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 [인터뷰… 공감]이은구 前 대우자동차 노조위원장(1990~1992·1996~1998)

    [인터뷰… 공감]이은구 前 대우자동차 노조위원장(1990~1992·1996~1998) 지면기사

    인천은 국내 자동차산업의 본향(本鄕)이라 할 수 있다. 1962년 인천 부평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 공장인 '새나라자동차'가 들어섰다. 비록 일본 자동차를 반제품 상태로 수입해 국내에서 조립하는 방식이었지만, 그 이전까지 미군 군용차 폐품을 활용한 수공업 형태의 '재생자동차'뿐인 국내 자동차산업에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새나라자동차 부평공장은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폐업했다.1966년 '신진자동차'가 새나라자동차 부평공장을 넘겨받아 자동차 생산을 재개했다. 이후 1976년 '새한자동차', 1983년 '대우자동차'로 바뀌면서 인천 자동차산업의 계보가 이어졌다. 대우그룹 부도사태 뒤인 2002년에는 미국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가 대우자동차를 인수했다. 지금의 '한국지엠'이다. 대우자동차 시절 두 차례의 노동조합 위원장(1990~1992년·1996~1998년)을 지낸 이은구(56) 씨는 올해 3월 한국지엠에서 희망퇴직했다.1986년 대우자동차 조립1부에 입사한 지 31년 만이다. 이은구 씨는 노조위원장으로서 회사 측과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한편으론 대우자동차가 누린 영광의 시간과 좌절의 순간을 함께 겪었다. 한국지엠의 시대도 그 출발부터 경험했다. 최근 이은구 씨를 만나 대우자동차부터 한국지엠까지 30년 넘게 근무하면서 보고 느낀 소회를 들었다. 인천 자동차산업 역사의 단면을 현장 노동자의 시각으로 살피자는 차원이다. 충남 아산에서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은구 씨는 초등학교 때 부모를 따라 인천으로 왔다. 아버지는 옛 북구 서운동(현 계양구)에서 농사를 지었지만, 고등학교 등록금조차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그래서 중학교만 마치고 17세부터 자동차정비소에서 일했다. 일하면서 정비 기술을 배우고, 중장비 자격증도 땄다. 군 제대 이후인 1986년 5월 대우자동차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자동차 제조업에 몸담았다. "조립1부에서 시트, 헤드램프 같은 소모품을 조립하는 의장라인에 투입돼 '르망'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입사할 당시는 대우자동차가 G

  • [인터뷰… 공감]감독·코치·선수 '트리플 챔프' 안양 KGC인삼공사 김승기 감독

    [인터뷰… 공감]감독·코치·선수 '트리플 챔프' 안양 KGC인삼공사 김승기 감독 지면기사

    초교 4학년때 감독 권유로 입문… 가세 기울자 '농구로 성공' 결심무릎 부상으로 방황 트레이드 거치면서 마음 다잡아 '가족이 큰 힘'팀 맡고 싸늘한 시선에 적응 쉽지 않았는데 선수들이 잘 따라와줘솔선수범 주장 양희종 고마워… 선수시절 우승보다 지금이 더 행복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 김승기 감독은 지난 2002~2003시즌 원주 삼보(현 동부) 선수로 첫 우승을 차지했고 2007~2008시즌에는 코치로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지난 2일 감독으로 2번째 시즌만에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며 선수와 코치, 감독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린 첫번째 농구인이 됐다.서울잠실체육관에서 진행된 챔피언결정전 6차전 경기가 끝나는 순간 김 감독은 선수들을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 화제가 됐다. 감독 2년차에 우승이라는 성과를 이뤄낸 김 감독을 7일 안양실내체육관에 위치한 인삼공사농구단 사무국에서 만나봤다. ■ 어려운 가족 위해 힘이 되고 싶었던 청소년 김승기농구팬이라면 김승기 감독을 떠올릴때 터보가드라는 애칭을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코치와 감독으로서의 김 감독은 묵묵히 선수들을 지켜보는 듬직한 모습일 것이다.그런 김 감독의 농구와의 첫 인연은 우연이라고 말해야 하는게 맞는 거 같다.김 감독은 "농구를 처음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때다. 키가 커서 조회때 뒤쪽에 서 있었는데 체육 선생님이 이름을 적어가서 농구부로 부르셔서 농구를 하게 됐다. 그때는 농구가 인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고 회상했다.이어 김 감독은 "사실 나는 당시 복싱이나 마라톤 선수가 멋 있어 보여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농구부로 불러서 선생님의 설득으로 농구와 인연을 맺었다"며 "농구를 하다 보니까 관두고 싶어도 관둘 수 없는 상황이 됐다. 6학년때는 소년체전에서도 우승했고 출전하는 모든 대회에서 딱 한번 질 정도로 잘했었다"고 전했다. 서서히 농구에 대한 재미를 알기 시작할 무렵이던 중학교 시절 갑자기 가세가 기운 집안을 보며 김 감독은 눈물을 흘리며 농구로 성공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김 감독은 "중학교

  • [인터뷰… 공감]하윤수 제36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인터뷰… 공감]하윤수 제36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지면기사

    하윤수(54)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힘 있는 교총'을 강조한다. 그는 지난해 '가르칠 맛 나는 학교, 선생님이 행복해지는 파워 교총'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워 36대 교총 회장에 당선됐다. 교권 회복과 함께 국내 최대 교원 단체인 교총의 대외적 역량을 강화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하윤수 회장은 지난달 26일 경인일보 인천본사에서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반 정치꾼'이라고 농담처럼 소개했다. 실제 그는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상 교권 보호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에서 여·야 의원을 가리지 않고 만나 설득했다.하 회장은 말에 막힘이 없었고, 답변은 구체적이고 명확했다. 빠른 의사 결정과 추진력으로 '불도저'란 별명을 갖고 있다. 그는 "교육에는 답이 없다"면서도 "교사가 웃어야 아이도 따라 웃는다. 교사가 신바람 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36대 한국교총은 '교권 강화'를 지향한다. 교총 회장 취임 후 어떤 일들을 하셨나.교권 침해에 대한 가중 처벌 도입이다. 지난해 6월 취임하고 '제1호 결재'를 한 것이 '교원지위법 개정 추진'이었다. 교육의 질은 교원의 질을 넘을 수 없다. 교육자가 올바른 교육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우리 뜻에 국회도 공감했다. 국회에서 지난해 11월과 지난 2월 개정안이 발의됐다. 교육 활동 침해 행위가 위법하다고 판단되고 피해 교원이 요청할 경우 교육감이 수사기관에 고발하게 하는 것, 교육 활동 침해 학생의 보호자가 특별 교육 등을 이수하지 않을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 등이 골자다. 또 전국 1천600여 학교에서 '1학교 1고문변호사 제도'를 도입했고, 매년 교권 침해 사례를 종합·정리해 발표하면서 정부에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 교총의 활동으로 학교 현장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교육 활동 침해에 대한 선생님들의 대응 자세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참는 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교권을 스스로

  • [인터뷰… 공감]대선 레이스 '고배'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다짐

    [인터뷰… 공감]대선 레이스 '고배'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다짐 지면기사

    지지율 1%만 보면 얼마나 불합리하게 느끼겠나정치는 변화하는 과정 견제 선택한 국민 놀라워다당 시대 '협치' 과제… 선거구 개편·개헌 필요정치 접을 수 있다 생각하고도 고민끝에 탈당독일 우파 개혁 택한 좌파 슈뢰더의 희생처럼국가미래 위해 개인이익 포기 옳은 선택 확신경기도 새정치·경제 실험은 시대적 흐름 '자부'연정만 봐도 한국의 기준, 나라 이끈다고 생각4차 산업혁명에 日 대형서점 츠타야 접목 검토책임을 완수하고 생각한 바를 행동으로 실천했을 때, 궁수는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는 해야할 일을 했고 두려움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과녁을 빗맞혔더라도 그에겐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다. 그는 비겁하지 않았으므로.-대선 경선과정서 남 지사가 소개한 책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 中에서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늘 앞으로 걸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내리 다섯 번을 이기고, 모두가 진다고 했던 2014년 도지사 선거에서도 승리했다. 앞으로 향하며 미래를 가리켰다. "저곳으로 가야만 우리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외침은 경기도에서 미래 정치·경제·사회모델인 연정과 공유경제, 따복공동체를 낳았다. '최순실 게이트'로 새누리당이 흔들리자 망설임 없이 당을 나와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내걸고 새로운 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대선을 향해 나아갔다.앞으로만 걷던 그가 넘어진 채 멈춰섰다. 지지율은 1%에 머물렀고 '안방'인 경기도에서도 상대 후보에게 졌다. 도청으로 돌아온 후에도 '레임덕' 위기라는 지적에 직면했다. 그가 새롭게 깃발을 꽂은 바른정당 역시 자당 대선 후보의 사퇴를 논의할 만큼 녹록지 않다.도지사 임기가 끝나는 1년 반 뒤, 앞으로만 향하던 그의 길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아쉽지만 국민은 놀라웠다"뭐, 제 한계니까."지난 20일 아침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만난 남 지사는 이러한 상황에 '쿨하게' 답했다. "기본적으로 제가 부족해서 그렇고 바른정당이 처한 스탠스나 상황이 이번 대선에서 평가받기는 어려운 구조적 문제도 있었다고 봐요. 토론

  • [인터뷰… 공감]제종길 안산시장

    [인터뷰… 공감]제종길 안산시장 지면기사

    아이 잃은 부모·이웃 잃은 시민,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 서로 보듬어야유가족과 분노하고 싸워나가고 싶었지만 '장기적으로 도움되는 일' 고민모든 행정서비스 물밑 지원… 정부, 특별법 명시된 경제활성화등 힘써야맹골수도에 잠들어있던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3년 동안 어두운 바다 밑에서 거친 조류를 고스란히 받아낸 선체는 상처투성이였다. 3년을 하루 같이 기다렸던 안산 역시 세월호처럼 상처투성이가 됐다. 세월호 현수막 철거, 추모시설 조성, 단원고 기억 교실 이전 등을 둘러싼 민·민 갈등은 증폭됐고 안산은 또 한 번 갈기갈기 찢어졌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경인일보와 만난 제종길(62) 안산시장은 상처와 갈등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 수 없는, 그래서 딱 가운데에서 양쪽을 바라봐야 하는 그의 가슴은 양쪽 모두의 아픔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아픔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서로 상대방의 생각이 틀렸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생각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쉽지 않아요. 아이를 잃은 부모들과 이웃을 잃은 시민들은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입니다. 서로에게 남아 있는 상흔을 서로 보살피고 보듬어야 합니다."안산은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가 가장 많이 살고 있던 지역이다. 단원고 희생 학생들이 살고 있던 도시로, 당시 2학년 학생 246명과 교사 10명이 숨졌고 현재 6명(학생 4명, 교사 2명)이 실종된 상태다. 희생 학생들이 가장 많이 살던 와동, 고잔동 일대는 충격으로 지역 공동체마저 무너졌다. 전년도에 고교 평준화가 처음 시행되면서 이 지역 학생들이 대부분 단원고로 입학한 것이 희생자가 집중되는 원인이 됐다. 한집 건너 한집에서 피해를 보면서 이웃들은 크게 웃지도, 화사한 옷을 입지도 않게 됐다. 지난 1986년 시로 승격한 이후 안산은 수도권 최대의 국가산업단지인 안산스마트허브를 중심으로 일자리가 넘치는 공업 도시였다. 하지만 슬픔은 빠르게 전염됐다. 세월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시민들은 참사 후 우울감과 무기력증에 빠졌다. 제 시장은 "세월호 참사로 국민들이 받

  • [인터뷰… 공감]미하엘 그룬트 한국머크 대표이사

    [인터뷰… 공감]미하엘 그룬트 한국머크 대표이사 지면기사

    경기도 판교에 센터 개소후 공항·항만과 가까운 송도로 확장·이전한국 바이오 성장 잠재력은 '스피드' 특유의 속도전으로 우위 가능선행기간 필요한 제약사 대신 위탁생산·바이오시밀러 개발 등 '전략' 현명인허가 절차 간소화·규제 완화 절실… 속도 붙으면 바이오 허브로 발돋움독일 과학기술기업 머크는 1668년 설립됐다. 프레드릭 야곱 머크가 독일 다름슈타트(Darmstadt)의 '천사약국(Engel pharmacy)'을 인수한 것이 기업의 시초가 됐다. 조선 현종 9년, 무신년(戊申年) 때로, 네덜란드 선원 헨드릭 하멜이 '하멜표류기'를 출판하며 유럽에 조선을 최초로 알린 해에 기업의 역사가 시작됐다. 머크는 과학을 기술로 전환해 이를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내년(2018년)이면 창립 350주년을 맞는 머크는 혁신(innovation)을 멈추지 않고 성장했다. 66개국에서 임직원 4만여 명이 근무하는 글로벌 기업의 위상을 갖췄다. 미하엘 그룬트(Michael Grund) 한국 머크 대표이사에게 혁신의 비결을 물었다. 그는 머크 본사 프로세스 개발 랩 매니저, 엔지니어링&기술 개발 디렉터, 기능성소재비즈니스(PM-Advanced Technologies Development) 부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혁신의 중심에 있었다.그룬트 대표이사가 밝힌 머크의 성장 비결은 20~30년 단위로 기업을 재탄생시킨 것이었다. 머크는 지난 2006년에도 큰 변화를 시작했다. 핵심 사업 분야 관련 기업은 인수했고, 연관성이 떨어지는 분야는 과감하게 정리했다. 생명과학 산업에서 선두를 다투던 미국기업인 밀리포아와 시그마알드리치를 각각 2010년과 2015년에 인수했고, 제네릭(복제약)과 전자 사업 부분은 통합 등을 통해 정리했다."혁신의 적(enemy)은 사업이 잘되는 것입니다. 경영 환경이 좋을 때 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머크도 2006년 혁신의 과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럴만한 재무적인 이유가 없었습니다. 전략적으로 판단했던 것입니다."그룬트 대표에게 혁신을 시작할 '타이밍'을 어떻게

  • [인터뷰… 공감]경기도 최연소 아너 소사이어티 27세 한승환 피넥터 대표

    [인터뷰… 공감]경기도 최연소 아너 소사이어티 27세 한승환 피넥터 대표 지면기사

    책 출간과 함께 '버킷리스트' 실현… 27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수험생 시절에도 봉사 이어와 중증장애인 활동보조때 많이 배워당분간 일에 전념… 블록체인기술 더 많은 적용 위해 '바쁜 나날'젊은층 살기 어렵다고 하는데 기부로 자존감 높이는 계기 됐으면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위워크 빌딩에서 경기도 최연소 아너 소사이어티 한승환(27) 피넥터 대표를 만났다. 1억원을 기부한 20대 청년이라니. 그를 만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얼마나 여유 있기에?'라는 삐딱한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그만큼 여유가 없어서 못한다'는 질투 섞인 핑계도 대봤다. 하지만 그에게서 고액 기부자로서의 특별함을 찾으려 했던 것이 민망해질 만큼 그는 평범했다. 내 것을 떼어 누군가에게 나눠준다는 마음이 중요할 뿐, 기부금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는 너무도 당연한 그의 말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한 대표는 지난달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하면서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 경기 132호·평택 7호 회원이 됐다.아너 소사이어티는 지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으로, 한 대표는 최연소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라는 타이틀도 함께 얻었다.그는 "우연히 아너 소사이어티에 대해 알게 됐는데 많은 분들이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해 가입하는 모습에 감동 받아 30살 이전에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는 것을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삼았다"며 "다행히 버킷리스트를 실현했는데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것은 27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전에도 크고 작은 기부를 계속 해왔다는 한 대표는 어릴 때부터 10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며 주변을 돌아보고 돕는 것이 일상처럼 자연스럽다고 했다.그는 "8살 때 부모님과 함께 어르신을 찾아가 소일거리도 도와드리고 어깨를 주물러드렸던 게 봉사의 시작이었다"며 "이후 20살이 될 때까지 수험생 시절에도 빼놓지 않고 10여년 간 봉사를 이어왔는데, 공부보다도 봉사가 사회에 더 필요한 일이고 우

  • [인터뷰… 공감]쇼트트랙 안현수·현준 '형제 스케이터' 길러낸 안기원씨

    [인터뷰… 공감]쇼트트랙 안현수·현준 '형제 스케이터' 길러낸 안기원씨 지면기사

    어린 시절 큰 형 안현수 유난히 따라… 향상된 실력 올림픽 金 향한 의지 못 꺾어러시아 귀화 빅토르 안, 소치 3관왕으로 명예회복 기뻐… 평창 이후 지도자 준비스스로 세운 목표위해 쏟는 노력 닮은 꼴… '현수 아버지' 경험으로 현준 도울 것제98회 전국동계체육대회가 지난달 초 강원도 평창 일대에서 열렸다. 당시 인천광역시 선수단은 사전 경기로 열린 빙상 종목에서만 금 4개, 은 3개, 동 3개를 획득했다. 전 대회에서 노 골드로 부진했던 인천 빙상이 부활한 것이다.특히 고교 1학년이었던 안현준(인천 신송고)은 고 2·3학년 선배들을 제치고 쇼트트랙 남고부 3천m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인천 쇼트트랙 사상 첫 동계체전 남고부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순간이었다.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1천500m 은메달리스트인 이은별을 비롯해 인천 유일 동계종목 실업선수인 천희정(인천시체육회) 등 여자 선수들이 인천 쇼트트랙을 이끌었던 가운데, 안현준이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다. 안현준은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인 빅토르 안(안현수)의 동생이다. 안현준이 올해 동계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자 국내 빙상계에선 '그 형의 그 동생'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형을 넘어설 재목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었다.안현준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스케이트를 탔다. 5학년에 선수 등록을 했으며, 6학년 때 전국대회 메달권에 진입했다. 일반적으로 유치원~초등학교 1학년 때 스케이트를 접한 후 4~5년 후 초등학교 고학년에 두각을 나타내는 타 선수들을 앞지르는 성장세였다. 중학교 때에는 각종 부상으로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지난해 성남에서 인천으로 전학하면서 인천 선수로 나선 첫 동계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세계적 선수인 빅토르 안에 이어 국내 정상급 선수로 커가고 있는 안현준까지 형제 스케이터 뒤에는 아버지가 있다.최근 인천 선학국제빙상경기장에서 만난 안기원씨는 "얼마 전까지 현수 아버지로 불리다가 이젠 현준이 아버지로 불리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 [인터뷰… 공감]퇴임 앞둔 조건호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인터뷰… 공감]퇴임 앞둔 조건호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지면기사

    각종 모임서 공직 후배인 군수·구청장에도 고개 숙이며 기부 설득대뜸 1억원 수표 건넨 '수도사 주지' 김혜운 스님 가장 기억에 남아귀하지 않은 성금은 없어… 최고의 성과 모두 인천시민에 공돌려직원들 시간 뺏을라 이임식 안해… 이곳에서 시간은 행복이었다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던 때 더 어렵고, 더 힘든 이웃들을 돌보자는 취지로 설립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배지는 어느덧 나눔과 기부의 상징이 됐다. '짠물 도시' 인천에서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열매가 인천 시민들의 가슴에 물들듯 새겨지고 있다. 지난해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인천공동모금회)는 전국 17개 지회 가운데 최고 성과를 냈다. 그 뒤에는 지난 6년간 인천공동모금회를 이끌어 온 조건호(83) 회장이 있다.1935년 옹진군 북도면 시도에서 태어난 조 회장은 1961년 대학을 졸업하고 공직에 입문했다. 경기도와 인천시 요직을 두루 거친 조 회장은 1995년 "고향 발전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민선 초대 옹진군수 선거에 뛰어들어 당선됐다. 이후 2대, 3대 군수를 내리 역임한 뒤 2006년 45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2011년 3월부터 인천공동모금회를 맡은 조 회장은 6년의 임기를 마치고 오는 30일 퇴임해 평범한 인천시민의 삶으로 돌아간다.조 회장이 인천공동모금회와 인연을 맺은 2011년은 전해 발생한 공금유용사건 등으로 공동모금회의 위신과 신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때였다. 추락한 신뢰를 다시 회복해야 하는 막중한 시기에 인천공동모금회가 지역사회 원로로 꼽히는 조 회장에게 'SOS'를 친 것이다."가족들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모두가 만류했어요. 그런데 딸이 오히려 '이런 기회에 봉사하고 조직을 쇄신시키는 것이 더 보람된 일 아니냐'고 말하는 거예요. 마침 재단을 세워 지역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알아보고 있었기 때문에 회장직을 수락했지요."조 회장이 인천공동모금회 회장이 된 후 느낀 것은 "인천에

  • [인터뷰… 공감]'경기도 최초 여성 1급 공무원' 이화순 황해경제자유구역청장

    [인터뷰… 공감]'경기도 최초 여성 1급 공무원' 이화순 황해경제자유구역청장 지면기사

    젊은 女직원이라는 이유로 첫 직장 '감원 1호' 이후 동료 권유로 공직입문 29년 몸담아주민과 더불어 살던 구청장 시절 가장 기억에 남아… '내가 이래서 공무원이 됐지' 생각MOU 체결 기업 관계자들과 소그룹 간담회 계획 등 실제 투자로 이어질 수 있게 노력그의 걸음은 늘 처음이었다. 경기도 최초의 여성 기술감사계장, 성남 수정구청장, 도시주택실장, 기획조정실장, 의왕부시장, 화성부시장, 의회사무처장까지. 그리고 이달 초 경기도 여성 공직자로는 처음으로 1급 공무원이 되면서 또 다시 의미있는 족적을 남기게 됐다. 이화순 경기도 황해경제자유구역청장의 얘기다. 황해경제자유구역청장직 역시 여성 공직자가 맡는 것은 처음이다.누구도 밟지 않은 길에 가장 먼저 발을 내딛는 기분은 어떨까. 14일 경기도청에서 만난 이 청장에게 '경기도 최초 여성 1급 공직자'가 된 소감을 묻자 그는 "하하, 뭐 특별히 할 말이 있을까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서 감사하고 정말 좋습니다"라며 웃었다. 2017년 4월 그는 공직에 최초 임용된 지 29년이 된다. 이 청장이 가진 수많은 '최초'의 타이틀 속엔 울고 웃었던 29년의 시간이 묻어있다."제가 공직에 입문할 때는 여성이 적었기 때문에 '최초', '처음' 같은 수식어들이 많이 붙었지만 요새 들어오는 후배 공무원들을 보면 '내가 요즘 시험 봤으면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생각을 많이 한다"는 이 청장은 "사회가 여성, 남성에 대한 구분이 많이 엷어지고 누구나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본 토대는 마련된 것 같다. 선배가 이렇게 걸어온 길을 발판 삼아 많은 후배들이 더 크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최초 여성'1997년 3월 경인일보는 '부실시공 포도대장 떴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술 분야 여성 1호로 경기도 기술감사계장이 된 당시 이 청장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청장은 "제가 당시 건설교통부에서 도시계획 업무를 하다 1997년 경기도에 왔다. 당시 기획감사계장을 맡게 됐는데 경인일보에 기사가 났다"며

  • [인터뷰… 공감]한국교총 직선제 최초 여성 회장 인천교총 박승란 교장

    [인터뷰… 공감]한국교총 직선제 최초 여성 회장 인천교총 박승란 교장 지면기사

    교총 가입 강요 교장에 맞서 탈퇴 '해야할 말 못참아'이사 제의 받고 다시 인연… 교섭위원 활동 이어와'현원 대장' 전산화 등 새로운 일보다 관행 철폐 앞장현장 목소리 중요… 좋은 교육 환경 만드는 일 최선국내 최대 규모의 교원 단체인 한국교직원총연합회(한국교총) 70년 역사에서 직선제로 선출한 첫 여성 회장이 인천에서 나왔다. 인천시교원단체총연합회(인천교총) 박승란 회장(인천신광초 교장)으로 지난 달 제14대 인천교총 회장에 취임해 활동 중이다. 한국교총에 따르면 박승란 회장이 뽑히기 전까지 17개 시·도교총에서 여성으로 회장에 오른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중앙대 설립자로 초대 총장을 지낸 임영신(1899~1977년) 박사가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한국교총의 전신인 대한교육연합회 11~13대(1965~1972년) 회장을 맡은 적이 있는데, 임 회장은 간선으로 선출됐다.초·중등 교원 성비 불균형이 매년 심화해 사회적 논란이 되는 상황이다. 교원 단체인 시·도교총의 여성 리더가 70년 만에 나왔다는 사실은 교총 내부에서도아는 이가 많지 않다.'최초의 여성 회장'이란 타이틀을 염두에 두고 지난 27일 오전 11시 인천신광초에서 박 회장을 만났다. 박 회장은 "주변에 여자 선배님들 중 '자랑스럽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라면서도 "여자로서라기 보다 인천교총 활동을 오래 해왔고, 함께 활동한 분들의 권유도 있어 회장에 나섰다"고 말했다. 박승란 회장을 오랜 기간 지켜본 이들은 그녀를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박 회장도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는 순간을 못 참는다"고 말했다. 14대 인천교총의 캐치프레이즈는 '선생님 곁에 교총'이다. 교권 보호·확립을 위해 실질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홍보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박 회장은 1961년 경기도 시흥시 소하리, 지금의 광명시 KTX역 부근에서 1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초등 교사였던 부친의 '외벌이'로 꾸려지는 생계가 넉넉하지 않았지만, 1960년대에 딸을 유치원에 보낼

  • [인터뷰… 공감]안신권 광주 나눔의 집 소장

    [인터뷰… 공감]안신권 광주 나눔의 집 소장 지면기사

    정부 합의 반대하자 지원 끊겨 흉상제작 중단 '씁쓸'… 예산 빌미 좌지우지하면 안돼'귀향' 개봉 후 후원금 급증… 유재석 등 유명인 기부 색깔몰이·대기업 무관심 아쉬워살아 생전 진정성 어린 사과 받게 해드리고 싶어… '아시아 인권 허브'로 발돋움할 것수학 전공한 그가 17년전 사회복지대학원을 다닐때 우연히 받은 권유, 아내 응원 힘입어 인연맺어정치인들이 시즌만 되면 찾아와 허리를 굽히는 곳. 항상 할머니들의 손을 꼭 잡으며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곳.하지만 (정치인에 의해)달라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정치논리에 의해 소외 당하기 십상인 곳. 바로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에 소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 집'이다.나눔의 집은 그 시설만 놓고 보면 사회복지시설이다. 만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양로원이다. 일반 양로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여기에 부대시설로 역사교육을 위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한 인권박물관)과 '국제평화인권센터'가 운영중이다.이곳의 운영을 맡고 있는 안신권(56) 소장은 나눔의 집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기까지 궂은 일을 도맡아 한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우연한 기회에 이곳을 방문해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17년, 안 소장은 막연한 선입견으로 이곳을 바라봤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2000년 12월이었던 듯하다. 아내와 우연한 기회에 나눔의 집을 찾았다. 당시에도 이곳은 아픔을 간직한 할머니들이 모여 계시는 곳으로 언론에 오르내릴때라 호기심반 기대감 반으로 찾았다"는 안 소장은 이곳에서 만난 일본 여성에 강렬한 인상을 갖게 됐다고 한다. "단국대에 도예를 배우러 온 일본 여성분이셨는데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꿋꿋이 봉사하는 모습에 느낀 바가 많았다"고 회상했다.그러던 중 나눔의 집 관련 스님 한 분이 '이곳에 사회복지전문가가 없으니 일을 도와주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고, 안 소장은 고심을 거듭

  • [인터뷰… 공감]병상에 누운 장용석 전 경장 13년째 지키는 사람들

    [인터뷰… 공감]병상에 누운 장용석 전 경장 13년째 지키는 사람들 지면기사

    천차만별의 직업 중 위험한 일이 여럿 있다. 경찰 직업도 그중 하나다. 한때 '권위'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그런 면이 없진 않지만 갈수록 '치안 서비스'가 강조되면서 경찰은 어느덧 위험 직종이 돼 버렸다. 9천519명. 최근 5년간 근무 중 부상당한 경찰관의 숫자다. 이 중 피의자 등의 피습으로 인한 부상자가 2천730명에 달하고, 각종 안전사고에 의한 부상자는 4천224명이나 된다. 장용석(47) 전 경장은 13년전 현장에 출동했다가 의식을 잃었고 지금도 병상에 누워있다. 그 사이 3살이었던 그의 아들은 지난 10일 중학교를 졸업했다. 장 전 경장도 그렇지만 그의 가족이 꿋꿋이 삶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는 경찰 동료들의 지원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장 전 경장을 잊지 말자며 그의 이름을 단 '장용석 카페'를 열었고 '아빠 역할'도 대신하고 있다. 동료들은 늘 장 경장의 상태가 호전됐는지에 관심을 두고, 아들의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딸의 생일이 언제인지를 줄줄이 꿰고 있다.물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일에 쫓기며 그를 잠시 잊기도 했다. 하지만 장 경장이 병상에 누운 지 만 10년이 되던 해, 수원중부경찰서장으로 부임한 고기철 서장의 의지와 직원들의 마음이 더해지면서 다시 그가 동료들의 곁에 왔고, 그들의 내민 손길은 따뜻하다 못해 그야말로 뜨겁다.장 경장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을 만났다. 고기철 전 서장과 조상만 수원중부서 경리계장, 이영희 복지담당 행정관이 20일 오전 수원중부경찰서 내에 있는 '장용석 카페'로 모였다.-장 경장이 부상당했을 때 상황은.조상만(이하 조) : 2004년 당시에는 서호파출소가 지금의 수원서부경찰서가 아닌 수원중부서 관내였다. 장 경장이 서호파출소에서 근무하던 중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가 떠밀려 넘어졌다. 하필이면 인도 경계석에 머리를 부딪히는 바람에 곧바로 의식을 잃었고,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급히 이송됐지만 회복이 어려웠

  • [인터뷰… 공감]김세훈 인천 청학숲유치원 이사장

    [인터뷰… 공감]김세훈 인천 청학숲유치원 이사장 지면기사

    유복한 환경서 경기고 나왔지만 SKY 못들어가 사업으로 보여줘야겠다 다짐주변서 말렸던 해수욕장 인근 수영장·도심 아닌 산골 유치원 등 '믿음의 결실'자전거로 전세계 누비고 팝송 음반도 발매… 젊은이들도 끊임없이 시도하길48년전 산기슭 야외풀장은 대박이 났고 그 옆 유치원은 숲교육 모델이 됐다세월이 흘러 장로합창단원이 된 그는 꿈의 무대인 카네기홀에도 섰다김세훈(72) 인천 청학숲유치원 이사장은 지역사회에서 알아주는 '모험왕'이다. 1969년, 그가 국민관광지로 이름났던 해수욕장인 송도유원지 인근 연경산 기슭에 인천 첫 야외풀장인 청학풀장을 개장한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 모두 "미쳤다"며 혀를 내둘렀다. 1982년 야외풀장 바로 옆에 청학숲유치원을 세웠을 때도 "어느 학부모가 산비탈을 올라야 갈 수 있는 유치원에 자녀를 맡기겠느냐"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청학풀장은 48년 넘게 인천시민의 추억이 깃든 공간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청학숲유치원도 생태체험교육으로 현재 인천에서 가장 입학 경쟁이 치열한 사립 유치원으로 성장했다.김세훈 이사장의 인생은 이렇듯 도전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 부르기를 즐겼던 그는 지난해 9월 18일 미국 뉴욕에 있는 카네기홀(Carnegie Hall)에서 공연을 펼쳤다. 뉴욕기독교방송(CBSN)이 주최한 찬양대합창제에 참가한 인천장로성가단의 일원으로 전 세계 음악가들이 평생에 꼭 한 번은 밟길 원하는 '꿈의 무대'인 카네기홀에 우뚝 섰다. 김세훈 이사장을 비롯해 머리가 희끗희끗한 60~70대가 대다수인 인천장로합창단원들은 '꿈의 무대'에 오르기 위해 매주 토요일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연습에 매진했다고 한다. "4년 전부터 노래학원에 다니면서 실력을 갈고닦았고, 지난해 초 오디션을 통해 인천지역 교회 장로들이 교파를 초월해 구성한 인천장로성가단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카네기홀이라는 세계적인 무대에서의 공연이 확정됐을 때 느낀 설렘, 공연장 2천500석을 가득 메운 관객 앞에 섰을 때의 떨림, 2곡의 합창곡을 부른 뒤 온몸에 감돈 전율이

  • [인터뷰… 공감]라오스서 희망 전하는 '야구 천사' 이만수 감독

    [인터뷰… 공감]라오스서 희망 전하는 '야구 천사' 이만수 감독 지면기사

    SK 떠날때 '야구 전도사 활동 왜 머뭇 거리냐' 아내 질책에 라오스로 걸음 옮겨현지 청소년들 꿈을 위해 야구장·숙소·학교 건립 등 앞으로 20년은 더 활동해야더 많은 분들의 관심으로 '한국 방문' 원하는 아이들에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야구팬들이 기억하는 야구인 이만수는 선수시절 삼성라이온즈를 이끈 강타자, 메이저리그 지도자로서 활약한 후 국내 프로야구로 돌아와 팬들 곁으로 다가서는 감독의 모습일 것이다. 또 최근에는 자신이 가장 열심히 했던 야구를 통해 재능기부를 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지고 있다. 특히 라오스라는 야구불모지에서 청소년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며 꿈을 심어주고 있다. 화려한 선수시절,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현장 감독을 떠나 기부단체인 헐크파운데이션이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어 '야구 천사'라는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는 이만수 전 SK와이번스 감독을 지난 7일 만나봤다.# 라오스와의 인연은 '가족의 힘으로'최근 라오스를 방문하고 귀국한 이 감독은 인터뷰 시작부터 라오스 이야기를 꺼냈다.이 감독은 "이제 아이들이 희생번트와 희생타도 이해해요. 야구의 룰을 배워나가고 또 하나하나 이해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오니 너무 행복하다"고 말을 꺼냈다.그는 "왜 이말부터 꺼냈냐면요, 사실 야구 규칙이 다른 종목에 비해 너무 복잡하고 어렵거든요.근데 아이들이 야구의 룰을 이해하고 야구인이 돼가는 모습을 보니 행복해서 대뜸 라오스 이야기부터 꺼냈다"고 말했다.이 감독이 라오스에 야구 전도사 활동을 구상한 건 SK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부터다.우연히 지인에게 라오스 청소년들에게 야구를 가르쳐 보는 건 어떻냐고 제안을 받았고 감독 시절 유니폼과 장비를 전달하면서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그리고 SK의 감독을 물러나며 부인 이신화씨가 '지도자 시절 약속했던 야구 전도사 활동을 왜 하지 않고 머뭇 거리냐'는 질책(?)을 했다. 선수생활과 미국 야구 연수, 그리고 한국 지도자 생활까지 항상 묵묵히 옆에서 지켜봐 주던 부인 이씨의 질책성 질문을 받은 이 감독은 유럽 가족여행을 취소하고

  • [인터뷰… 공감]독도 소녀상 건립 앞장선 민경선 경기도의원

    [인터뷰… 공감]독도 소녀상 건립 앞장선 민경선 경기도의원 지면기사

    소중한 영토 지켜내기위한 사명감으로 '독도사랑·국토사랑회' 만들어日 보수여론 자극 위안부 문제에 악영향 등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혹'영토주권 행사·위안부 문제, 정부 외교 전략이 옳은지 생각해보는 계기모금 문의 등 응원 목소리도 많아 포기못해… 서두르지 않고 나아갈 것인기 얻으려고 하냐는 등곱지않은 시선 이해하지만실효 지배 우리땅인데소녀상이든 방파제든뭐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 땅(독도)과 못다 핀 꽃(위안부 피해 문제)…그의 마음을 울리다각양각색의 도의원들 중에서도 그는 가슴이 뜨겁고, 그만큼 끈질긴 것으로 유명하다. 초선 의원이었던 2012년엔 서울~문산 민자고속도로 백지화를 주장하며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79일간, 국회 앞에서 62일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인 시위를 했다. 최근에도 서울 은평구청 앞에서 고양시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폐기물 처리 시설 설치를 막기 위해 68일간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번엔 독도에 소녀상을 세우는 일에 그의 열정과 인내가 집중됐다. 지난해 5월 독도문화축제가 첫 단추였다. 우리나라 가장 동쪽 끝에 발을 내딛었을 때 그가 느꼈던 건 일종의 '사명감'이었다고 했다. 민 의원은 "경기도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맏형이고 도의회도 광역의회 중 큰형이 아닌가. '대한민국의 소중한 영토를 지켜내기 위해 최대 광역의회인 도의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하는 숙제가 마음에 남았다"고 말했다. 동행했던 당시 윤화섭(민·안산5) 의장은 독도 사랑을 실천할 연구단체 구성을 민 의원에게 제안했다. 그렇게 독도사랑·국토사랑회가 그해 10월 발족됐다.그의 가슴을 결정적으로 울린 것은 영화 '귀향'이었다. 스크린을 통해 잠시나마 지켜본 위안부 피해자들의 참상은 마흔여섯인 민 의원을 엉엉 울게 했다. 그리고 그가 독도에서 가져온 숙제의 해답을 찾았다. 평화의 소녀상을 세워 일본의 전쟁 범죄를 소중한 우리 땅 독도에서 또렷이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민 의원은 "독도,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역사 왜곡과 맞닿아있다. 독도는 우리의 영토 주권을 나타내면서도 평

  • [인터뷰… 공감]한의녕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초대 원장

    [인터뷰… 공감]한의녕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초대 원장 지면기사

    '창업 → R&D → 성장 → 강소기업' 비즈니스 체계 구축 '일자리·경제' 투트랙 노력타운홀미팅 등 직원들과 소통 프로그램 운영… 양 기관 불협화음 해소·관행개선 의지시장동향 등 지식공유·정보 분석통해 선제적 대응… 일하는 문화도 실행력 중심으로道 경제예산 70% 차지 통합기관 수장에 비관료 기업인 영입, 그가 주목받는 이유다."경제와 과학의 통합 기관이 된 만큼,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첨병 역할을 하겠습니다."한의녕(58)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이하 진흥원) 초대 원장은 정유년 경기도 경제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의 인물이다.경기과학기술진흥원과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가 통합돼 올해 새롭게 출범한 진흥원은 한 해 예산만 무려 2천100억원에 육박하며 조직원도 243명에 달하는 매머드급 기관이다. 경기도 경제 예산 3천억여원 가운데 70%가량이 진흥원을 통해 사용되는 셈이다. 이 같은 기관의 초대 원장을 맡았으니, 세간의 관심을 끌만도 하다.기관 통합으로 진흥원 원장 자리가 경기도의 경제 부총리급 정도로 격상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한 원장의 발탁과정도 파격적이다. 남경필 경기지사의 측근도, 화려한 경력의 관료 출신도 아니다. 순수 민간업체에서 잔뼈가 굵은 기업인 영입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한 원장은 SAP 등 글로벌 다국적 기업에서 ICT(정보통신기술)분야와 테크놀로지 및 경영컨설팅 등 과학과 경제의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진흥원은 중소기업의 신기술 개발과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융합, 기업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 과제를 맡는다. 과학기술정책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만들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특히 도는 국내 총생산의 22%를 차지하고 연구개발 인력의 36%가 집적된 우리나라 경제·혁신활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과학기술정책을 추진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원장이 원장으로 선임된 후, 적임자를 뽑았다는 평가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진흥원 사무

  • [인터뷰… 공감]김홍용 서정대학교 총장

    [인터뷰… 공감]김홍용 서정대학교 총장 지면기사

    국립대 의대 정교수 내려놓고 모친 유지따라 경영자의 길 걸어교육 불모지 양주서 3개 학부·5천명 개교 15년만에 기적같은 성장 일궈자격증 취득 지원 장학금 '눈길' 1명이 3~4개씩 따 등록금 내고 남아2005년부터 취업률 수도권 상위권 지켜 이제는 취업의 질 고민할때전임교수중 3명이 명장 국내 최다… 인성 포함한 실력 키우기 초점연구개발 협력분야 확대·군부대 심리상담 등 지역사회와 공존 노력김홍용(58) 서정대학교 총장은 지금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원래 의사인 그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는 국립대 의대 정교수 자리에까지 오르며 탄탄대로의 삶을 살았다. 이런 그가 별안간 인생 항로를 바꾼 건 서정대의 설립자이자 어머니인 고 김상우 박사가 남긴 유언 때문이다. 김 박사는 타계하기 전 장남인 김 총장에게 학교를 부탁했다. 어머니의 유지에 따라 김 총장은 의사 가운을 벗고 대학 경영자의 길로 들어선다. 적자생존의 살벌한 현 대학생태계에서 신생 사립대학을 이끈다는 것은 '사지(死地)에서 살아남기'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 많은 사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서정대는 개교 15년 만에 3개 학부, 학생 수 5천 명이 넘는 대학으로 성장해 대입에서 수험생과 학부모가 주목하는 '관심 대학'으로 떠올랐다. 2002년 고등학교도 부족했던 '교육의 불모지' 양주에 터를 잡을 때만 해도 비관적인 시선이 팽배했다. 이름 있는 대학도 아니고 신생 대학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주민들도 냉랭했다. 이런 대학이 불과 1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졸업생 취업률이 수도권 최상위로 치닫고, 절반이 넘는 학생이 자격증을 소지하고 가고 싶은 기업을 골라 취업하는 기적 같은 성장을 이뤄냈다. 이처럼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서정대 김홍용 총장을 만나 그의 교육철학과 대학 경영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총장으로서 저의 역할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든 학생이 맘껏 공부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

  • [인터뷰… 공감]인천 '엘림아트센터 운영' 이현건 엘림존 대표이사

    [인터뷰… 공감]인천 '엘림아트센터 운영' 이현건 엘림존 대표이사 지면기사

    건물내 음악 감상실 5곳 마련… 진공관 오디오·아날로그 스피커 통한 색다른 소리 전해300석 규모 공연장 '엘림홀' 최고 시설에 파이프 오르간도 설치 다양한 무대 기회 제공숙박·레저 등 연계사업도 구상… 많은 이들에게 음악 통해 새로운 기쁨 선물하고 싶어최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에 클래식 음악을 위한 전문 공연장 '엘림아트센터'가 들어섰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화 불모지'라는 말을 들어온 인천에 과연 어느 누가, 왜, 클래식 전문 공연장을 만드는 '무모한 도전'을 했는가에 대해 지역 사회에선 궁금증이 많았다. 이 엘림아트센터를 운영하는 회사인 엘림존의 이현건(59) 대표이사를 찾아가 만났다. 그는 "하루하루 바쁘게만 살아온 많은 이들에게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짜릿한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취재진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이 대표이사는 마음이 급해 보였다. 그만큼 보여줄 것, 느끼게 해줄 것이 곳곳에 많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건물 3개 층을 쓰고 있는 엘림존을 모두 감상하려면 갈 길이 멀다"며 음악감상실부터 서둘러 안내했다.기계공학 전공 연 매출 300억대 밸브 제조회사 일군 후 새인생 위해 청라에 전문 공연장 세워한번에 10~2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음악 감상실(오디오갤러리)은 모두 5곳이 마련돼 있다. 이 음악감상실에는 1930~40년대 미국 극장에서 주로 사용했다는 '웨스턴 일렉트릭 사운드 시스템(Western Electric Sound System)' 상표가 붙은 스피커와 진공관이 보이는 앰프, 턴테이블 등이 설치돼 있었다.미국에서 많이 쓰던 웨스턴 일렉트릭의 스피커는 극장에 불이 자주 나고, 오래된 건물이 철거되면서 함께 소실되는 경우가 많아 지금은 보물처럼 여겨진다고 그는 설명했다.그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가 연주하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들려주며 "웨스턴 일렉트릭의 스피커에서는 '찐득한' 소리가 난다"고 표현했다. 최근 이곳을 찾았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가 음악 감상실에서 음악을 감상하고는 "연주자들의 운지와 활을 쓰

  • [인터뷰… 공감]신원섭 산림청장

    [인터뷰… 공감]신원섭 산림청장 지면기사

    실태조사·안전대진단·사방댐 조성에 부처간 협업망 구축 노력임산물 생산 가공·6차 산업화 활성화 등 산촌경제 살리기 기여친환경 목재제품 선순환 이용 늘려 국가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서울 세계산림총회 유치, 외교·농림부와 '협력' 성공외교 자평"3년 연속 산사태로 인한 인명 피해 제로(0)를 달성한 것이 큰 보람입니다."신원섭 산림청장은 최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 한해 동안 22개의 태풍 중 말라카스(16호)와 차바(18호)가 한반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나 단 한 명의 인명피해가 없었다"며 이 같이 밝혔다.신 청장은 "지난 9월 28일 발생한 제18호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1시간 최대강우량이 제주시 서귀포 116㎜, 울산 104㎜를 기록하는 등 단기간에 폭우가 쏟아졌으나 산림청의 산사태 취약지역 중점 선택 관리로 피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그는 "산림청은 폭우로 야기된 산사태로 인한 인명 피해를 사전 방지하기 위해 국민안전에 역점을 둔 산사태 재난 예방·대응역량을 강화했다"고 강조했다. 산림청은 산사태 예방대응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위기단계별 지역 산사태 예방기관의 업무수행 체계를 정립, 선제적인 재난예방·대응체계를 마련하는데 노력을 경주해 왔다. 산림청은 신 청장의 지휘 아래 산사태 취약지역 등 생활권을 중심으로 인명피해 우려 지역 5천여 개 소에 대한 실태조사를 추진, 사전예방활동을 강화했고 연인원 2만6천620명을 투입해 산사태와 임도 등 산림분야 피해 우려 지역에 대한 국가안전대진단을 실시했다.또 산사태 발생 시 1개의 사방댐이 5t 차량 500대분의 토석이나 유목을 차단, 인명이나 재산피해를 예방하는 효과가 큰 만큼 사방댐 825개소, 계류보전사업 575km를 우기 전에 조성하기도 했다.특히 산림청은 신 청장의 철학을 반영해 그 동안 부·처간 협업망을 구축하는 데 주력해 왔다. 그는 "국방부와 공동으로 민북지역 군사시설 등의 안전을 위해 산사태 발생 위험성이 높은 9개 소에 대한 사방사업을 올 연말까지 완료해 군장병과 군사시설을 산사태의 위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