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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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DMZ국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 배우 조재현 지면기사
영화제가 힘 생기면 공격 받겠지만 그만큼 힘있는 영화제가 되기 원해사장과 알바 입장이 다른 '최저시급' 치킨집 소재 다큐로 만들고 싶어당초 목표 80%는 달성… 10주년 앞두고 강박은 없지만 새 출발점 돼야규모에 비해 사무국 인원 적어… 365일 다큐 상영하는 장소 마련 '노력'노조원 이야기에 왜 사측 입장은 보여주지 않느냐는 고등학생혐한데모 다룬 영화에서 혐일도 함께 문제 제기한 재일 한국인 감독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다큐에 대한 그의 고민9년 전, 배우 조재현은 경기도로부터 DMZ국제다큐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봄이었고, 영화제는 같은 해 가을에 열릴 예정이었다. 급조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없어지는 것도 금방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DMZ라는 장소가 가진 힘과 다큐라는 장르의 매력이 부합한다며 성장 가능성을 높이 봤다. 그렇다면 해볼만 하겠다고 생각을 고쳤다. 그와 DMZ국제다큐영화제는 올해도 안녕히 관객과 만나고 있다. "초대 집행위원장으로 목표를 세웠어요. 내가 위원장이 아니더라도, 경기도지사가 누가 되더라도 상관없이 이어나갈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드는 것이었죠. 정치적으로 휩쓸려서 영화제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어요. 다큐 영화 만드는 감독들은 대부분 진보적인데, 초대 조직위원장이었던 당시의 경기도지사는 새누리당 소속이라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대로 했죠. 지금 도지사도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한결같이 지켜주고 있어요. 언젠가 도지사가 바뀌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고, 영화제가 힘이 생기면 공격을 받게 되기도 하겠죠. 그러나 공격받을 만큼 힘이 생긴 영화제라면 흔들기도 어려워요. 그런 영화제가 되기를 바란 것입니다."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드물게 장수하고 있는 그는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만들어진 감동적인, 소소한, 의미심장한, 유쾌한, 안타까운, 곱씹게 되는, 많은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간직하고 있다. "재작년 청소년경쟁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영화가 학업 성적이 좋은 친구가 만든 작품이 있었는데, 제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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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곽재영 전 인천시육상경기연맹 회장 지면기사
육상 중·장거리선수 활약40년 가까이 인천육상 이끌어 온지역 체육계 든든한 버팀목아직도 뛰고 있는 선수들 보면다리에 힘이 들어간다고◈육상 접한 계기와 기억에 남는 순간중 1학년때 잘 뛴다는 선배 권유로 시작강화 3·1절 기념대회 내가 초대 우승자◈체육계 수장으로 잊지 못 할 일육상연맹도 안될거라던 亞육상선수권2표 차로 인도 꺾고 인천유치 이끌어내◈후배 체육인들에 당부의 말씀'떠난 다음에는 말하지 말라'가 내 신조비난이 될 수 있기에 조언은 안하는 편◈송도국제마라톤대회에 대해풀코스 국제대회로 개최위해 서둘러야대회만의 특징있는 기념품 제공도 필요인천 체육과 평생을 함께 한 곽재영(87) 전 인천시육상경기연맹 회장은 지역 체육계 원로로서 여전히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고교와 대학 재학 시절 육상 중·장거리 선수로 활약했으며, 인천이 경기도에 속했던 1975년 경기도육상연맹 부회장으로 체육 행정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40년 가까이 인천 육상을 이끈 곽 전 회장의 육상 인생은 한 권의 책으로 엮어도 될 정도로 에피소드가 넘쳐난다.2014 인천아시안게임 유치의 밑거름이 된 제16회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2005년 개최)부터 지역 육상과 마라톤대회들까지 곽 전 회장은 그 중심에 서 있었다.아직도 운동장을 달리는 선수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는 곽 전 회장에게 마라톤과도 같은 체육(육상) 인생을 들었다.-육상을 접한 시기와 계기는.당시엔 인천기계공고가 6년제였다. 숭의초교를 졸업하고 시험을 봐서 기계공고 6년제에 입학했다. 1학년 때 선배들이 한번 뛰어보라고 해서 운동장을 뛰었는데, 잘 뛴다고 육상부를 권유해서 바로 들어갔다. 일제시대 때 태어나 분위기상 운동을 할 수 없었다. 1945년 광복 이후 들어간 중학교 1학년 때 육상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에는 야구나 축구 같은 구기 종목이 뒤처져 있었기 때문에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은 육상 뿐이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지금도 매년 강화에서 3·1절 기념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60회가 넘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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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100여개국 돌며 여행 에세이 쓴 김인자 작가 지면기사
1989년 경인일보 신춘문예·현대시학으로 등단… 결혼 후 '詩 쓰기' 시작43세때 '첫 발' 20여년간 히말라야 트레킹에 아프리카 트럭여행까지 도전휴대전화 없이 카메라만 들고 빵 한 조각 나눔의 행복 등 사람이야기 담아산문 쓰더라도 나는 '결국 시인'… 시를 쓰며 인생이 여행인 듯 흘러갈 것'엄지를 세워 보우!라고 인사하는' 아이에 대해 김인자 작가는 썼다. '잠보!'라는 인사와 '하쿠나 마타타'라는 인사도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책 속에는 세마댄스를 추는 세마젠들도 있다. 치맛자락과 신발 끄는 소리로 춤은 시작된다. 무용수들은 아주 느리게 돌기 시작해 조금씩 빨라지는데 같은 동작이 10~15분간 지속된다. 이는 더 깊은 고통으로 들어가기 위한 무아의 세계, 즉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진정한 망아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고('사과나무가 있는 국경' 71p.).요즘은 누구나 여행을 한다. 이번 추석 연휴동안에는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9명이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이제 여행은 특별한 것이 못된다. 여행관련 서적도 넘쳐나서 여행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기도 하고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여행자가 되는 동안 김 작가는 여행 에세이를 10여 편 발표했다. 모두 여행 에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지만 어떤 책은 가이드 역할을 하고, 어떤 책은 시집 같기도 하다. 올해 7월에는 '사과나무가 있는 국경'이라는 제목의 '포토 에세이'를 펴냈다. 20여년 동안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의 얼굴과 그 얼굴을 쓰다듬는 것 같은 글을 모았다. 여행보다는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이 담겨있는 책이다.김인자 작가는 1989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와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결혼해 수원으로 와서부터 시를 썼는데 특별히 시를 배운 적은 없다고 한다. 시는 배워서 될 게 아니라고 일찌감치 생각했다. 배우기보다는 그저 다르게 보려고 애를 썼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첫 여행은 43살에, 두 딸과 함께 했다. "그 당시에는 혼자 여행은 상상할 수 없었어요. 남편은 공무원이고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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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프로축구 인천유나이티드 강인덕 대표이사 지면기사
광양 전지훈련서 단합 휴일도 잊은채 의욕적강등권 격차 벌릴 것 2부 리그는 생각도 안해선수·감독·프런트 갈등이 경기력에도 영향시즌 후 책임 묻고 경영진단 통해 조직 재편구단 자체 노력으로 市 지원 떳떳하게 받아야검증된 선수 이적보다 잔류 AFC 챔스 도전체육회 상임부회장 포함 도움·변화주고 떠날 것무엇보다 관중이 많이 찾았으면 시민들에 당부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인천유나이티드의 강인덕(60) 대표이사는 지난달 초 전임 대표이사의 사퇴로 공석이 된 대표직에 긴급 투입된 인천호(號)의 선장이다. 20여일 동안 '직무대행' 꼬리표를 달고 시즌 첫 2연승과 함께 팀을 안정시키는데 기여한 강 대표이사는 지난달 28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정식 대표이사로 선임됐다.강 대표이사는 4일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과 경기장 내 집무실에서 이어진 인터뷰 내내 구단의 성적과 운영적 측면에 대한 질문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어떨 땐 비장한 모습으로 '인천호'를 이끄는 선장으로서의 위용을 보여줬다. 경기장에선 등번호 12번이 적힌 인천 유니폼 상의를 입었다. 평소 자신을 12번째 선수로 소개하는 강 대표이사는 선수단 서포트에 충실하려는 의지를 담아 등번호 12번을 새겼다.선수단의 근황이 첫 화제였다. 3주 간의 A매치 휴식기의 마지막 주를 맞은 인천 선수단은 오는 10일 홈에서 열릴 광주FC와 일전을 준비 중이다.강 대표이사는 "지난달 25~31일 동안 전남 광양에서 진행된 전지훈련이 선수단의 단합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무더위 속에 경기를 치른 선수들에게 체력 회복 훈련과 함께 남은 리그 경기들을 대비한 전술 훈련까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단합하고 해보자는 분위기가 선수단에 심어졌다"고 평가했다. 이어서 "지난 27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 경기 후 선수단 분위기가 많이 들떠 있었는데, 전지훈련을 다녀와서 맞은 휴일도 반납하고 훈련에 임하는 등 지나간 부분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해보자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4일 현재 인천은 5승11무11패(승점 26)로 리그 강등권(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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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인천 출신으로 세계적 모델 반열에 오른 도병욱 지면기사
3만원짜리 셔츠, 6만원짜리 팬츠…모델 환상을 깬 수수한 청년, 이전엔 옷에 관심도 없던 그가지금은 세계 4대 패션위크 정중앙에 서있다뉴욕·밀라노·파리·런던 등의 도시에서는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가 쇼를 선보이는 '패션위크'가 해마다 열린다. 이들 도시에서 열리는 패션위크를 업계는 통상적으로 '세계 4대 패션위크'라 부른다. 3~4일 정도 집중적으로 쇼가 펼쳐지는 이 행사는 1년에 두 차례 진행된다.패션위크는 'FW시즌'(가을·겨울)과 'SS시즌'(봄·여름)으로 나뉘는데, 남성의 경우는 대략 1월이 FW, 6월이 SS시즌이고, 여성은 2월이 FW, 9월이 SS시즌이다. 패션계는 대략 1년여의 시간을 앞서간다. 특히 '세계 4대 패션위크'는 다음 해 전 세계 패션계의 경향과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자리다.때문에 전 세계의 디자이너와 업계 종사자, 패션모델 등 전문가는 물론 관광객까지 한꺼번에 몰리며 성황을 이룬다. 세계 4대 패션위크에 참여하는 것은 소위 이 분야의 '메인 스트림'이 된다는 점에서, 모든 디자이너와 모델에게는 영광스러운 일로 여겨진다.한국에서도 이 무대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1~2차례 무대에 섰다는 이들의 소식이 심심찮게 들리는데, 그 자체만으로는 이제는 뉴스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하지만, 인천 출신으로 '톱모델' 반열에 오른 도병욱(28)의 경우라면 다르다. 그는 수년간 꾸준히 세계 패션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는 4시즌 연속 돌체 앤 가바나의 모델로, 3시즌 연속 베르사체의 모델로, 뉴욕·밀라노·파리·런던은 물론 싱가포르·베이징 등 해외 무대를 누비고 있다.치과 진료차 한국에 들어와 휴식 중인 도병욱을 지난 22일 오후 경인일보 인천본사에서 만났다.모델이라는 직업을 가졌으니 고가 명품 브랜드의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날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3만원짜리 SPA브랜드의 흰색 '린넨셔츠'와 6만원짜리 '치노팬츠', 9만원짜리 갈색 구두를 신은 차림이었다.그는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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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새 정부 국정운영 로드맵 진두지휘한 김진표 국회의원 지면기사
■국정기획위 활동에 대해업무보고와 답사 등 500번 이상 회의70~80% 대통령 높은 지지도에 '보람'■위원장으로 가장 중점 둔 사안좋은 일자리 늘려야 소득·소비 늘어결국 '고용·성장·복지' 동시에 추진■수원비행장 이전 문제 해법기존 부지에 첨단산업 연구소 유치 등소통하며 경기서남부 발전 홍보할 것■지방분권·수도권 규제완화재정 자립 '독일식 공동세' 검토 필요최첨단산업 유치 수도권 밖에 답 없어■종교인 과세 2년 유예 법안대형교회 목사·신부 이미 세금 내 와정치인과 유착 안내려 한다는 건 오해막히는 것도 거칠 것도 없다. 특히 경제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문재인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새 정부의 국정운영 로드맵을 진두지휘한 김진표 의원은 21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가진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80여분 간 달변가의 면모를 보여줬다. 문재인 대통령이 각본 없는 '100일 기자회견'을 했듯 김 의원은 사전 질문이나 조율 없는 인터뷰에서 부총리·장관·당 원내대표·국정기획위원장·4선 등의 경험과 연륜을 과시하듯 수치나 용어, 사례 등을 제시하며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놨다.-국정기획자문위원장 제안은 누가.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며칠 있다가 직접 전화를 했다. 참여정부 때 인수위를 했고 부총리에다 장관, 캠프 선대위원장 등을 종합해보면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다며 꼭 해달라 요청했다. 당연히 도와 드리겠다고 답했다. -총리설이 끊이지 않았는데.총리는 아예 생각도 안 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어느 정도 승리를 예단할 수 있어서 캠프 내부에서 총리를 누가 맡는 게 좋은지 논의가 있었다. 문 대통령이 호남 인사 푸대접을 불식시켜야 한다며 여러 차례 호남 총리를 강조한 만큼 호남 인사로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사전에 형성됐다. 앞으로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살짝 웃음).-국정기획자문위원장 60일 동안 유배 생활을 하다시피 했다고 들었다.인수위는 특성상 복잡한 요인과 변수가 많아 잠깐만 한 눈울 팔면 배가 엉뚱하게 산으로 갈 수 있다. 그러면 국정 혼선을 초래하게 된다. 누군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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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해경 최초 여성 총경 박경순 동해지방해양경찰청 기획운영과장 지면기사
1991년 '시와 의식'으로 등단… 2011년 '바다에 남겨…' 시집 발간해 인천문학상 수상하기도총경은 치안총감, 치안정감, 치안감, 경무관 다음으로 높은 계급이다. 일선 경찰서장을 할 수 있어 '경찰의 꽃'으로 불린다. 경찰청에서는 1998년 김강자 서울남부경찰서 방범과장이 국내 최초의 여성 총경으로 승진해 서울종암경찰서장을 맡았다. 이후에는 치안정감 계급의 지방경찰청장에 오른 여성경찰도 나왔다. 치안 총수인 경찰청장만 빼놓고는 여경이 오르지 못한 자리(계급)는 없었다. 하지만 여경의 총경 승진이 빨랐던 경찰청(육상경찰)과 비교하면, 그동안 해양경찰청 소속 여경은 상대적으로 소외당했다. 해경이 여경을 처음 채용한 것은 1986년이다. 경찰청이 설립 초기인 1946년부터 여경 채용을 시작한 것과 비교하면 매우 늦은 셈이다. 당시만 해도 해경은 '여자가 배를 타면 재수 없다'는 속설 때문에 여경 채용을 미뤘다고 한다. 지난 8일 발표된 해경 총경 승진 임용 예정자 6명의 명단 중에는 해경 창설 64년 만에 첫 여성 총경이 나왔다. 주인공은 동해지방해양경찰청 박경순(55) 기획운영과장이다. 그는 "'최초'라는 방점을 찍기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힘들고 어려웠지만, 늘 주위의 선배와 동료, 후배들이 도와줘서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박 과장은 1986년 순경으로 해경에 첫발을 들였다. 해경이 공채로 선발한 첫 여경이었다.박 과장은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해양경찰대(해양경찰청의 옛 이름)'가 여자 경찰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며 "인천에 살았기 때문에 바다에 관심이 많았었다. 제복을 입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경찰이 되고 싶어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지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170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채용된 박 과장은 함께 합격한 동기와 함께 당시 연안부두에 있던 해양경찰대 본청 민원실에 배치됐다. 박 과장은 민원실을 찾은 사람이 그냥 돌아가는 일은 없게 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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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영화 '귀향' 속편 2편 개봉앞둔 조정래 감독 지면기사
1년 반 동안 역사의 참상 알리려 전세계 61개 도시 상영회대종상은 할머니들께서 주신 상… 수익금도 '소녀들의 피'귀향 성공은 '착시현상' 실상 알렸는데 변한 게 없지 않나차기작은 계획없어… 恨 다 풀어드리고 나서 찍어야 도리그의 본업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영화감독이라고는 하는데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것을 보면 인권운동가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았다는 것을 보면 영화감독이 본업은 맞는 것 같다.그것도 아주 '능력있는' 영화감독 말이다. 지난해 영화 '귀향'으로 영화계 돌풍을 일으킨 조정래(45) 감독 얘기다. '영화감독 조정래'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낯설어 할 테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을 그린 영화 '귀향(鬼鄕)'은 한번쯤 들어봤음직하다.지난 2016년 2월 개봉된 영화 '귀향'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블록버스터급 영화도 아니고, 역사적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한 무거운 주제를 다뤘음에도 지난해 360여만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반짝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영화 '귀향'은 준비작업을 거쳐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장장 13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2002년 조 감독이 나눔의 집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다 강일출 할머니의 '태워지는 처녀들'이란 그림을 보고 홀로코스트를 접한 듯한 충격을 받은 것이 영화로의 시작이었다. 이후 그는 직접 시놉시스를 쓰고, 증언을 수집했다. "이렇게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쉽지 않은 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빨리 개봉해 할머니들과 만나고 관객들과도 호흡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작비 조달이 여의치 않았고, 당시에는 생소했던 크라우딩 펀드를 진행해 4만5천여명이 제작비를 후원했다. 손숙, 정인기, 오지혜 등 유명 배우와 영화 명량, 암살, 도가니 등의 제작에 참여했던 유명 스태프들의 재능기부도 이뤄져 결국 지난해 대중과 만날수 있었다."그는 영화가 흥행하고, 감독으로서 인지도도 쌓았지만 변하지 않았다.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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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이규훈 초대 소장 지면기사
백제 풍납토성·경복궁 발굴조사와 고려 도성 기초조사 진행유물·유적 활용 등 시·군 지자체와 적극적 논의·협력할 것고려 500년 남북 학술교류 필요… 수도권 문화재연구에 온힘신라·삼국·가야·백제·마한 등 기존 지방연구소 뒤이어 고려 연구소 설립 필요성 제기돼 강화가 선택됐다.강화도에 있는 '고려궁지'는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상징이자 구심점이었다. 고려는 몽골의 침략 이듬해인 1232년(고종 19년)에 전격적으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다. 그리고는 북산(송악산) 남쪽 기슭인 강화읍 일대에 궁궐과 관아를 세운 뒤 고려는 이때부터 1270년(원종 11년)까지 강화도를 전시(戰時) 수도로 삼았다. 강화도를 중심으로 고려는 39년간 세계 최강으로 손꼽히는 몽골의 군대와 꿋꿋하게 맞섰다. 강화도 해안가에 돈대와 외성, 궁궐을 포함한 내성, 외성과 내성 사이 중성을 쌓았고 왕실 사찰도 만들었다. 철옹성 같은 주변의 바다와 드넓은 갯벌 등 자연여건은 강화도의 또 다른 무기가 됐다. 강화도는 그렇게 고려를 품었다.사적 133호로 관리되는 고려궁지 바로 옆 옛 강화군립도서관 건물에 자리 잡은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의 이규훈(46) 소장을 지난달 27일 만났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지난 상반기 강화에 둥지를 튼 인천 소재 첫 문화 관련 국립기관이다. 이규훈 소장은 "강화도는 우리나라의 중세 연구의 가장 핵심적인 지역"이라며 "국가기관 차원에서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중세 연구로 학술적인 성과를 내고 그 성과를 지자체와 시민과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 우리나라 역사의 응축, '강화도'이규훈 소장은 강화도를 "우리나라 역사의 응축(凝縮)"이라고 정의했다. 선사시대부터 고대는 물론, 중세와 근·현대까지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한 사건엔 항상 강화도가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강화도엔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 고인돌이 곳곳에 있다. 남한에서 가장 큰 탁자식 고인돌인 '강화지석묘'를 비롯해 그 숫자만 160개가 넘는다. 고조선과 관련이 있는 마니산 참성단과 정족산 삼랑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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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이준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지면기사
공정성 논란·비싼 등록금에 입학전형 개선·장학금 확대법률문제 상담·재학생 소송 참여 등 현장밀착형 서비스로스쿨 출신 안숨기고 수원 최대로펌 만든 졸업생 '뿌듯'학습 효율성 개선 中企법무 관련 교류·실습기회 넓힐 것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된 지 내년이면 10년이다. '귀족학교', '돈스쿨'이라는 오명과 함께 탄생했지만, 지역과 연계해 특화 로스쿨을 만들겠다는 도입 취지는 좋았다. 어떤 지역의 로스쿨은 예술법무를, 또 다른 지역은 국제법무에 특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저마다 개성있는 지역 대표 로스쿨로 자리 잡게 하자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특화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곳을 찾기 힘들어졌지만 경기도에 하나뿐인 아주대학교 로스쿨은 도입 때부터 기획했던 '중소기업법무' 프로그램을 여전히 잘 유지해가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풍성해졌다. 중소기업 대부분이 경기도에 밀집해있는 지역 특성상 중소기업의 법률 여건을 향상시켜주겠다는 선한 의도가, 아주대 로스쿨을 지역민의 자부심으로 바꿔놨다. 지난 19일 이준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을 만나 현재 로스쿨의 위치와 지난 10년간의 역사, 앞으로의 포부 등을 들어봤다.-로스쿨 출범 10년을 앞두고 있는데 제도 전반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2009년 3월 첫 입학생을 시작으로 내년 3월 10기 입학생을 맞이하는 로스쿨은 사법시험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의 법률가 양성제도를 목표로 출범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지원자를 선발한 뒤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많은 수의 법률가를 양성, 국민들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그 취지다. 지난 9년여를 돌아보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입학생을 맞아 교육을 통해 대량의 법률가가 배출됐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도입 초기에 논란을 야기했던 입학 부문의 공정성 및 투명성 논란과 비싼 등록금 문제, 3년 내에 법이론과 실무교육을 모두 마치도록 설계된 무리한 교육과정, 합격자수를 제한함에 따른 탈락자의 대량 발생, 그리고 변호사시험 준비에 몰입한 나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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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민간기업 첫 블라인드 채용 도입, 한종현 동아쏘시오홀딩스 사장 지면기사
변화와 혁신 위해 서서히 바꿀 수 있는 것부터 도전해야4차례 인턴 200여명 모집… 사진·학력 등 삭제 양식수정인턴 도입 이유는 당사자도 회사 평가기회 필요하기때문지방대에도 문호 개방… 미쳐서 일할 사람들 만나고 싶어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무원 증원'과 함께 '블라인드 채용'이 청년취업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블라인드 채용은 지독한 청년 취업난 속에서 학연, 지연, 혈연 등 인맥에 따라 차별받는 문화를 혁파하고 실력 중심의 채용 시장을 만들려는 문 대통령의 대표적인 공약 중의 하나다.이에 발맞춰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 4일 '블라인드 채용' 강화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다음 날 관계부처의 합동 추진방안도 공개됐다.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 회의를 통해 공공기관과 지방 공기업의 입사지원서에서 출신 지역, 가족 관계, 신체 조건과 학력 등 인적사항을 삭제하기로 했고 서류 전형은 물론 면접 전형에서도 인적사항 등을 묻지 않는 대신 실력 중심 평가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그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최근 공공기관 채용과정에서 학력과 출신지, 신체조건이 기재된 서류제출을 금지하는 내용의 '채용절차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블라인드 채용의 성공 여부는 정부의 공공부문 확대가 아닌 민간기업의 동참 여부에 달렸다고 의견을 내놓고 있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동아제약의 동아쏘시오그룹이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11일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다고 밝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한종현(49) 동아쏘시오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을 동아쏘시오그룹 사옥에서 만나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게 된 배경과 기대감을 들어봤다.동아제약의 지주회사인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지난 13일부터 19일까지 인턴 사원을 모집 중이다.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이번 인턴모집에서 40명을 선발하는 것을 시작으로 4차례에 걸쳐 200여명의 인턴을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선발할 예정이다.한 사장은 올 초 40대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뒤 가장 많이 강조한 것이 바로 '변화와 혁신'이다.그는 "굳어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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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자동차 정비 국가대표 박병일 명장 지면기사
한국, 세계 5~6위 생산능력 불구 기술력 인정 못받아 하청구조 개선 시급국내 기업 中자동차 무서운 성장 대비해야… 정비 기술자 저평가 아쉬움인간적으로도 명장 되고 싶어 꾸준한 봉사… 46년 경력 車산업 발전 기여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규모는 세계 6위를 자랑한다. 최근 인도에 추월 당하기 전까지는 세계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자동차 등록대수는 2014년 2천만대를 넘어섰다. 국내 자동차 산업이 최근 수십 년 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국산 차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불신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 70% 안팎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현대자동차에 대한 불신도 적지 않다. 높은 판매량과 비례해 수출용과 내수용에 차이를 두는 등 국내 소비자를 무시한다는 불만이 있다. '급발진', '에어백 미작동' 등 현대차와 관련된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이다.현대차의 품질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박병일(61) 자동차 명장이다. 박 명장은 그동안 국내 자동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앞장서 왔다. 그 결과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기도 한 그는 지난 2014년 현대차로부터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현대차는 그가 한 언론 인터뷰 9건을 문제삼았다. 박병일 명장은 국내 대형 로펌을 앞세운 현대차를 상대로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대응했다. '대기업+대형로펌'과 박병일 명장 1인의 대결에서 검찰은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박병일 명장을 지난 6일 오후 그가 대표로 있는 인천시 남동구에 위치한 정비업체 CAR123TEC 사무실에서 만났다. 46년간 자동차 정비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국내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5~6위에 올라있지만, 자동차 기술력은 일본, 독일의 자동차기업과 비교하면 아직 뒤처져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은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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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향토서 '수원야사' 펴낸 이창식 前 경인일보 편집국장 지면기사
6·25전쟁 끝나고 '대기자가 되리라' 자신과 약속서슬퍼런 군인들 압제속에서 지역언론 지켜각종 향토사 편찬위원 활동 지역사 재정립 공로최근 수원의 숨겨진 얘기 풀어내 큰 호응구순 바라보는 나이지만 여전히 현역기자 풍모가뭄을 해갈시켜줄 단비가 내리던 지난 3일. 인터뷰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수원시 조원동에 위치한 주인공의 자택을 찾았다. 처음 인터뷰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앞서고 떨리는 마음이 강했다. 전쟁에 나가는 장수마냥 취재수첩과 볼펜은 이상이 없는지, 질문은 어떻게 할지 꼼꼼히 되새김해보며 점검에 나섰다.그 순간 우산을 받쳐든 노신사가 검은 가방을 둘러메고 한손에는 서류뭉치가 잔뜩 든 종이가방을 들고 등장했다. 구순을 앞둔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당당한 걸음걸이와 기백이 절로 머리를 숙이게 했다. 6·25전쟁이 끝나고 기자생활을 시작, 명실공히 경인지역 언론계 최고어른으로 불리는 이창식(88) 선생과 인터뷰가 그렇게 시작됐다.평양 출신인 그가 경인지역 언론인으로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53년 5월. 6·25전쟁이 발발하고 혈혈단신으로 남한에 온 그는, 당시 육군예비사관학교 육군소위로 임관해 참전하고 전쟁이 끝난 뒤 생업의 길로 들어서면서 인천일보 평기자로 언론인의 길에 들어섰다. 갓 20살에 홀로 남한에 내려와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리잡기까지 녹록지 않은 생활이 이어졌지만 후회는 없다고 한다."입사한 그해(1953년) 7월 휴전조인협상 반대 집회가 인천 월미도에서 열렸다. 그 집회가 첫 취재였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왜냐면 꼭 10년전인 1943년, 평양사범학교 부속 소학교를 다니며 경성으로 수학여행을 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월미도를 방문했었다. 그런데 10년만에 그 꼬마가 기자로 다시 서있다니…."선생은 당시 소회를 산문집 '천국의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이튿날 평양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경성시내와 고궁을 돌아보고 다음날에는 인천 월미도로 갔는데 내륙 지방에서는 볼수 없었던 등대와 아득한 수평선을 등지고 출렁이는 바다 풍경은 몹시 신비로웠다(중략)…최남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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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제2연평해전 참전 인천해역방어사령부 이해영 원사 지면기사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서쪽 NLL 인근 해상 북한 고속정과의 사투부상자 치료하던 박 병장, 바로 옆에 있던 서 중사눈 앞에서 자식 같은 병사들을 잃었다분쟁의 바다서 살아남은 그는 마음의 빚을 지고 산다철책 없는 남북의 해상 경계선인 서해 북방한계선(NLL·Northern Limit Line)은 늘 남북관계 긴장 국면의 중심에 있다. 크고 작은 도발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인천 옹진군 서해5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소연평도) 최북단 해역을 누구는 '분쟁의 바다'라고 칭하고 누구는 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꼭 15년 전인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서쪽 NLL 인근 해상에서 우리 해군과 북한군의 전투가 있었다. '제2연평해전'이라고 불리는 이 전투는 NLL이 분쟁의 바다임을 보여주는 상징 같은 사건이다. 서해의 평화를 얘기하려면 먼저 분쟁의 역사부터 들춰볼 필요가 있다. 제2연평해전 발생 15년이 지난 지금 그 분쟁의 바다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의 얘기를 들어봤다.27일 오전 11시께 인천해역방어사령부에서 15년 전 제2연평해전에 참전했다가 살아남은 이해영(52) 원사를 만났다. 이 원사는 "정말 치열하게 싸운 전투가 잊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쉬움이 있다"며 "벌써 15년이 지났지만 아직 6월이 되면 전사자들 생각에 마음이 찡하다"고 말했다.2002년 6월 29일 오전 5시께 인천 옹진군 연평도 해상 경비작전을 수행하는 우리 해군2함대 소속 고속정 252편대(참수리 357·358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NLL 경비와 우리 꽃게잡이 어선의 보호를 위해 출항했다. 편대는 고속정 2척으로 구성된 해군의 최소 단위 전투부대인데 1척 당 28명이 탑승한다.357호 갑판장이었던 이 원사는 며칠 전부터 우리 NLL을 왔다 갔다 하며 눈치를 보는 북한 경비정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전날에도 차단 작전을 통해 북한 경비정을 퇴각시킨 터였다. 이날도 북한 고속정 '등산곶 684호'가 우리 NLL을 침범해 차단작전에 나섰는데 평소와 달리 북한 고속정이 퇴각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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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화상통화로 만난 김성중 세종과학기지 제30차 월동대장 지면기사
증축공사 95% 진행 신축건물 유지·관리… 내년 30주년 행사준비가 목표최첨단 소음방지·소화시설에 50㎾ 태양광 발전 설비 다른 나라 부러움 사세종기지 주변은 온난화 '미미' 기온·강수량 등 상시 관측·자료 분석 중팀워크 위해 운동 프로그램인 'S리그'와 분야별 강의 '아카데미' 등 실시1988년 2월 17일. 대한민국 극지 진출의 '시발점'인 세종과학기지가 남극대륙 서북쪽 끝인 사우스쉐틀랜드 군도 킹조지섬에 문을 연 날이다. 이때부터 1년 단위로 대한민국 월동대가 세종과학기지로 파견돼 '미지의 세계' 남극과 만났고, 쉼 없는 탐험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내년 남극 세종과학기지 30주년을 앞두고, 기지 연구동과 연구원 숙소를 대폭 증축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해 12월 세종기지에 파견돼 활동기간 절반가량이 지나고 있는 우리나라 월동대의 임무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이번 월동대 파견은 1988년 2월 이후로 꼭 30번째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남극 세종과학기지입니다. 잘 들리십니까."지난 16일 오전 10시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극지연구소 극지종합상황실. 대형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김성중(52) 세종과학기지 제30차 월동대장이 인사말을 건넸다.한반도와 세종기지는 시차가 딱 12시간이다. 남극 현지시간으로는 오후 10시, 인천에서 1만7천200㎞ 떨어진 지구의 남쪽 끝에 있는 김성중 월동대장과 극지연구소 화상통화시스템으로 연결됐다. 통화 연결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세종기지가 있는 서남극 최북단의 킹조지섬은 한반도와의 시차만큼이나 계절도 정반대다. 한반도의 겨울철에 세종기지는 가장 활동하기 좋은 여름철이고, 한반도에 푹푹 찌는 불볕더위가 찾아온 최근에는 세종기지가 한겨울이다. 세종기지의 겨울은 해가 뜨는 시간이 하루에 4~6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김성중 대장은 "남극의 겨울은 추운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고, 태풍 수준의 저기압으로 며칠씩 강풍이 불고 계속 폭설이 내린다"며 "지난주까진 블리자드(남극에서 일어나는 거세고 찬 바람을 동반한 눈보라 현상)로 고생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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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학기지 제30차 월동대]극지연구소 공채 전문가 17명… '연구반·지원반·유지반' 나눠 운영 지면기사
세종과학기지 제30차 월동대는 극지연구소가 공채를 통해 선발한 분야별 전문가 17명으로 구성됐다. 몇 차례 월동대 경험이 있는 대원도 있고, 남극에 처음 파견된 대원도 있다. 세종기지 월동대장은 주변 기지 간 국제협력업무를 맡으면서 기지 운영을 총괄한다. 기지 총무는 물자 관리와 하계 연구원 지원 등 기지 운영 실무 전반을 책임지는 '살림꾼' 역할이다. 실무팀은 '연구반', '지원반', '유지반'으로 나뉜다. 연구반에는 분야별로 지질연구원, 생물연구원, 고층대기연구원, 대기연구원, 해양연구원, 기상대원이 소속돼 있다. 기상대원의 경우 기상청에서 파견된다. 지원반에는 극지연구소나 외부기지와의 유·무선 통신기기를 관리하는 통신대원, 연구 등 해상활동을 지원하는 해상안전대원, 식사를 준비하는 조리대원, 대원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대원이 있다. 군 특수작전 경력자여야 하는 해상안전대원은 국방부 장관 추천이 있어야 하고, 의료대원은 극지연구소와 협약을 맺은 가천대 길병원에서 파견한다.유지반은 기지의 전반적인 시설을 유지·관리하고 있다. 모두 해당 분야의 관련 자격증과 상당한 경력이 있는 전문가들로 기계설비대원 2명, 중장비대원, 전기대원, 발전담당대원이 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남극 세종과학기지 제30차 월동대원. (윗줄 왼쪽부터) 서동경 의료대원, 이현수 중장비대원, 정상준 기계설비대원, 박성윤 조리대원, 이정의 기계설비대원, 김성중 대장, 백승민 총무, 윤정구 발전담당대원, 최동수 기계설비대원, 이준휘 기상대원. (아랫줄 왼쪽부터) 한동원 해양연구원, 김찬양 생물연구원, 이원석 고층대기연구원, 성대경 대기연구원, 이재일 지질연구원, 우종현 해상안전대원, 김상욱 통신대원. /세종과학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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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LA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원기 함평군 레슬링협회 회장 지면기사
보험 영업으로 제2의 인생 시작했지만빚보증에 전재산 날려 방황하기도재소자와 만남이 터닝포인트로도전 메시지 전하며 치유의 힘 얻어"가난했지만, 나의 꿈은 가난하지 않았다"'어둠의 밤하늘 등불이 나를 밝혔다. 진심과 겸손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1984년 LA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김원기 함평군 레슬링협회 회장은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아 성장했고, 나머지 인생은 함께 더불어 사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밝혔다.LA올림픽에서 효자종목인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한 김원기 선수는 전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인기 스타로 급부상했다. 무엇보다 금메달이 꾸준한 노력과 굵은 땀방울이 이루어낸 값진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 후일담은 국민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되며 인기를 누렸다. 김 회장은 "시합하다가 죽을 것을 각오하고 한 게임 한 게임 이겨나간 것이 기적같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성과를 가져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그는 현역에서 은퇴한 직후인 1985년 1월 삼성생명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사회를 제대로 알고 배우자는 생각에서 운동팀을 떠나 필드경험에 뛰어들었던 것. 보험모집·앙케트조사 등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어쩌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날 경우에는 "제2의 인생을 설계하려고 한다"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실제 지난 2000년 10월 삼성생명 보험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말단 보험설계일에서 총무과 대리·영업소장·본부 업무과장·교육담당 차장 등을 거칠 정도로 능력발휘를 했다.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운동밖에 몰랐던 김 회장은 사회적응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가까운 사람의 빚보증 선 게 잘 못되는 바람에 전재산을 날린 것은 물론 한동안 계속 그 빚을 갚아야 했고, 막상 갈 데가 없어서 선배가 하는 세차장 등에서 수개월동안 일을 하기도 했다.하지만 김 회장은 현재 인생의 금메달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지난 2002년부터 현재까지 교도소의 재소자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것.김 회장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다고 한다. 은퇴 후 주변의 도움으로 나름대로 성공적인 사회 생활을 이어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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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고려불화 그리는 월제(月齊) 혜담스님 지면기사
전쟁 많던 시기 참회위해 집에 부처님 모신 듯… 조선초 불교 박해로 자취 감춰일본이 강점기때 가져다가 국보급 보물로 지정 현존 200여점 중 국내 20여점뿐아이러니하게 일본인 도움으로 300여점 재현 한국 문화재로 알리려 수십년 노력정교하고 화려해 고려 전후에 없던 미술사조… 복원 작품이라도 잘 보존했으면하얀 빛의 투명한 사라가 부처의 몸을 감싸 안았다. 사라에 정교하게 박힌 금빛 문양이 화려한 빛을 낸다. 가늘게 뜬 긴 눈은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그 생경한 모습이 낯설다. 그런데 묘하게 자꾸 시선을 잡아당긴다. 이토록 아름다운 부처를 본 적 있을까.지난 5일, 수원 당수동에 위치한 계태사 고려화불 학술연구소에서 고려불화 중 하나인 '수월관음상'을 만났다. 그리고 월제 혜담스님을 만났다. 혜담스님은 이곳의 수월관음상을 그린 작가다. 이곳의 수월 관음상은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수월관음상을 혜담스님이 재현해 놓은 것이다. 고려불화가 채 20여 점도 남아있지 않은 이 척박한 땅에서 혜담스님은 300여 점이 넘는 고려불화를 재현하는 작업을 40여년간 이어왔다. 918년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938년 즈음부터 고려와 송나라 사이에 물물교환이 성행하면서 불화가 우리나라에 유입됐다. 불교 국가였던 고려에서 불화는 왕족과 귀족 등 상류층이 즐기는 귀족 문화였다. 불화를 그리는 스님이나 화공, 화사를 모셔와 원하는 대로 불화를 그리게 할 만큼 성행했다. 조선 초기까지 500여년 간 고려불화가 이어졌다."당시 문헌을 토대로 보면, 워낙 내란·외침이 많아 늘 전쟁을 하고 있었고 그 안에서 수많은 살상이 이루어지다 보니 그 죄를 참회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래서 집 안에 부처님을 그림으로 모셔두고 기도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 수요는 어마어마 했을 거라 추정하구요."조선 초 세종 때 억불 정책이 시행되면서 불교가 말살되다시피 박해를 받았고 고려불화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절에서조차 불화를 가지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민가의 불화들은 오죽했겠어요. 고려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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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물범 생태연구활동 전문가 DMZ자연사랑회 진종구 서정대 교수 지면기사
■물범에 관심을 둔 이유영유권 분쟁 환경자료 중요성 확인독도보존 노력 국제사회 전파 목적일제에 의한 '강치 절멸' 사실 접해뼈저린 교훈 잊지않기 위해서 연구■백령도 점박이 물범에 대해11월 전후 북상해 새끼 낳고 남하남북 해역 자유로이 헤엄쳐 다녀빙하기 무렵 옛 황하유역에 격리서해서 서식한 향상 진화 개체군■물범·어민 '불화' 공존 방법 없나미역채취 어민들 서식처 침범 심각어망 훼손 등 어민엔 '불편한 손님'인공어초로 물고기 생존환경 보장바다에 물범 휴식공간 조성도 필요■DMZ자연사랑회 소개·향후 계획학생과 함께 생태관찰·보호 캠페인경기도와 협력 민간활동 전개 계획한강청과 협조 강화 모니터링 확대중고생 이해 돕기위해 책자 발간도"점박이 물범은 남북한 해역을 자유로이 헤엄쳐 다닙니다. 그래서 남북한 공존과 화해를 상징하는 동물이라 할 수 있죠. 남북 공동연구가 이뤄지면 더욱 좋고요."진종구 교수는 현재 양주 서정대학교에서 아동청소년보육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사실 진 교수는 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독도와 비무장지대(DMZ)의 생태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일을 해왔다. 그가 순수민간단체(NGO)인 DMZ자연사랑회를 만든 것도 2005년 이 무렵이다. DMZ자연사랑회는 처음엔 DMZ 주변 생태환경을 카메라에 담아 전시하는 활동으로 시작했다. 서해 NLL(북방한계선) 생태연구에 뛰어든 것은 올해 2월부터다. 이들의 연구목적에 공감한 김홍용 서정대 총장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점박이 물범과의 인연도 이렇게 시작됐다. 최근 진 교수가 이끄는 DMZ자연사랑회는 백령도에서 어민들의 미역채취 활동으로 물범 서식처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서해 상 NLL 생태보호의 시급성을 알리고 있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만 보다가는 조만간 멸종위기 야생동물(2급)인 점박이 물범이 백령도에서 아예 모습을 감출지 모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사회적 관심을 유도해 인간과 물범이 공존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한 진 교수를 최근 서정대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 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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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50년 역사와 함께한 김세레나 수녀 지면기사
응급실·수술을 앞둔 환자들그들의 두려움 위로하며'괜찮다' 다독여주는 게 간호의 시작환자들은 그 순간을 잊지 않고 고마움 전해그럴 때 힘 닿는 데까지 해보자고 스스로 다독여세레나 수녀는 '수술실 기도하는 수녀'로 불린다백발이 성성한 수녀와 맞잡은 손이 따뜻하다. 손으로 전해지는 훈훈한 온기가 온 몸에 은근하게 퍼졌다. 백발의 수녀는 성 빈센트 병원이 이 땅에 뿌리 내릴 때부터 함께 했다. 그 세월은 온통 환자를 간호하는 데 헌신했다. 아마도 그의 손이 따뜻했던 이유는 세월이 전해 준 '사랑' 때문이리라.올해는 성빈센트 병원이 문을 연 지 꼭 50년이 되는 해다. 지난 22일 수원 지동에 위치한 병원에서 김세레나(75·본명 김정선)수녀를 만났다. 백발의 수녀는 그 오래된 세월의 고락을 가장 잘 아는 이다. 세레나 수녀는 1963년 성빈센트 병원 설립을 구상했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는 사회가 너무 열악했어요. 한국전쟁으로 온 나라가 너나할 것 없이 가난에 허덕이던 때였으니까. 병자들은 넘쳐나는데, 의료시설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으니까 당시 수원교구에서는 작은 병원이라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당시는 한창 전후 복구가 이루어질 때였다. 수도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조차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 없을 만큼 모두가 헐벗은 시절이었다. 당시 수원교구 초대 교구장이었던 윤공희 주교는 독일 파다본에 있는 성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에서 선교활동을 위해 선교지역을 물색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독일 수녀회를 설득했고, 병원 설립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수녀 지원자 9명을 독일 모원으로 파견해 수녀로 양성했다. 그것이 성 빈센트 병원의 초석이 된 성빈센트 수녀원의 출발이었다.1965년 본격적인 병원 설립을 위해 아델하이드 수녀를 비롯해 3명의 수녀가 한국에 파견됐다. 세레나 수녀는 이 3명의 수녀과 함께 병원 설립을 도왔다. 그는 "원래 신학을 공부하려고 했는데, 병원을 짓기 위해 온 독일 수녀들을 돕기 위해 간호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독일 수녀들은 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