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묻지 않은 라다키들을 만나고 싶은 열망
두통도 복통도 진정기미를 보인다. 매표구 직원에게 물어보니 알치는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다는데 그 정도라면 화장실을 참을 수도 있겠다 싶어 알치행을 결정한 터였다. 조금 일찍 터미널로 나와 배낭을 차 지붕 위에 올려 묶고 버스에 오른다. 작은 마이크로버스에는 현지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았는데 모두 알치로 가는 사람인 모양이다. 터미널에 대기해 있는 가까운 곳을 운행하는 차들은 모두 소형마이크로버스들이다. 살펴보니 영어로 행선지를 표시하고 있어서 골라 타기에는 그다지 불편이 없다. 허나 가만히 보니 행선지마다 차 색깔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글씨를 읽을 수 없는 이곳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아닌가 싶었다. 행선지를 차 색깔로 표시하는 것. 그것 괜찮은 아이디어가 아닌가.
가고자 하는 알치는 라마유르에서 레로 오는 길을 반쯤 거슬러 가면 된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 갈 수 없을 것 같은 길을 되돌아가는 감회는 각별하다. 물론 그러한 감회는 올 때와 갈 때의 얼굴이 산의 앞면과 뒷면을 보듯 다를 수밖에 없어서겠지만 어디를 가나 라다크 지방은 마을 가장 높은 곳에 곰빠가 있어서 그 풍경이 더욱 고즈넉하고 친근한데 그만큼 종교가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버스는 마을마다 쉬어 가지만 재미있는 건 달리는 길이 어디든 기사는 사람들이 원하면 차를 세우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보내는 물건이나 소식들을 전해주는 것이다. 더러는 염소나 닭도 태우고 아무개의 토마토 봉지나 시장 바구니도 그대로 전해주지만 심지어 싸스풀에선 무작정 차를 세운 다음 운전기사가 내려 서류 봉투를 들고 어딘가 마구 뛰어가고 있어 이상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싸스풀 은행에 배달되는 공문서를 전달하고 있었다. 도시에서 경쟁을 익힌 사람들은 예외지만 이곳 라다키들은 그만큼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듯 보였다.
-환영의 물세례
인도의 로컬버스들은 가까운 곳을 통행할 때 창문은 물론 출입문까지도 열어둔 채로 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과속하지 않으니 위험 또한 없다는 것일까? 그러나 이건 라다크 아이들의 환영의식인가?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창 쪽으로 다가앉은 나는 달리는 차 속에서 두 번이나 물세례를 받아야 했다. 마을을 지날 때 아이들이 기다리다가 차가 지나가면 냅다 물을 퍼붓고 깔깔대는데 방심하다간 나처럼 물을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그러나 머리나 옷이 좀 젖었다고 누구에게 화를 내거나 하소연하는 사람은 없다. 차 속의 사람들은 물세례에도 그냥 허허 웃고만 있었는데 처음 아무 영문도 모르고 물세례를 받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1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는 알치는 3시간을 넘게 달려 어둠이 내릴 때쯤에야 겨우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작은 읍 싸스풀을 지나 인더스강을 왼편으로 끼고 다리 하나를 건너서 약 3~4㎞쯤 고원을 향해 걸어가면 알치 마을이 나오는데 막상 차를 타고 지나가니 산과 강이 주는 중첩의 미세한 명암들을 모두 즐기기엔 한계가 있어 보였다. 허나 여건만 허락된다면 한 며칠 이곳에서 짐을 풀겠다는 유혹은 마을에 들어서면서 더욱 강했고 느긋하게 쉬며 즐기겠다는 희망 또한 더욱 구체적으로 나를 조르기 시작했다. 알치에는 모두 4개의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는 정보를 가이드북에서 얻었는데 레에서 만난 한국청년은 그 중 두 곳을 자신 있게 추천해 주었다.
차가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아무리 피곤하고 지쳐있어도 이번만은 신중하게 숙소를 고르리라 거듭 다짐하며 차근차근 둘러보았다. 다소 늦게 도착해서인지 역시 원하는 조건을 갖춘 방은 구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중 마음이 가는 한 곳을 골라 결정을 했는데 집은 작고 아담했으나 샤워실을 둘러보니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샤워실의 타일이 반짝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배낭여행자로서 인도에서 머무는 동안 사실 이건 대단한 발견처럼 느껴졌다). 주인 내외가 젊어서인지 그만큼 이 집은 곳곳에 청결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 마음에 드는 것은 사과나무와 살구나무가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있는 소박한 정원이다. 물론 나무그늘 아래 식탁을 놓고 담소하며 차와 식사를 즐기는 여행객들의 모습도 매우 평화롭다. 사실 그곳 외엔 방이 없기도 했지만 오늘 하루만 조금 불편을 참으면 내일은 이 집에서 내가 원하는 그 어떤 방도 줄 수 있다는 젊은 주인의 말을 믿고 나는 그 집에 딱 하나 남은 방에 마지막 손님이 되어 짐을 풀기로 한 것이다.
이상하다. 알치에 발을 딛는 순간 이상 증세를 보여온 컨디션은 모두 해결된 듯 그저 안온한 느낌이다. 두통은 물론 복통도 사라지고 더 이상 약봉지를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상쾌한 감이 나를 찾아왔다. 따뜻한 물을 얻어 몸을 씻고 옷은 배낭 깊숙이 모셔 두었던 울스웨터로 갈아입었다. 사과나무 그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