 영상이 공분을 사더니, 이번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일그러뜨리고 유관순 열사의 외모를 깎아내린다. 아이돌과 독립운동가를 비교하거나, 기여도 순위를 매기는 게시물까지 등장했다. 민족의 영웅을 대하는 일부의 태도는 경솔하고 유치하다. 조회수를 노린 악성 콘텐츠 장사가 선을 넘은 지 오래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신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안타까운 점은 선열을 향한 도발 앞에 정작 법은
연간 30조 원. 전국 아파트 입주민이 꼬박꼬박 내는 관리비 총액이다. 작은 지방자치단체 수십 개를 운영하고도 남고, 대기업 매출액 톱 15~20위권에 버금가는 규모다. 막대한 자금이 투명하고 적법하게 집행되는지를 놓고 곳곳에서 ‘아파트 관리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경북 경산의 한 아파트에서 평소 관리비 내역을 놓고 갈등을 빚던 입주민이 관리사무소에 불을 질러 3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4년에는 평택에서 몸싸움 중 동대표가 쓰러져 숨졌고, 부산에서는 고소·고발전 끝에 입주민이 분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종편 드라마 ‘아파
“이제 물 탈 돈도 없다.” “파랗게 질린 주식창 열어보기도 무섭다.” 요즘 주식 커뮤니티에 넘쳐나는 개미 투자자들의 하소연이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앞둔 이들이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그런데 이는 최근 한 달 사이 개미들의 심리와도 닮아 있다. 지수가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일시적 조정일 것이라며 애써 부정했다. 낙폭이 커지자 시장과 당국을 향해 분노했다. 반등을 기대하며 물타기로 버티는 타협의 시간을 지나, 손실이 불어나자 무기력한 우울에 잠겼다. 결국 계좌를 정리하고 시장을 떠나겠다는 ‘주
여덟 살 딸이 학교에서 늦게 왔다는 이유로 샤워기 헤드로 때리고 흉기로 위협한 친모, 두달배기 아들을 폭행해 머리뼈를 골절시킨 아버지, 돌도 안 된 아기가 울자 입에 옷가지를 넣어 숨지게 한 아버지까지. 최근 법정에 오른 사건들을 보면 사람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말문조차 막힌다. 가해자는 남이 아니라 세상의 전부여야 할 부모였다. 법원이 이들에게 내린 형량은 각각 징역 2년, 4년, 7년이다. 어린 자녀를 향한 범죄의 무게를 헤아리면, 납득할 수 없는 죗값이다. 국가 예산을 늘리면 아동학대가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하
1995년 5·31교육개혁으로 내신 산출방식이 전면 개편되고,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가 등장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그 해에, 고등학교는 1996학년도부터 시행됐다. ‘수우미양가’ 점수 줄세우기식 입시 경쟁에서 탈피하고, 지성과 인성의 균형을 이루는 전인적 성장을 돕겠다는 꿈은 원대했다. 학생부는 학생의 적성과 소질, 잠재능력을 입체적으로 기록하는 공적 장부다. 30년이 흐른 지금, 학생부는 수시 대입을 좌우하는 인증서가 됐다. 교과목별 성취를 기록하는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동아리와 진로를 담는 ‘창체(창의적 체험활동
“난 굴욕스러운 고통 속에 죽진 않을 거야.” 영화 ‘더 룸 넥스트 도어’(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2024) 속 말기 암 환자 마사의 의지는 결연하다. 친구 잉그리드에게 삶의 마지막 순간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한다. 영화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인간의 존엄과 우정,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집중한다. 그래서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삶은 더 선명해진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삶을 화려한 색감의 미장센으로 표현한다. 죽음은 흑백이 아니라고, 삶과 죽음은 문 하나 사이를 둔 방처럼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는
1959년 북해 흐로닝언에서 천연가스가 터졌을 때, 네덜란드는 전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자원 외화벌이로 순식간에 국가재정이 넘쳐났다. 하지만 ‘축배’는 얼마 못 가 ‘독배’로 바뀌었다. 석유산업 종사자의 지갑은 두둑해졌지만 물가 역시 가파르게 뛰었다. 자국 통화 가치가 치솟으면서 공장의 기계는 하나둘 멈춰 섰다. 돈은 넘쳐나는데 일자리는 증발했다. ‘쉽게 번 돈’에 취해 산업의 기초체력인 제조업을 방치한 대가는 혹독했다. 풍요의 역설은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라 불린다. 한국 경제에도 ‘네덜란드병’의 불길한 그림
1902년 인쇄소의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발명된 에어컨은 인류 문명을 구원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유럽인들에게는 ‘기후를 거스르는 가전제품’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환경 도덕주의와 엄격한 기후 정책은 에어컨 설치의 장벽을 높였다.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이 여전히 20%대에 머무는 결정적 이유다. 그러나 기록적인 폭염으로 프랑스의 자존심인 에펠탑과 루브르박물관의 문이 일찍 닫혔다. 최고 권위의 도로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마저 역사상 처음 험난한 언덕 코스 일부를 축소하기로 했다. 문명과 문화의 상징들도 대자연의 역습 앞에서는 고
스마트안경의 원조격은 2013년 출시된 ‘구글 글라스’다. 대놓고 사이버틱한 디자인과 낮은 배터리 효율, 1천500달러에 달하는 가격까지, 결과는 용두사미였다. 렌즈 옆으로 돌출된 디스플레이는 타인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혹시 몰래 찍고 있나?” 착용자들은 ‘글래스홀(glasshole)’이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결국 일반 판매는 2년 만에 중단됐고, ‘실패한 혁신’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10여 년 후, AI 스마트안경 시장에는 메타가 깃발을 꽂았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 등에 따르면 메타는 지난해 메타안경을 700만개 팔아치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