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기에 그럴싸한 통보문… 검사 실명 도용 공문에 안쓰이는 '휴대전화번호', 신뢰 깨기 충분 경찰 "수사로 이어지긴 사실상 힘들어"
입력 2021-05-24 16:45
지면 아이콘지면ⓘ2021-05-24 0면
김동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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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로 날아온 '보이스피싱' 문자메시지. /김동필 기자 phiil@kyeongin.com
"본인 등본상 주거지로 2회에 걸쳐 해당 서류 발송을 하였으나 반송으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통신고지 해드립니다."
지난 18일 오전 11시 13분. 기자의 휴대전화로 메시지 1통이 도착했다. '이 연락처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메시지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란 제목과 함께 '조사자 지명통보'란 문서가 함께 첨부돼 있었다.
통보문은 언뜻 보기에 그럴싸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라고 적힌 빨간 인정도 찍혀 있었고, 발행번호·문서번호·사건번호도 함께 적혀 있었다. 이름과 주민번호 앞자리, 성별까지 정확했다.
죄명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과 '금융실명제법 위반'. 배당검사는 서울중앙지검 '박석용 검사'. 하단엔 '3차 고지 후 불응 시 긴급체포'한다는 으름장도 보였다.
법무부 형사사법포털에서 정말 해당 사건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김동필 기자 phiil@kyeongin.com
실명이 도용된 검사는 실제 중앙지검 형사7부의 부부장 검사였다. 검색을 통해 먼저 알아보는 현대인의 심리를 잘 꿰차고 있는 듯 했다.
이들의 치명적인 실수는 '휴대전화번호'다. 요즘 그 어떤 공문에서도 휴대전화번호가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상단 제목에 '여기로 전화해주세요!'라고 외치는 듯한 연락처는 이 통보문의 신뢰를 깨기 충분했다.
혹시 몰라서 킥스(KICS)도 설치했다. 킥스는 법무부 형사사법포털로, 본인 인증으로 각종 사건 관련 조회를 할 수 있다. 시간을 들여 '공인인증'을 하고 이름과 사건번호를 입력했다. 1초 만에 '해당 없음'이란 결과가 나왔다. 게다가 이 통보문의 허술한 면은 사건번호에도 있음을 알았다. 문자가 없어야 할 사건번호에 문자도 포함한 것이다.
금융감독원 보이스피싱 지킴이 신고 화면. 간단한 정보 입력만으로 보이스피싱 의심 번호를 신고할 수 있다. /김동필 기자 phiil@kyeongin.com
이후 경찰과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경찰은 번호는 이용중지 요청한다면서도 "수사로는 이어지기 사실상 힘들다"고 전했다. 속지도 않았고, 피해 금액이 없어 수사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금융감독원에 신고한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해당 번호가 '없는 번호'라고 뜨는 만큼 이용중지 요청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보이스피싱은 코로나19를 만나며 더 대담해지고 있다. 경찰청 범죄 통계상 지난해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액은 7천600억원으로 2019년 1천257억원에 비해 5배나 증가했다. 최근 5년간 총 피해액을 합치면 1조6천억원을 훌쩍 넘는다.
이에 따라 경찰은 보이스피싱 예방에 주력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의심 전화번호 이용중지 처리를 경찰청 본청으로 직접 하도록 절차를 간소화한 것. 최근 3개월간 2천개에 달하는 번호를 차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기관을 사칭하면서 휴대전화번호로 연락을 바란다는 메시지는 무시하고, 적힌 번호만 온라인으로 신고하면 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