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이현준기자]지난 5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인천의 모습은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

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의 물결속에 그 많던 염전과 논, 밭엔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서고, 좁은 흙길은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깔렸다.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는 통로 역할을 하던 개항장, 인천항은 수도권 지역 수출·입의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고, 영종도에 들어선 인천국제공항은 수많은 여객과 화물을 전세계로 실어나르는 중추 역할을 하며 '인천'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경인일보는 창간 50주년을 맞아 '인천의 어제와 오늘'을 다양한 문헌자료와 사진자료 등을 통해 현재와 비교, 분석해 봤다.

▲ 인천의 대표적 지역인 인천역 주변, 송도유원지, 경인고속도로의 과거(왼쪽)와 현재의 모습 (사진 맨 위부터).

■ 인천의 어제와 오늘
50년전 인천을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자료는 당시 인천의 모습을 담은 사진일 터이다.

경인일보 취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경인일보 사진데이터 베이스와 인천시 기관지 '인천공보', '약진인천' 등에서 활동하고, '인천시사(仁川市史)' 발행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고(故) 최성연 선생의 유족이 지난 2002년 화도진도서관에 기증한 사진자료 등을 살펴봤다.

화도진 도서관은 이들 사진을 담은 사진집을 조만간 발간할 예정. 경인일보는 이 책에 담길 사진 중 일부를 발간 전, 도서관측으로부터 협조받았다.

사진속에 나타난 50년전 인천은 유난히도 공사 현장을 담은 장면들이 많았다. 60년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음을 방증하는 듯했다.

현재 인천역과 동인천역 사이 화평철교, 도원역과 제물포역 사이 숭의철교의 공사 모습은 현재의 모습과 비교되면서 이채로운 풍경을 연출했다. 땅이 파헤쳐진 채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동인천 지하상가의 모습, 답동광장의 도로공사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동인천역 광장 일대를 촬영한 사진속의 '시발택시'와 어디론가 향하는 시민들의 바쁜 발걸음이 '이곳'이 중심임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지금은 사라진 '인영극장'과 지금도 운영중인 '대한서림'은 묘한 대비를 이뤘다.

1963년 개장한 송도유원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에선 부산의 해운대가 부럽지않은 규모의 인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여름휴가를 즐겼고, 아이와 부인의 물놀이 모습을 사진에 담는 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가장의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밖에도 남구 숭의동의 전도관 모습, 홍예문 위의 소방사이렌 모습, 화도고개, 답동사거리 모습 등에서 비쳐지는 '60년대 인천'의 모습은 '2010년 인천'의 현재 모습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었다.

■ 생활 중심의 변화
50년이라는 시간은 인천사람들의 '생활의 중심'도 바꿔놓았다. 서(西)에서 동(東)으로, 바다에서 육지로 점차 옮겨가는 모양새다.

인천시가 최근 발간한 '인천 바로알기 가이드북'을 보면, 1960년대 초 인천지역의 인구는 중구지역이 가장 많았다. 61년 중부(지금의 중구)지역의 인구는 8만193명, 동부(6만5천954명), 남부(5만9천230명), 북부(6만3천653명), 부평(7만171명) 등지에 비해 1만~2만여명 가량 많아 인천의 중심으로 손색이 없었다고 책은 전하고 있다.

당시에는 인천시청, 인천시교육청, 인천상공회의소, 경기도경찰국, 법원·검찰청, 시립 인천병원 등 주요 시설들이 밀집해 있었고, 개항장인 인천항을 중심으로 일제 강점시대 때부터 활발한 경제활동이 있었던 영향도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10년 뒤의 인구수는 이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중부의 인구는 9만384명으로 1만여명 늘어난 것에 그친 사이, 동구는 17만8천894명, 남구는 22만8천895명, 북부는 14만9천840명 등으로 2~3배 가까이 늘었다. 지속적인 인구 유입에 따라 법원·검찰청, 시교육청, 시민회관 등이 타 지역으로 옮겨감에 따라 중부지역에 도시 공동화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985년엔 인천 행정의 중심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시청마저 현재의 남동구 구월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남동구가 새로운 인천의 중심지역으로 자리잡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논과 밭이 대부분이었던 남동구는 시청 이전과 함께 시교육청, 시경찰청이 자리잡고,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인천중앙도서관, 경기은행(현 시티은행)빌딩, 백화점 등이 들어서면서 인천의 중심가가 됐다.

인천경제자유구역 개발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신규 조성, 경인전철 역세권을 따라 형성된 상권 등은 시나브로 시민들의 생활중심을 옮기고 있다. 계속해서 발전과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인천. 지금부터 50년뒤인 2060년, 시민들의 생활 중심은 인천의 어디가 될지 궁금증을 가져본다.

 
 
 
-인구와 행정구역
4개구서 10개구·군…270만명 넘었다


지난 50년간 인천의 인구는 5배 넘게 늘었다.

50년전 48만5천명 수준이던 인천의 인구는 지난해말 270만명을 넘어섰다.

관련 통계자료를 보면, 1965년엔 48만5천511명에 불과했던 인천의 인구가 75년엔 79만9천982명으로, 다시 10년뒤엔 100만명을 넘어서 138만6천911명으로 늘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200만명을 돌파, 95년엔 236만2천132명을 기록했다. 2000년 256만2천321명, 지난해말 기준 275만8천246명으로 불어났다.

특히 직할시로 승격(1981년 7월)된 이후 15년간 인천의 연도별 인구 증가율은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8%까지 기록했다. 광역시로 바뀐 1995년 이후에도 인구가 소폭 줄어들었던 2003년을 제외하면, 매년 0.3%에서 1.53%까지의 인구증가율을 나타내는 등 인구 증가세는 지속되고 있다.

인천의 인구 증가는 60년대 산업화 이후,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인천이 수도권의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비약적인 인구 증가는 인천의 행정구역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968년 처음으로 구(區) 제도가 시행될 때는 4개구에 62개 행정동이던 것이 1988년 1월 기존의 남구를 남구와 남동구로, 북구를 북구와 서구로 분구해 6개구 체제로 개편됐다. 또 1995년엔 남구와 연수구가 분구되고, 북구는 부평구와 계양구로 다시 나뉘어졌다.

여기에 행정구역 개편 등이 더해져 인천은 올 1월 1일 기준 8개구 2개군 1읍 19면 121개동의 행정구역체계를 갖추고 있다.

2020년 인천의 계획인구는 310만명이고, 2025년의 계획인구는 이보다 더 많은 400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