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칠판에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며, 습관이 바뀌면 성품이 바뀌고, 성품이 바뀌면 (…)이 바뀐다'라고 커다랗게 써 놓았다. '괄호 안에 어떤 단어가 들어가면 좋겠냐'는 물음에 여러 대답이 오가던 중 한 학생이 '운명'이 바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종관이다. 이런 만남을 계기로 종관이는 강남종고 시절, 많은 상담을 해왔다. 중년이 되면 고향인 강화도에서 경로당을 세워 운영해 보고 싶다는 말에 감동받았다.

그 옛날 상치과목으로 내게 배웠던 농업이 아마도 본인의 운명을 바꾸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농대를 나와 농업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게 되어 본인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런 종관이가 십여 년 전, 신기중학교 교정에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심어줬다.

푸른 오월, 음악수업을 하다 말고 급히 운동장으로 내려가게 됐다. 두 대의 트럭 안에 붉은 장미를 담은 화분들로 가득했다.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내 주위를 살펴보니, '운명'이 바뀐다고 대답했던 종관이가 있었다. 백 송이도 아닌 무려 백 그루나 되는 장미를 선물이라며 내 앞에 펼쳐 놓았다. 말이 백 그루지, 트럭에서 끝도 없이 장미를 담은 화분들이 쏟아져 내렸다. 트럭 주위에 몰려있던 동료교사들과 많은 아이들 그리고 관리자 분들이 감탄했다.

이윽고 교장선생님은 나와 종관이를 교장실로 불렀으며, 종관이에게 커피와 함께 감사의 뜻을 전했다. '청년은 교정을 떠난 지 이미 오래됐고, 선생님에게 더 이상 잘 보일 것도 없겠는데, 어떻게 백 그루 장미를 다 가져올 생각을 했느냐'는 교장선생님의 물음에 종관이는 대뜸 '선생님한테 농업을 잘 배웠고 그래서 본인의 운명이 바뀌었으며 선생님을 존경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나는 종관이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농업을 상치과목으로 맡아 되레 아이들에게 농업에 관해 배운 것이 많은 교사일 뿐이다. 종관이의 말은 과분했다.

종관이가 가져온 백 그루 장미는 그 해 가을, 신기중학교 교정과 학교 울타리에 빼곡히 심어졌다. 마침 신설학교라 교화가 없었던 터라 종관이가 가지고 온 백 그루 장미 덕분에 장미로 교화가 정해졌다. 나 또한 기뻤다.

어느덧 졸업 시즌을 맞았는데 교장선생님은 종관이에게 보답의 의미로 졸업식 날 감사패를 전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나는 교장선생님의 깊은 뜻을 종관이에게 전달했다가 그 자리에서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나는 매우 난처했다. 기필코 감사패를 사양하겠다는 것이다. 종관이 말에 따르면, 감사패를 받으려고 백 그루 장미를 선생님에게 드린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보은의 의미'라고 끝내 사양했다. 정말 속 깊은 제자였다. 한편 야속한 제자이기도 했다. 나는 고민 끝에 좋은 묘안이 떠올랐다. 웃어른의 말씀을 거역해도 되겠느냐고 반박했다. 그제야 종관이는 본인의 뜻을 굽혔다.

드디어 졸업식 날, 종관이는 감사패를 받으면서 '본의 아니게 전교생 앞에서 감사패를 받았다'며 쑥스러워 했다. 고교시절 KS마크라는 별명을 얻었던 녀석이니 인성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이 훌륭하다. 종관이로 인해 터에 터를 넓히고 있을 붉은 장미들의 행렬이, 해를 더할수록 신기중학교 교정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리라.

/김 혜 자(강화 호국교육원 교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