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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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 뒷이야기] 30년간 자영업자로 살아남은 방법
누군가는 오늘도 나름의 성공을 꿈꾸며 새로 가게 문을 엽니다. 쓰디쓴 현실을 마주한 누군가는 눈물을 머금고 가게 문을 닫고 있을 테죠. '자영업자의 무덤'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몸부림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을 겁니다. 코로나19라는 잔혹한 '적'과 싸우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속은 이미 새까맣게 타 버렸습니다. 자영업자 무덤에서 살아남은 백년가게지난 10개월간 경인 지역 백년가게 20곳 소개'실력·신념·끈기' 백년가게 관통하는 세가지 키워드돈이 전부가 아닌 '평범한 성공' 이야기 경인일보는 지난 10개월간 경인 지역 '백년가게'를 조명하는 시리즈를 연재했습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국의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시작한 기획물입니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경인 지역 백년가게 20곳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업력이 성공의 기준이라면 백년가게는 이미 성공을 거뒀습니다. 자영업자의 폐업 문제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상황에서 최소 20년 이상 업력을 쌓은 가게들이죠. IMF 등 각종 경제 위기부터 코로나 시국에 직면한 현재까지,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실력·신념·끈기 손님들은 딱 하루 한복을 입는 건데, 그 중요한 순간에 입을 때만큼은 최고로 예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노리개라든가 기본적인 소품 하나하나 챙기는 것에도 정성을 다하고 있어요 지난 10개월간 바버숍, 태권도장, 사진관, 열쇠가게 등 다양한 업종의 백년가게 대표들을 만났습니다. 업종과 삶의 궤적은 서로 다르지만, 오랜 기간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실력과 신념 그리고 끈기. 백년가게 시리즈를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입니다. 소비자는 돈을 지불하고, 가게로부터 합당한 서비스를 제공받습니다. 어떤 가게든 소비자의 기본적인 만족감을 충족하기 위해선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췄다고 판단해 가게 문을 열었어도 음식점이라면 음식의 맛을, 사진관이라면 사진의 품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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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20 이천 김성래피자] 박명수 피자와 '한판', 96년부터 이어온 피자 맛은?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도 넘은 중국 문화공정… 과거 이탈리아 피자까지?이천 지역 피자 '터줏대감…담백한 피자로 명성동네 노인들도 소주 안주로 자주 시켜먹어한때 가맹사업 전국 8곳 확장하기도"아들과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 운영하고파"중국의 '문화공정'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한복과 김치 등 한국의 고유한 문화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터무니 없는 주장에 헛웃음이 나오지만, 중국의 진심이 엿보여 마냥 두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해외화제] 피자 기원 법정싸움 이탈리아, 중국에 판정승' 지난 1991년 6월 2일 충청도 지역일간지 <중부매일>에 실린 기사의 제목입니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미국 샌프란시스코 역사고증법정에서 '피자라는 음식을 처음 만들어낸 것은 서로 자신들의 조상들'이라고 주장하는 이탈리아인들과 중국인들 간의 격렬한 설전이 오갔습니다.이 법정에서 중국인들은 13세기 자국의 한 고관 부인이 간식용으로 피자를 처음 만들어 먹은게 시초라고 주장했는데요. 베네치아 상인인 마르코 폴로가 동방여행을 하다 고관 부인의 아이디어를 훔쳐 이탈리아에 정착시켰다는 게 중국인 측 의견이었습니다. 물론, 판정관들은 이탈리아인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만, 중국의 역사관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 보여 씁쓸함마저 느껴집니다. 피자엔 소주다 피자라는 음식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중반 무렵입니다. 피자헛 등과 같은 피자 전문점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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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19 구리 충남식당] 청와대 비서실 출신, 추어탕에 인생을 걸다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코로나19와 함께한 두 번째 여름. 가을 장맛비가 내리는 걸 보며 이번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방역 일선의 의료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올해 여름 우리 모두는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푹푹 찌는 날씨에도, 얼굴의 절반 이상을 마스크로 가린 채 지내야 했기 때문이죠. 오늘은 가을철 몸보신에 제격인 '추어탕' 가게를 소개하려 합니다. 추어탕은 여름철 더위로 잃은 원기를 다시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대표적인 가을철 보양식입니다. 추어탕의 주재료인 미꾸라지에는 단백질과 칼슘 등 몸에 좋은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하네요. 청와대 직원에서 식당 사장님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 비서실 직원으로 2년 근무 지금의 남편 만나 결혼하면서 직장 그만둬 구리시 수택동에는 추어탕 전문점인 '충남식당'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불혹을 넘긴 나이일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합니다. 이곳의 대표인 권옥순(74) 씨는 20대 때, 청와대 비서실 직원으로 근무한 적 있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 "아는 분 소개로 청와대 비서실에서 2년 정도 일했어요. 결혼하기 전에는 한양대(서울 왕십리 부근) 근처에서 살았어요. 통근버스가 그쪽에서 다녔거든요." 서울 면목동에 가게 얻어 순댓국 장사로 요식업 입문 4년 뒤 구리시로 이동해 몸보신에 좋은 추어탕 시작 그는 지금의 남편과 만나 결혼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게 됐습니다. 대신 남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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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18 남양주 호평열쇠도장] 가족을 먹여 살린 0.5평 점포
전북 고창서 돈 벌기 위해 아내 남겨 두고 홀로 상경0.5평에서 시작한 열쇠 가게… 주변 텃새로 마음 고생단칸방에서 처음으로 온 가족이 모여 살아… 마음만은 편해손님들 고맙다는 말에 '참 좋은 기술 배웠다' 뿌듯함도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우리가 곤경에 빠졌을 때 찾는 사람들은 보통 정해져 있습니다. 늦은 밤 수상한 사람이 쫓아온다면 '경찰'을 찾을 겁니다. 불이 나거나 사고를 당하면 '소방'에 도움을 요청할 테죠. 언젠가 집 문이 열리지 않는 무척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할 때도 있습니다. 이땐 '열쇠 가게'를 떠올리게 되죠.제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 집 문이 열리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상황에 나타난 열쇠 가게 아저씨가 어찌나 멋있던지요. 저에겐 맥가이버의 등장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오늘은 남양주시 평내동 맥가이버 김광종(64) 씨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그가 칼을 품은 사연 호평열쇠도장 대표 광종 씨는 전북 고창군의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는 원래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농사를 지으려고 하면 할수록 빚만 늘어갔다고 합니다. 29살 광종 씨는 도망치다시피 상경했습니다. 새신랑이었던 그가 홀로 서울에 가야 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하네요. 다행히 서울에서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친척이 있어 1년간 일을 배우며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아는 건 꽃뿐인데, 열쇠하고 도장 하는 사람한테만 공간을 주겠다는 거예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남양주와의 인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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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17 수원 오름] 제로웨이스트를 주저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늘은 다소 특별한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하긴 하나 정부가 인증한 '공식' 백년가게는 아닙니다. 업력만 놓고 보면 앞서 소개한 여러 백년가게와 견줄 바가 아니죠. 그럼에도 이 가게의 지향점 역시 앞으로의 백년에 놓여 있습니다. 지구를 위한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제로 웨이스트 숍', 수원 오름의 이야기입니다.*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등 쓰레기 배출을 '0'에 가깝게 최소화하는 환경 운동. 평범한 주부, 제로 웨이스트 숍 대표 되다 오름의 대표 이현자(54) 씨는 자신을 '평범한 주부'라고 소개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먼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일 뿐, 환경 운동가나 전문가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단지 '매개체'를 자처합니다. 저마다의 궁금증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오름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제로 웨이스트'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일상에서 실천 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하네요."저는 환경 운동가나 전문가가 아니고, 평범한 주부였어요. 집에서 아무리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도 쓰레기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나와 평소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었죠. 작년까지 식당을 운영했는데, 음식점을 하다 보면 버려지는 음식이라든지, 재료들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꼭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어요. 제가 아는 음식점 사장님은 음식물을 너무 많이 버려서 이다음에 죽으면 천당은 못 갈 거라고 얘기하더라고요.(웃음)"코로나19의 여파와 개인적인 사정으로 더 이상 식당을 운영할 수 없게 된 이 대표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는 '오래 할 수 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런 그의 마음에 평소 가진 문제의식이 더해져 지난 6월 제로 웨이스트 숍을 열게 된 것이죠. 이제 막 발돋움하고 있는 산업인 데다, 주류 소비자를 겨냥한 업종도 아니어서 가게 문을 열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고 하네요. "사람들이 일상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런 업종에서 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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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16 안양 동아수산] 대통령 입맛을 사로잡은 횟집
#들어가며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안양시 동안구 평촌동의 안양농수산물 도매시장에는 수산물을 파는 가게 100여 곳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생선회 전문점인 동아수산도 이곳 한편에 자리를 잡고, 1997년 8월부터 지금껏 손님을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의 면면이 참 화려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도 동아수산이 납품한 회를 맛보았다고 하네요. 오늘은 동아수산의 대표 이형근(53) 씨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대통령께 회를 대접한 사연87학번인 형근 씨는 대학교를 졸업한 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굴지의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별문제 없이 직장 생활을 하던 그는 IMF 외환위기 즈음 회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특이하게도 등 떠밀려 나온 게 아닌, 본인의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국내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이때, 용감하면서도 무모한 결단을 내린 것이죠. "저는 권고 퇴직 대상자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당시 50세가 넘은 부장님들이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갑작스럽게 그만두게 되는 걸 보고 회사 생활에 회의감이 들었어요. 평소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고요."당시 형근 씨의 누나는 횟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형근 씨는 직장을 다닐 때도 주말마다 누나를 도와 배달 일을 해왔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횟집 경영에 뛰어들게 됩니다. 일단 시작은 했습니다만, 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고 하네요. 좋은 생선을 고르고, 먹기 좋게 생선을 손질하는 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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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15 평택 고복수평양냉면] 평택에 뿌리내린 평양냉면의 맛은?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제 짧은 경험상 사람들이 평양냉면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대부분 비슷합니다. 보통 이런 식이죠. 냉면을 좋아하는 지인의 손에 이끌려 평양냉면의 맛을 한 번 봅니다. 마주앉은 지인은 맛깔나게 먹는데, 초심자인 당사자는 도통 무슨 맛인지 고개만 갸웃거려집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지인은 "몇 번 더 먹다 보면 평양냉면 맛을 알게 될거야"라고 살짝 무시하는 말만 늘어놓죠.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맛이 계속 생각납니다. 이렇게 또 한 명의 평양냉면 애호가가 생겨납니다. 얼마 전 한 식사 자리에서 평양냉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함께 자리한 사람도 위와 같은 경로로 평양냉면을 좋아하게 됐답니다. 그러면서 꼭 가봐야 할 평양냉면 가게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심심하고 밍밍한 평양냉면 맛을 좋아하게 될 날이 올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연의 일치인지 평양냉면을 맛볼 기회가 곧장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평택에서 3대째 계승되고 있는 '고복수 평양냉면'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고복수 평양냉면의 역사는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업주인 고학성 대표가 평안북도 강계에 차린 '중앙면옥'이라는 가게가 시초입니다. 그의 아들인 고순은 대표는 중앙면옥의 전통을 계승해 1973년 평택역 인근 명동 골목에 '고박사 평양냉면'을 개업했습니다. 지금은 손자인 고복수(65) 대표가 '고복수 평양냉면'이라는 이름으로 가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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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14 고양 진미정육점] 편견 깬 정육점, 비결은 '정직'
#들어가며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지난주 금요일, 오늘 소개할 백년가게인 '진미정육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곳 사장님께 인터뷰 섭외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죠. 당시 사장님은 출타 중이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제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고정관념'이 맞습니다. "전화 주셨다고요?", 전화기 너머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구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지금껏 방문한 백년가게 대부분은 부부가 같이 운영했고, 무엇보다 제가 만나본 정육점 사장님들은 대개 남자였기 때문이죠.인터뷰를 하기 위해 가게에 방문한 당일까지도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제가 가진 이런 편견은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깨져버렸습니다. 오늘은 39년 간 정육점을 운영해온 최봉자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정육점 사장이자, 한 집안의 가장 최봉자(67) 씨는 지난 1983년 고양시장에 정육점을 차렸습니다. "결혼을 하고, 딸을 낳은 뒤 뭐라도 하긴 해야 했다.", 그의 설명입니다. 진미정육점은 원래 부부가 함께 운영했습니다. 손님에게 판매할 품질 좋은 고기를 구매하고, 손질하는 일은 주로 남편의 몫이었습니다. 봉자 씨의 남편은 딸이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남편과 사별한 슬픔과 함께 홀로 딸과 아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게 된 것이죠. 담담한 듯 당시 기억을 떠올리는 봉자 씨의 모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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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13 성남 대성기름집] '참기름 맛집', 모란시장 맛의 비법은?
#들어가며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성남시 중원구에 위치한 모란시장은 수도권 전통시장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수도권에서는 보기 드물게 오일장이 열리는 시장이죠. 모란시장은 향토적인 분위기를 즐기기 위한 나들이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만, '개 도축'과 관련한 갈등이 몇 년 전까지 이어지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산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성남시는 지난 2017년 정책연구보고서를 발간 했는데요. 연구진이 2012~2017년 9월 말까지 소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모란시장의 연관어는 '개고기', '도축장' 등으로 대부분 개와 관련한 부정적인 이미지 담고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모란시장의 개 도축시설은 모두 철거되었습니다.이처럼 모란시장은 좋든 싫든 한때 '가축 시장'으로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이와 함께 모란시장을 대표했던 품목은 '기름'입니다. 양질의 참기름과 들기름을 짤 수 있는 '기름 시장'의 명성도 가축 시장 못지않은 데요. 1990년대 말께 모란시장 내 기름집은 무려 50여 곳에 달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점포 수가 조금 줄어 38곳의 기름집이 손님을 맞고 있습니다. #기름 맛과 김치 맛박정수(52)씨는 지난 1988년 문을 연 '대성기름집'의 2대 대표입니다. 그는 군 제대 이후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하고 부모님에게 가게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정수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직접 가게를 운영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네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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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12 의왕 부곡통닭] 의왕에는 45년된 통닭집이 있다
# 들어가며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치킨의 계절인 여름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지독한 더위를 물리칠 '치맥',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치킨집들은 벌써부터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을 겁니다. 누군가는 불경하다고 꾸짖을 수 있겠네요. '치느님'은 계절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라면서 말이죠. 맞는 말입니다. 여름 대신 봄, 가을, 겨울을 대입해도 딱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애정의 이유는 만들기 나름이니까요. 확실한 건 한국 사람들의 '치킨 사랑'은 진심이라는 것이죠.우스갯소리를 해보자면 한국에는 치느님을 섬기는 무수히 많은 종파(브랜드)가 있습니다. 각 종파는 차별화된 교리(맛)로 신도(손님)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죠. 이 경쟁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곳은 교촌, bhc, BBQ입니다. 소위 빅3로 불리는 전국구 브랜드죠.의왕시 삼동에는 '부곡통닭'이 있습니다. 이 근방에만 20곳 넘는 치킨집이 있다고 하는 데요. 유명 치킨 브랜드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수십 년간 영업하고 있는, 말 그대로 이 동네에 뿌리내린 '지역구' 치킨집입니다.#통닭 가문 황가네황대성(43)씨는 부곡통닭의 2대 대표입니다. 7년 전쯤 부모님 밑에서 처음 일을 배우기 시작해 가게를 도맡아 운영한 지는 4년 정도 됐습니다. 대성씨는 치킨집 이외에도 다양한 요식업 경력을 가지고 있는 데요. 이모님이 운영하는 강원도의 만둣가게에서 기술을 배운 경험이 있고, 프랜차이즈 포차를 직접 운영한 적도 있다고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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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11 인천 부산한복] 인천의 부산한복, 그곳엔 삶이 있다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영화 <국제시장>에서 황정민 배우는 오로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기 전부를 희생한 덕수라는 인물을 연기합니다. 비록 영화일지라도, 극중 덕수의 일생을 보면 한국전쟁을 겪은 전후 세대가 그 당시 가족을 먹여 살리고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짐작이 갑니다.부산에 국제시장이 있다면 인천 동구에는 중앙시장이 있습니다. 중앙시장이 들어선 자리는 원래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정착했던 곳이라고 하는 데요. 중앙시장은 1972년 문을 열었지만, 그 이전부터 한복집 등 다양한 가게들이 밀집해 상권을 이뤘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가게는 중앙시장 안에 위치한 '부산한복'입니다. '인천에 웬 부산?', 가게 상호부터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부산한복의 2대 대표인 전영순(70)씨는 영화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영화로도 담지 못할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부산에서 인천으로영순씨는 육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항만부두를 관리하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국제시장 안 저고리 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했습니다. 아버지의 근무지가 부산에서 인천으로 바뀌면서 영순씨의 가족들도 함께 인천으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열네 살 무렵 일입니다."아버지가 항만관리청에 공무원으로 계셨어요. 그 덕에 울릉도도 가보고, 포항으로 전학을 가서 산 적도 있어요. 처음에는 아버지 혼자만 인천으로 갔는데, 자식이 6명이나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으니까 가족 전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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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10 김포 쉐프부랑제]대기업 프랜차이즈를 이긴 동네 빵집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빵알못(빵을 잘 알지 못하다)'인 저도 이름 정도는 들어본 빵집들이 있습니다. 대전의 '성심당', 군산의 '이성당', 안동의 '맘모스베이커리'처럼 유명한 빵집들은 가본 적 없지만 왠지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한국은 '서울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각종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빵집만큼은 예외인가 봅니다.김포시 사우동에는 쉐프부랑제라는 빵집이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빵집들 만큼 '전국구'는 아니지만 이 동네에서만큼은 최고를 자부하는 빵집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쉐프부랑제의 이병재 대표입니다. #생계를 위해 배운 제빵 기술전라북도 고창군이 고향인 이 대표는 16살 무렵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 탓에 일자리를 찾아 상경했습니다. 서울의 한 빵 공장에서 일하던 고향 선배가 제빵 기술을 배워보라고 권유했던 것이죠. 이 대표는 을지로의 한 빵집에서 처음 일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 당시는 새벽 5시에 일을 시작해 저녁 9시~10시까지 일하는 게 기본이었다고 하는 데요. 그렇게 일해 받는 월급은 1만2천원. 그래도 힘든 줄 몰랐다고 합니다. "가방끈이 짧아서 기술을 익혀야 미래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월급은 얼마 안되지만 숙식을 제공해줘서 일을 배울 수 있었죠. 워낙 힘든 일이다 보니까 적성에 안 맞았으면 계속 못 했을 거예요. 근데 늦게까지 일을 해도 힘이 든다고 못 느꼈어요. 일이 재밌었고, 무엇보다 젊었으니까." 이 대표의 이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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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9 봉담디지털스튜디오]38살 동네사진관에 깃든 추억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38살 동네 사진관'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이 있죠. 추억이 담긴 옛 사진을 가끔 꺼내볼 때가 있습니다. 그 당시를 한참 동안 잊고 살다가도 앨범 속 때 묻은 사진 한 장을 보고 있노라면, 그 즉시 과거로의 추억여행이 시작되곤 합니다. 사진의 힘이란 참 마법 같습니다. 요즘은 남녀노소 모두 스마트폰을 이용해 양질의 사진을 손쉽게 찍을 수 있습니다. 한번에 몇백 장도 찍을 수 있죠. 과거에는 사진 한 장 한 장이 무척 소중했습니다. 필름의 용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함부로 셔터를 누를 수 없었고, 다 사용한 필름은 사진관에 맡겨 인화를 해야 했으니까요.시간이 흐르면서 사진을 찍는 도구는 달라졌지만, 사진을 남기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일 겁니다. 소중한 순간을 두고두고 추억하기 위함이겠죠. 봉담디지털스튜디오의 이공섭 대표는 38년 동안 화성시 봉담지역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봉담이 북적거리는 도시가 되었지만, 그가 처음 사진관을 열 때만 하더라도 이곳은 젖소가 자라는 시골동네였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동네의 가장 큰 추억창고는 이 대표가 운영하는 사진관일 겁니다. "우리 사진관은 오로지 봉담에서만 쭉 운영하고 있어요. 아들 백일 때 사진관을 개업했죠. 백일잔치를 사진관에서 했는데, 항상 개업 연도를 물어보면 우리 아들 나이를 떠올리면서 '38년 됐구나' 라고 헤아리곤 해요."올해로 38살이 된 사진관은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봉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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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8 용인떡집]무릎과 맞바꾼 떡집, "맛있다는 한마디면 족해"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의상실 직원에서 떡집 사장으로떡은 돈을 주고 사 먹지 않아도 자주 먹게 되는 음식입니다. 옆집에 이웃이 새로 이사를 오면 '이사 떡'을 나눌 것이고, 지인의 개업식에 가면 분명 '개업 떡'을 준비했을 테죠. 여기에 결혼식과 돌잔치 등 주변의 경조사를 챙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답례 떡'도 받게 됩니다. 떡은 이처럼 한국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함께 하는 음식입니다. 떡을 대체할 수 있는 여러 음식들이 나오곤 있지만 떡 만큼 남녀노소 모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도 드물 겁니다. 용인중앙시장 안에는 40년 업력의 떡집이 있습니다. 상호는 '용인떡집'으로 단순하기 그지없으나, 한편으론 자부심이라고 읽힙니다. 떡을 매개로 이 지역 사람들의 경조사를 지난 수십년 동안 책임졌을 테니 가게의 내공도 상당할 테죠. 오늘의 주인공은 용인떡집의 홍금자 대표입니다.충청도가 고향인 홍 대표는 젊은 시절 서울의 한 의상실에서 일했습니다. 떡을 만드는 기술자인 전라도 출신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렸고, 지금의 떡집은 당시 형편을 고려해 아무런 연고가 없는 용인에 내려와 차리게 됐습니다. "제가 자랄 때는 의상실이 한창 인기였어요. 서울 종로의 한 의상실에서 옷 마감 작업을 하는 일을 했죠. 친구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떡집을 차린 거예요. 지금이야 발전했지만 당시 이곳은 다 논이고 밭이고 그랬어요. 이층집도 별로 없었고, 승용차를 가진 사람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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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7 평택 에이큐양복점]미군과 함께한 40년, 맞춤 양복에 인생을 걸다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양복으로 맺은 미군과의 인연 오산 공군기지와 맞닿아 있는 평택시 신장동에 가면 영어로 된 간판이 즐비한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곳 상점 대부분의 주요 고객이 '미군'인 점을 고려하면 이국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죠. 오늘의 주인공은 이 지역에서 40년 넘게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인재 대표입니다. 한국인을 상대로 해도 어려운 게 장사라고 하는데, 그는 언어와 문화는 물론 크고 작은 취향까지 다른 외국인들에게 '맞춤 양복(장)'을 만들어주며 오랜 기간 가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이인재 대표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10대 때부터 송탄(평택)에 위치한 양복점에 취직해 옷 만드는 일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에게 처음 주어진 역할은 심부름 같은 허드렛일이었습니다. 고생길의 출발점이었던 것이죠. "처음에는 심부름을 하면서 다림질하고, 손바느질하는 하는 걸 배웠어요. 손가락에 골무를 끼우고 헝겊에 바느질하는 연습을 많이 했죠.(웃음) 일이 손에 익으면서부터는 셔츠, 바지, 상의를 만들고 재단하는 걸 하나하나씩 배웠어요. 이렇게 배워서 1979년에 제 가게를 처음 연 거죠."자신만의 상호를 단 가게를 연 뒤로는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미군들 사이에서도 "옷을 잘 만든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손님들이 몰려들었습니다."옛날에는 바느질도 직접하고, 다리미도 연탄불로 데워 사용해야 하니까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옷이 적었죠. 상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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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6 오산 할머니집]80년 노포, 소머리 설렁탕의 깊은 맛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무쇠솥에 구멍이 나기까지 손끝마저 아린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몸을 녹일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백년가게는 80년 역사를 간직한 '오산 할머니집'이라는 노포입니다. 메뉴는 소머리 설렁탕과 수육, 단 2가지로 단출합니다. 메뉴판부터 주인장이 가진 음식 맛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식당입니다. 이 식당의 역사를 설명하려면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 이전까지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요정이었다고 하는데요. 현재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4대 박명희 사장의 시증조모께서 해방 이후부터 가게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식당 운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국이 시국이었던지라, 영업 초기에는 별도 메뉴가 없었다고 하네요. 있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거나, 손님들이 해달라는 음식을 만들어 판매했다고 합니다. 소머리 설렁탕과 수육을 판매하기 시작한 건 37년 전쯤부터 입니다. 37년 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이었으면, 이 시간 동안 고기와 육수를 끓이는 무쇠솥에 구멍이 나 바꾼 솥도 여러 개라고 하네요. 세월의 힘은 무쇠도 뚫는가 봅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대를 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원래 남편이 맡아서 했는데, 남편이 하니까 자동으로 하게 되더라고요. 10년 전쯤 남편이 세상을 뜨면서부터는 혼자 식당을 운영했어요. 옆에서 어른들이 도와주니까 할 수 있었겠죠.(웃음)"(박명희)3년 전부터는 둘째 아들인 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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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5 성남 우드아트가구]나무의 멋, '고가구'에 빠지다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일흔,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가구의 주재료는 오동나무·편백나무·소나무 등의 원목입니다. 일반 가구와 달리 시트지를 붙이거나 별다른 가공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무가 가진 결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봉황(다복), 거북이(장수), 박쥐(다산) 등 저마다의 의미를 가진 문양이 새겨집니다. 고가구를 집안에 들여놓음으로써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기분까지 즐길 수 있는 것이지요.성남시 수진동의 '우드아트가구'는 고가구 전문점입니다. 부부 사이인 이종근·권영숙 대표는 이 자리에서만 25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 영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일반 가구만 취급했다고 합니다. 고가구를 하나·둘씩 매장에 들여놓았는데, 손님들의 반응이 일반 가구를 판매할 때보다 훨씬 좋았다고 하네요."일반 가구를 10년 정도 쓰다 보면 가구에 껍데기가 일어나고, 바퀴가 빠지는 등 수리할 일이 생겨요. 10년 간 판매한 가구들을 모두 수리하려고 하니 어렵더라고요. 오랜 기간 가구를 쓰다 보니 고장 난 것인데, 가구점이 나쁘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어요."(권영숙)이종근 대표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일찍부터 자개장을 만드는 기술을 배운 나전칠기 전문가입니다. 가구점을 하기 전에는 자개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나전칠기 전문가', '일흔을 넘긴 나이', '25년의 가구점 운영 경력'을 가진 그는 지금도 새로운 걸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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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4 인천 흐르는물]LP와 커피, 낭만이 흐르는 곳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낭만이 흐르는 곳바삐 돌아가는 세상의 뒤꽁무니를 쫓다 보면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경주마' 같은 삶의 피로감이겠죠. 오늘은 메마른 현실에 지친 이들을 위해 낭만이 가득한 공간을 소개합니다. 특히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잠시나마 숨통이 트이는 장소가 될 것 같습니다. 인천시 중구 신포동은 지금이야 구도심으로 불리지만 인천항 개항 이후 최대 상권을 이룬 곳입니다. 하지만 신포동 일대 개항장지구는 인천 내륙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주요 공공시설이 이전하고 인천항 내항의 항만기능이 점차 줄어든 1990년대부터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이곳에 안원섭 대표가 1989년부터 30년 넘게 운영 중인 LP카페 '흐르는 물'이 있습니다. 가게의 상호는 정희성 시인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 나오는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호와 얽힌 에피소드가 재밌습니다. "원래 상호는 시 구절을 인용해 '흐르는 것이 어찌 물뿐이랴'였어요. 그렇게 몇 년 하고 있는데, 공무원들이 와서 이름 좀 바꿔 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당시 우리 가게에 예술을 하거나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많이 왔는데, 관에서 볼 땐 상호가 문제였던 거죠. 그래서 '흐르는 물'이라고 줄인 거예요."음악을 좋아하던 29살 청년이 문을 연 이 공간은 지역 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됐습니다. 시와 소설을 쓰는 사람, 미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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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3 수원 진천생고기]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 그리운 날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제2의 고향' 수원서 문 연 고깃집코로나19는 '삶의 맛'을 무척 단조롭게 만들었습니다.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서 기쁨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분노와 슬픔만이 남은 듯합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처럼 고된 하루를 위로해줄 일상의 소소한 행복조차 욕심이 되어버린 요즘입니다.이번에 소개할 가게는 지난 1991년 수원시 장안구 거북시장 안에 문을 연 '진천 생고기'입니다. 온전히 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에게 지난 30년 세월 동안 '삼겹살에 소주 한잔'의 즐거움을 제공한 곳입니다. 진천 생고기는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입니다. 진천(충북) 출신 진수진 대표와 부산이 고향인 그의 아내 김은순 대표가 '제2의 고향' 수원에서 고깃집을 연지도 어느덧 30년이 넘었습니다. 이 곳이 개업 초기에 좀 더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참 재밌습니다. 주변에 장사가 아주 잘 되는 고깃집이 있었는데, 손님들이 넘쳐나다 보니 한 발 늦은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근처 진천 생고기로 유입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지 그런 운으로만 30년 넘게 가게를 이어갈 순 없었겠지요. 주어진 기회를 잡기 위한 부부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신선한 고기를 갖다가 손님이 보는 곳에서 직접 썰어줍니다. 고기 가지고 장난치지 않음을 보여주고 신뢰를 주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네요."(진수진)"고기든 채소든 재료를 속이지 않고 좋은 걸 쓰니까 손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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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2 군포 재궁태권도장]태권도장을 지키기 위해 경비원이 되다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마약은 끊어도, 태권도는 못 끊는다여러분은 '태권도'하면 어떤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 여럿과 함께 태권도장으로 향했던 어린 시절 모습이 선명합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 출전한 문대성 선수가 상대 선수를 멋진 뒤돌려차기로 제압한 장면도 기억 한편에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 태권도를 소환해 보려고 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28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남 재궁태권도장(군포) 총관장입니다.이영남 관장이 태권도를 시작한 계기는 유년시절 남들보다 작은 '키' 때문이었습니다. 보통의 부모들이 그렇듯 이 관장의 아버지도 자식의 성장이 또래보다 더딘 걸 염려해 아들을 태권도장에 보낸 것이었죠. 부모의 손에 이끌려 시작한 것이지만, 그는 금세 태권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취미 생활 정도로 여긴 태권도가 어느새 그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고, '태권도의 길'을 가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태권도를 시작한 뒤로는 몸집이 큰 사람들을 상대해도 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이 단련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까 말 그대로 배짱이 아주 대단해졌죠."그토록 사랑한 태권도였지만 한때나마 스스로 도복을 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과거 태권도 관련 단체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했다가 승단 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