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 [인터뷰…공감] 현존 최고 애관극장 다룬 다큐 '보는 것을 사랑한다' 윤기형 감독

    [인터뷰…공감] 현존 최고 애관극장 다룬 다큐 '보는 것을 사랑한다' 윤기형 감독 지면기사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극장으로 알려진 애관극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사랑한다'를 연출한 윤기형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작은 영화'라고 낮춰 소개한다. 하지만 인천과 우리나라 공연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따져본다면 결코 작은 영화라 말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최초의 애관극장이 팔릴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알려지게 된 것도, 이후 애관극장을 지키겠다고 나선 시민모임이 결성되고, 인천시가 매입을 검토하고 나선 상황에 이르게 된 것도 윤 감독이 만들려던 이 작은 영화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면 애관극장은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지난 10월28일 전국 10여개 상영관에 걸린 러닝 타임 75분의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사랑한다'의 윤 감독을 최근 애관극장 앞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개봉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서 그가 6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든 작품의 성적표가 궁금했다. 다른 상영관에서는 영화를 모두 내렸고 현재 애관극장 한 곳에서만 상영을 이어가고 있단다. 아직 1천명의 관객도 만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선 섭섭하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작은 영화잖아요. 너무 지역적인 소재이기도 하고요. 많은 분이 보시기는 힘들겠다는 예상을 하긴 했지만 예상대로 극장에 오질 않으시네요. 그래도 인천에서는 좀 봐주시지 않겠냐고 기대를 하긴 했는데, 관객의 판단이니까요."그가 자신의 영화를 작은 영화라고 소개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그의 본업은 CF 감독이다. 자동차, 가전제품, 의류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CF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광고를 만들다 보니 마음 한구석에 답답한 마음이 남아있더군요. 광고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거거든요. 남의 이야기를, 남의 물건을, 그것도 아주 잘 해줘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제가 광고주를 가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반대로 다큐멘터리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다른 다큐멘터리 감독님이 들으시면 기분 나쁘겠지만 그냥 시간 될 때 조금씩 찍었습니다. 제

  • [인터뷰…공감] 한국 대표 건축가 승효상… '빈자의 미학'을 말하다

    [인터뷰…공감] 한국 대표 건축가 승효상… '빈자의 미학'을 말하다 지면기사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대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활동반경이 줄어들며 재택근무, 비대면 등 자신만의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공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 여러 매체들을 보면 집, 인테리어 등을 주제로 한 아이템이 넘쳐난다.이는 '건축'을 아우르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인문학적 개념까지 더한 '건축인문학'으로 관심을 확대시켰다.얼핏 최신 개념 같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70)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건축은 인문학'이라고 말해왔다. '빈자의 미학'으로 대표되는 건축철학을 30여 년간 구축해오고 있는 승효상 건축가를 서울 동숭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겸 서재, 생활공간이기도 한 '이로재(履露齋)'에서 만났다. 건축철학 '빈자의 미학' 30여 년간 구축'장식은 죄악' 아돌프 로스에 영향'건축가가 건축 통해 세상 혁명' 깨달아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 내세워 먼저 근황을 물었다. "국가건축정책위원장직을 마감하면서 (공공 직책을) 완전히 끝낸다고 선언했다. 제 개인의 건축작업에 집중하겠다 했고 현재 건축설계작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그는 제5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서울시 총괄건축가, 파주출판도시 코디네이터 등 열거하기도 벅찰 만큼 다양한 직책을 맡아왔고 그런 그가 더 이상 공적인 직책은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사실 그는 쉼 없이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 건축의 거목 김수근 선생 수하의 공간연구소에서 일했고, 중간에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서 공부를 마쳤다. 이후 공간연구소 대표이사직을 맡았고 1989년 건축사무소 이로재의 문을 열었다."1980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빈)로 유학을 갔다. 비엔나에 가서 건축가 '아돌프 로스'(20세기 초 활동, '장식은 죄악'이라 규정하고 일체의 장식을 제거한 집을 지었다)를 알게 됐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영감을 받아 모더니즘이 시작됐고 20세기 패러다임이 됐다. 아돌프 로스 이전과 이후 건축이 달라졌다. 건축가가 건축을 통해 세상을 혁

  • [인터뷰…공감] 첫발 뗀 '위드 코로나'… 동분서주하는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인터뷰…공감] 첫발 뗀 '위드 코로나'… 동분서주하는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지면기사

    매일 신규 확진자, 위중증환자 수를 알리는 뉴스와 일상회복의 희망을 말하는 위드 코로나 뉴스가 공존하는 시대. 참 어렵고 두렵지만, 그럼에도 조심스럽게라도 희망을 전해야 하는 지금이다.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판단'이 중요해졌다. 신중하면서 신속한 판단, 상반된 그것들 사이에서 긴장감은 더 팽팽해졌다. 단계적 일상회복을 통해 '위드 코로나'가 시작된 지 열흘이 되던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도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지난달 29일 단계적 일상회복 이행계획 발표와 함께 국민이 기대하던 일상회복으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기대와 함께 일상회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은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단계적 일상회복에 대한 안정적인 연착륙을 위해 중앙과 지방 간 협력이 매우 중요합니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2차장을 겸직하는 전 장관은 매일 전국 17개 시·도지사와 중앙부처 장관들과 위험상황을 공유한다.위드 코로나로 많은 국민들이 코로나19 이전 일상을 조심스럽게 되찾고 있는 것은 희망적이지만 자칫 감염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공존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병상확보, 재택치료, 예방접종 등 코로나 대응 정책은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여기에 더해 완전한 일상회복을 위해선 지역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수시로 영상회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요정책의 변경 사안 등에 대해서 전국 17개 시·도지사와 함께 논의하고 있습니다. 단계적 일상회복 준비과정에서도 시·도지사 협의회장과 시·군·구청장 협의회장이 자치안전분과위원으로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에 참여해 다양한 사안을 협의합니다. 또 일상회복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려면 중앙과 지방 정부의 협력이 추진동력이 돼야 하는데, '시·도 및 시·군·구 일상회복 추진단'을 구성해 전국적 협력 추진체계도 갖추었습니다. 추진단을 중심으로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자체 '일상회복과제'를 추진하고 있고 이 중 우수한 과제에 대해선 이달 중으로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타 지자체에 확산할 계획

  • [인터뷰…공감] 40주년 맞은 성정문화재단… 수많은 결실 함께한 김정자 이사장

    [인터뷰…공감] 40주년 맞은 성정문화재단… 수많은 결실 함께한 김정자 이사장 지면기사

    "창밖의 커튼을 젖히고 따뜻하고 환한 곳을 갈 수 있는 우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죠."40년 전 성정문화재단은 그렇게 탄생했다. 해외 문호 개방은 물론 문화가 척박했던 시기, 세상을 밝게 하고 행복함을 나눌 수 있는 산소 같은 것이 필요했다.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마음껏 꿈꿀 수 있는 터전을 만들 수 있는 씨앗, 그것은 문화단체였다."단지 꿈을 꾼 것이다. 꿈이 없었다면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 김정자 성정문화재단 이사장은 재단을 통해 문화예술의 토양을 다지며 음악으로 문화의 꽃을 피워냈다. 40년이 된 지금에서야 "이제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온 것 같다"고 한 김 이사장은 "이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에서도 대한민국의 문화와 음악을 위해 기여하는 디딤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수많은 문화예술의 결실로 이어진 역사성정문화재단은 1981년 난파소년소녀합창단을 창단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다른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었고, 1년 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속해있는 LA 국립 목회자 협회의 초청을 받아 49명의 어린이를 이끌고 해외 초청연주를 다녀왔다.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었던 도전이었지만, 김 이사장은 용기를 냈다. 아이들의 꿈을 함께 하며, 수많은 해외 공연을 통해 한국을 알리는 문화사절단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척박한 시기 어린이합창단 첫단추 10년후엔 '성정음악콩쿠르'다음 세대에서도 대한민국 문화와 음악 기여하는 디딤돌 역할입상한 학생들 실력 인정받아 세계적으로 두각 '보상'과도 같아캐슬린 김·김우경·김기훈 등 한자리 모여 기념음악회 '뜻깊은 무대'그중에서도 국외 교포를 위한 위문공연이 많았는데 '고향의 봄'을 부르면 어르신들이 눈물을 훔쳤고, 아이들에게 용돈도 쥐어 주었다. 김 이사장은 "실수도 있었지만 보람을 느꼈고, 서로를 위로하며 감사도 했다"며 "합창단이 점차 이름을 알리게 되면서 각국에서 예상치 못한 환대를 받기도 했다"고 떠올렸다.합창단으로 시작한 성정문화재단은 10년 후 '성정음악콩쿠르'를 통

  • [인터뷰…공감] 2년째 송도국제마라톤 홍보대사… '러닝 전도사' 안정은 런더풀 대표

    [인터뷰…공감] 2년째 송도국제마라톤 홍보대사… '러닝 전도사' 안정은 런더풀 대표 지면기사

    지난해 초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시행하면서 사적 모임, 체육시설 이용 등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느끼는 '코로나 블루'에 시달리는 이들까지 생겨나고 있다.코로나19 여파로 건강 관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특히 시간과 장소, 인원에 제약을 받지 않고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운동으로 달리기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안정은(29) 런더풀 대표는 달리기의 긍정적인 영향을 전파하고, 달리기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힘쓰는 일명 '러닝 전도사'다.안 대표는 "평소 달리기와 관련한 행사를 기획하고 글을 쓰거나 강연하는 등 다양한 일을 하는데 이를 통합해 부르는 직업이 없어 러닝 전도사라는 명칭을 직접 만들게 됐다"며 "러닝 전도사는 러닝을 시작하기 주저하는 사람들과 함께 달려주는 페이스메이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가 처음 달리기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2016년이었다. 당시 안 대표는 취업이 안 되고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을 느끼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삶에 매일같이 울면서 시간을 보냈다.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집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안 대표는 길을 가던 이웃 주민에게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 도망가듯 달음박질했다고 한다. 5분 정도 달리고 나니 마음이 안정되고,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날 이후 안 대표는 달리기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함께 뛰는 '러닝 크루'를 찾았다"며 "일주일에 한 번씩 수원에서 서울 남산을 찾아가 크루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달렸는데 마음에 위로가 되고, 삶의 자신감도 생겼다"고 말했다.달리기는 안 대표의 삶을 완전히 바꿔놨다. 특히 달리기를 시작한 지 6개월

  • [인터뷰…공감] '경기지역 기업인들과 진솔한 대화'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인터뷰…공감] '경기지역 기업인들과 진솔한 대화'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지면기사

    지난 18일 동구바이오제약 향남공장. 각 분야를 대표하는 경기지역 기업인들이 한데 모였다. 저마다 어려움을 토로하는 한편 더 많은 지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왜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가운데 앉은 그는 차분히 모든 얘기를 들었다. "검토해보겠다"고 형식적으로 답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선 "솔직히 쉽지 않다", "그건 죄송하지만 어렵다"고 선을 긋는가 하면, 오히려 "저희도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있으니 기업인 여러분들도 도와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동시에 "혁신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서 나온다. 변화에 대응하는 순발력이 중소기업에 훨씬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혁신의 힘을 역설했다.고개만 연신 끄덕이는 게 아니라 귀 기울여 듣고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에 진정성이 묻어나왔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얘기다.기업인들과의 간담회 이후 잠시 만난 권 장관은 이날 동구바이오제약을 찾은 데 대해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혁신형 기업들이 성장했다. 제약 기업들이 특히 그랬다. 이곳 동구바이오제약도 혁신형 제약기업인데, 그런 부분을 국민들께 알리고 직접 살펴보고 싶어서 왔다"고 설명하면서 "혁신의 힘을 괜히 얘기한 게 아니다. 지금은 혁신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과거처럼 조금만 밀리는 게 아니라 일순간 완전히 뒤처지는 상황에 놓인다. 중소기업에서 나올 수 있는 혁신의 힘이 훨씬 크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북돋아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인 것 같다"고 말했다.기업 직원부터 중기부 장관까지 "책임감 매우 큰 자리"장관으로 일한지 8개월 남짓. 지금은 국내 중소·벤처기업과 자영업자·소상공인 관련 정책과 사업을 총괄하고 있지만 한때는 한 기업의 직원이었고 스스로 작은 사업을 해보기도 했다. 정치에 입문해 당 사무처에서,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당 부대변인으로 활동했고 경기도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인 권칠승'의 행보를 시작했다. 기업 직원·사업·의회 등 다양한 경험했지만 세세히 들여다봐야하고 책임

  • [인터뷰… 공감] '우즈베키스탄 연구' 최초 수식어 따라다니는 성동기 인하대 교수

    [인터뷰… 공감] '우즈베키스탄 연구' 최초 수식어 따라다니는 성동기 인하대 교수 지면기사

    중앙아시아 지역의 내륙국 우즈베키스탄을 연구하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전문가로 꼽히는 성동기 인하대학교 교수에게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2000년 한국인 최초로 우즈베키스탄 현지 대학에서 역사학 학위를 받았고, 2007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우즈베크어-한국어' 사전을 펴냈다.2010년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아미르 티무르'에 관한 책을 국내 최초로 한국어로 썼고, 2014년에는 국내 최초로 대학을 해외에 수출한 사례로 꼽히는 '인하대 타슈켄트 캠퍼스(Inha University in Tashkent, IUT)'에서 대외협력실장 겸 'IUT 예비대학(IUT Pre-University)' 교장으로 일했다.그는 올해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펴냈다. 한국인 저자가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한국어로 정리한 책을 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현지 대학서 학위 받고 사전·영웅·역사 정리한 책 출간북방 외교에 중요한 조언도 지난 18일 인하대 60주년 기념관 12층에 있는 연구실에서 성동기 교수를 만났다. 그는 언뜻 보아도 180㎝에 가까운 키에 100㎏은 훌쩍 넘어 보이는 거구였다. 성 교수는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는 우즈베크인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웃었다.책장은 낯선 문자로 쓰인 제목의 책들로 빼곡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유학하며 수집한 러시아어와 우즈베크어로 서술한 역사 관련 책들이라고 그는 설명했다.그에게 왜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졌는지 물었다. 성 교수는 "돌이켜보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경쟁자가 없는 소위 '블루오션'에 관심을 가진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애초에 그의 관심사는 우즈베키스탄이 아니었다. 러시아어를 배운 것이 시작이었다. 그가 러시아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이렇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지원 학과를 고민하던 시기는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이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자본주의 진영에서 참가를 거부한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이에 맞서 공산권 국가가 대거 불참한 1984년 LA올림픽

  • [인터뷰… 공감] '경기도 코로나19 홈케어운영단 초대 단장'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

    [인터뷰… 공감] '경기도 코로나19 홈케어운영단 초대 단장'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 지면기사

    코로나19 국내 감염이 처음 보고됐던 지난해 1월부터 경기도 코로나19 방역대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 그가 경기도 코로나19 방역 대책을 책임지게 된 이야기는 '운명'이라고 표현해도 어색함이 없다."경기도 코로나19 대책을 세우는 자리에 서 있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12년간 일한 병원을 뒤로 하고 경기도의료원으로 옮겨왔고 때마침 코로나19가 발생했습니다. 도에서 감염 대책을 세워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과거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경기도를 도와 일했던 인연이 있던 게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했습니다. 감염병 위기 앞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식과 노하우를 최대한 발휘해 경기도민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수 번의 계절이 바뀌어도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전쟁의 최전선, '경기도 코로나19 홈케어 운영단'을 이끄는 임 원장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신종플루·메르스·코로나19까지…경기도 방역 대책을 그리다임 원장은 2008년부터 12년 동안 아주대학교 감염학과 교수로 일했다. 동시에 10여년간 경기도 감염병 전문가로 주요 감염병 정책을 수립하는데 그의 지식을 아낌없이 쏟았고, 현장의 경험과 판단도 담았다.2009년 신종플루 방역 대책, 2015년 5월 국내 발생이 확인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도 그는 감염병 대책을 세우는 데 함께 했다."코로나19 국내 발생이 보고됐을 때, 정부는 물론이고 지자체도 방역 대책을 세워야 했고 저를 포함한 감염학 전문가들이 경기도와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며 방역 대책을 짰어요." 12년간 아주대 교수로… 신종플루·메르스 등 감염병과 전쟁 경험경기도 코로나 긴급대응단 1년4개월 활동 지자체간 비상연락 구축일일 확진자 급증하자 한정된 병실수 한계 뛰어넘는 관리체계 필요'확진자 집 입원시설처럼 사용' 표방… 재택·자가 치료 중요성 강조신종플루와 메르스, 앞서 겪은 감염병 전쟁 속에 경기도와 함께 방역 대책을 수립했던 경험은 결국 그를 코로나19 긴급대응단 합류로 이끌었다.하지만 쉬운

  • [인터뷰… 공감] 프로야구 SSG 랜더스 '첫 1차 지명자' 인천고 윤태현

    [인터뷰… 공감] 프로야구 SSG 랜더스 '첫 1차 지명자' 인천고 윤태현 지면기사

    1982년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인천에 연고를 둔 프로야구단에는 이른바 '잠수함'이라고 불리는 훌륭한 사이드암과 언더핸드 투수들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원조 잠수함인 태평양 돌핀스의 박정현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중반 SK 와이번스 투수진의 허리를 책임졌던 조웅천, '여왕벌'로 불리며 'SK 왕조' 시절에 벌떼 불펜의 마무리를 책임진 정대현, 2010년대 KBO리그를 대표하는 언더핸드 선발투수 박종훈까지 인천 프로야구단의 잠수함 계보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내년 시즌 SSG 랜더스에는 새로운 잠수함이 출격을 앞두고 있다.2022 KBO리그 드래프트에서 SSG 랜더스의 1차 지명자로 선택된 윤태현(18)이 그 주인공이다.내년부터 KBO리그는 지역 연고지 유망주를 우선 선발하는 1차 지명 제도를 폐지할 예정이어서 윤태현은 신생팀 SSG 랜더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연고 1차 지명자로 이름을 남겼다.윤태현은 최근 경인일보와 인터뷰에서 "처음 야구를 하게 된 팀이자 평소 열렬히 응원하는 구단에 입단하게 돼 매우 영광"이라며 "프로선수로서 당당한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윤태현에게 SSG 랜더스는 매우 특별한 팀이다. 윤태현은 SSG 랜더스의 전신인 SK 와이번스 유소년클럽에서 쌍둥이 동생인 윤태호와 함께 처음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부모님의 권유로 동생과 함께 SK 와이번스 유소년클럽에 다녔다"며 "처음에는 그냥 동생과 공을 던지고 받는 것이 재밌었는데, 야구를 더 오래 제대로 하고 싶어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상인천초등학교 야구부에서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상인천초등학교와 동인천중학교를 거쳐 인천고등학교에 진학한 윤태현은 고교 2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직구 최고구속이 120㎞에 머무는 평범한 투수였다"며 "나처럼 사이드암으로 던지는 당시 3학년 임형원(현 NC 다이노스) 선배를 따라다니며 웨이트 트레이닝을 함께 하고,

  • [인터뷰… 공감] 세계 첫 '재두루미 이동루트' 밝혀낸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인터뷰… 공감] 세계 첫 '재두루미 이동루트' 밝혀낸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지면기사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 남과 북이 맞닿아 있는 한강하구는 오랜 시간 금단의 땅이었다.특별하고 온전한 자연을 간직한 생태계의 보고이자 철새들의 터전인 이곳을 윤순영(67)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은 올해로 꼭 30년째 지키고 있다.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한강의 순수한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기억에 담아내며 응시해왔다.윤 이사장은 말한다. "사람이 중심이 되면 자연은 무의미하게 사라집니다. 자연은 우리의 벗입니다." 참 즐거운 시절이었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60년대 초반, 꼬마 윤순영에게 한강은 부족할 것 없는 종합놀이공원이었다. 봄날 들녘의 삘기(띠의 새로 돋아나는 순)에서 솜처럼 생긴 알맹이를 뽑아 껌처럼 씹으면 달콤한 즙이 입안에 감돌았다. 여름에는 한강으로, 계양천(한강지류)으로 발가벗고 뛰어들었다. 물이 얕아지면 한강에서는 재첩을 잡고 계양천에서는 물고기를 손으로 더듬어 잡았다.짝짓기를 돕겠다며 암컷 왕잠자리 허리에 실을 매어 공중에 돌리는 짓궂은 놀이도 하고, 동생들에게 뜀뛰기 시합을 시켜 등수대로 잠자리를 나눠주기도 했다. 한강 제방에 묶인 소의 똥을 헤집으면 소똥구리가 있었다. 고무신에 강물을 퍼와서는 소똥구리가 파놓은 구멍에 물을 부어 잡았다. 본격적인 가을이 오면 메뚜기사냥이 시작됐다. 소주병에 차곡차곡 쌓거나, 풀 줄기에 훈장처럼 꿰어 가져가 참기름에 볶았다. 논두렁에 심은 콩은 훌륭한 영양공급원이었다. 논에서 생불에 구워 먹으면 금세 입 주변이 시커멓게 변했다.민물과 썰물이 넘나드는 계양천은 겨울마다 물이 교차하는 힘 때문에 두꺼운 얼음이 자연적으로 깨져 나갔다. 조각난 얼음 뗏목을 개구쟁이는 물 위에서 둥둥 타고 다녔다. 한밤중 말라비틀어진 소똥과 나뭇가지를 연료 삼아 불붙인 깡통도 숱하게 돌렸다. 이 모든 게 윤 이사장의 고향인 한강하구와 재두루미의 안식처인 김포 홍도평에서 있었던 일이다.윤 이사장은 "70년대 초까지 한강에는 군 경계철책이 없어 언제든 강가에 드나들 수 있었고 또래들과 함께 벌흙을 온몸에 바르고 놀았는데 비누의 매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