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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장미의 이름'(1980)은 유례를 찾기 힘든 명작이다.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학자가 쓴 추리소설이라는 화제성도 그렇고, 주변부장르인 추리소설로 문학장(champ)에 내재한 특권적 위계를 돌파하려는 그의 아방가르적 실험 또한 압권이다.

'장미의 이름'은 14세기 신성로마제국을 시대적 배경으로 이탈리아 북부의 한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 바스커빌의 윌리엄 신부가 홈즈의 역할을, 순진한 귀족 출신의 청년 수사 아드소가 왓슨의 역할을 맡았다.

사건 수사 책임을 맡은 윌리엄은 프란체스코 수도회 출신의 신부로 초자연적인 것에 의지하기보다는 너그러운 합리주의자이며, 이성적인 인물이다. 사건의 전모는 아드소가 남긴 수기를 토대로 재구성된다. 3중, 4중의 복잡한 액자형 이야기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작품 전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작품은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후더닛(whodunit)이나 실제로는 시대의 진실을 추적, 탐색하는 인문학적 도정이라 할 수 있다. 에코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부철학을 비롯해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는 물론 방대한 중세연구와 고전을 작품에 인용, 활용하는 화려한 지적 글쓰기를 선보인다.

에코는 기호학자 · 미학이론가 · 평론가 · 역사학자 · 철학자를 겸한 저명한 학자인데, 여기서는 능청스럽고 노련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1968년 에코는 우연히 아드소의 수기를 소개한 책을 발견하고 번역까지 해뒀으나 분실한다.

끝내 원본은 찾지 못했으나 발레 수사의 필사본을 입수한다. 그러니까 '장미의 이름'은 아드소의 회상기를 소개한 발레 수사의 판본과 자신의 번역본을 토대로 에코가 쓴 작품인 셈이다.

물론 이는 다 '뻥'이다. 기실 문학작품을 볼 때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언제나 모종의 공모가 일어난다. 진실 여부에 이의를 달지 않고 서로 믿어주기로 하는 계약―이른바 '허구의 약정(patto finzinonale)'이라는 신사협정이 그것이다.

알려진 대로 범인은 호르헤 신부. 웃음이 가진 전복성과 폭발력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노회한 종교권력이 희극(웃음)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제2부를 읽지 못하도록 극약을 묻혀 사람들을 살해한 것이었다.

범인을 호르헤 다 부르고스(Jorge da Burgos) 신부로 설정해둔 것은 20세기 최고의 작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에 대한 에코에 대한 오마주요, 질투의 표현이다.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이란 작품 제목은 "태초의 장미는 이름으로 존재하나 우리는 빈 이름만을 가지고 있다"는 베르나르의 시 '속세의 능멸에 대하여'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리소설에 무상(無常)과 공(空) 철학이라니! 비단에 꽃을 얹은 격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