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는 감독이라 할지라도 한번쯤은 졸작이나 평작을 내놓는게 지금까지의 대체적인 관례(?)인데, 대만출신 할리우드 감독 이 안에게는 아직까지 그런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 '라이드 위드 데블'(26일 개봉)은 '와호장룡'에 이어 올 여름 한국 극장가에 내걸리는 이 안 감독의 두번째 작품.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이라는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와호장룡'과 '라이드 위드 데블'은 배경이나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서사와 액션의 결합이라는 면에서는 성분이 동일하다. 반면 '와호장룡'의 경우 중국 특유의 '강호' '신의' '참선'등이 강조된 만큼 드라마의 희생이 적잖게 엿보였으나, '라이드 위드 데블'에는 이 안 감독의 장점인 탄탄한 드라마와 심리묘사가 잘 살아있다.

영화는 남북전쟁 당시 북부군에 맞서 싸웠던 남군 게릴라들을 소재로 한 다니엘 우드렐의 소설 '우 투 리브 온'을 옮겼다. 남부의 젊은이들은 북부군에 대한 절대적인 증오와 복수속에 게릴라전을 치룬다. 그들에게 남북전쟁은 옮고 그름의 문제라기 보다는 친구, 가족, 사랑 그리고 전통, 의무, 명예등이 지배하는 본능적인 싸움에 다름없다. '인류의 역사'라는 '전쟁의 역사'에 목숨을 내놓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그래서 전쟁의 광기와 살상은 '선'(반대편에서 보면 악) 또는 '정의'라는 미명아래 합리화된다.

영화의 장점은 이같은 전쟁의 보편적인 정서를 네명의 젊은이를 내세워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제이크(토비 맥과이어), 잭, 피트등은 가족을 위해, 전통을 위해 게릴라전에 가담한다. 추운 겨울을 움막에서 견뎌내게 하는 이들의 의무와 명예, 그리고 순수는 점차 전쟁의 광기에 오염되고 끝내는 '로렌스 학살'(미국 역사상 가장 큰 학살로 1863년 4월 21일 발생한 실제 사건)로 이어진다.

영화는 전쟁에 대한 목적 확신 희망보다는 점차 전쟁의 악마성에 희생되며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사실적인 액션과 촘촘한 드라마, 캐릭터및 심리 묘사등으로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자신의 행동에 의문을 품게된 제이크가 전쟁의 와중에 두번이나 사랑하는 이을 잃은 수우리와 함께 새세상을 찾아 떠나는 결말은 '희망'이다. 135분이 지루하지 않은건 이 안 감독의 세심한 연출력외에도 '사이더 하우스'등으로 알려진 토비 맥과이어의 생명력 있는 연기의 몫도 크다.

/金淳基기자·island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