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만원짜리 셔츠, 6만원짜리 팬츠…
모델 환상을 깬 수수한 청년, 이전엔 옷에 관심도 없던 그가
지금은 세계 4대 패션위크 정중앙에 서있다

패션위크는 'FW시즌'(가을·겨울)과 'SS시즌'(봄·여름)으로 나뉘는데, 남성의 경우는 대략 1월이 FW, 6월이 SS시즌이고, 여성은 2월이 FW, 9월이 SS시즌이다. 패션계는 대략 1년여의 시간을 앞서간다. 특히 '세계 4대 패션위크'는 다음 해 전 세계 패션계의 경향과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자리다.
때문에 전 세계의 디자이너와 업계 종사자, 패션모델 등 전문가는 물론 관광객까지 한꺼번에 몰리며 성황을 이룬다.

세계 4대 패션위크에 참여하는 것은 소위 이 분야의 '메인 스트림'이 된다는 점에서, 모든 디자이너와 모델에게는 영광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한국에서도 이 무대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1~2차례 무대에 섰다는 이들의 소식이 심심찮게 들리는데, 그 자체만으로는 이제는 뉴스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인천 출신으로 '톱모델' 반열에 오른 도병욱(28)의 경우라면 다르다. 그는 수년간 꾸준히 세계 패션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는 4시즌 연속 돌체 앤 가바나의 모델로, 3시즌 연속 베르사체의 모델로, 뉴욕·밀라노·파리·런던은 물론 싱가포르·베이징 등 해외 무대를 누비고 있다.
치과 진료차 한국에 들어와 휴식 중인 도병욱을 지난 22일 오후 경인일보 인천본사에서 만났다.
모델이라는 직업을 가졌으니 고가 명품 브랜드의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날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3만원짜리 SPA브랜드의 흰색 '린넨셔츠'와 6만원짜리 '치노팬츠', 9만원짜리 갈색 구두를 신은 차림이었다.
그는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패션모델들 사이에서는 옷을 못 입는 편에 속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옷이 그의 관심 분야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한다. 불과 5~6년전만 하더라도 자신이 모델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학기 초 장래희망을 적어야 할 때가 오면 솔직히 너무 힘들었죠. 그럴 때면 대충 '선생님'이라고 빈 칸을 채우곤 했어요. 아버님이 선생님이셨거든요."
성장하며 특별히 '꿈'이라는 걸 가져보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평범해 어서 빨리 꿈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강박 때문에 힘들었다.
그는 "세상을 그리 깊이 있게 경험해 보지도 않은 어린아이들이 불확실한 미래의 특정 직업을 갖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 아니냐"며 "돌아보면 사회나 학교가 아이들에게 꿈을 가져야 한다고 강요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꿈이 없는 대신 모든 일을 열심히, 성실하고 진지하게 배우려 노력했다.
평범한 초·중·고교 생활을 마치고 재수 끝에 내신성적과 수능 점수에 맞는 대학을 골라 건축학과에 진학했고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 군대에서는 남들 앞에 서는 것이 재미있겠다 싶어서 운전병을 가르치는 조교를 자원해 복무했다.
그가 모델의 꿈을 키우게 된 것은 복학 후 2011년 여름 방학 기간에 우연히 경험한 아르바이트가 계기가 됐다. 유명 의류브랜드 행사에 모델로 나서는 것이었다. 그는 모델학원 출신들과 함께 엉겁결에 무대에 섰고, 그날의 짜릿한 기억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던 옷을 가장 처음 입고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것이 무언가 짜릿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도 행복했어요."
2학기 내내 '모델'이라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모델에 도전하기로 결심하고 다시 휴학했다. 3개월여를 공사장에서 일하며 모델 학원비 500만원을 마련했다. 학원에 등록하고는 착실히 수업을 받았다.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보다 어린 친구들이었지만 성실히 배워나갔다.
그의 해외 진출은 국제적인 모델 매니지먼트 회사 주최로 중국에서 열린 '2013 엘리트모델룩 차이나 콘테스트'에서 남자부문 1위를 차지한 것이 계기가 됐다. 수상과 동시에 이듬해 1월 바로 밀라노로 날아갔다. 부푼 꿈을 안고 이탈리아에 도착한 그는 이제는 해외 패션위크를 내 집처럼 드나들 줄 알았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막상 도착해보니 아무도 챙겨주는 이 하나 없었고, 그저 수많은 오디션 기회만 기다리고 있을 뿐 출연이 확정된 무대도 없었다. 현지 회사에서 알려주는 오디션 일정에 맞춰 현장에 찾아가면, 언제나 자신보다 훨씬 멋진 수많은 모델이 자신의 오디션 차례를 줄지어 서서 기다리는 풍경을 목격해야 했다.
줄은 끝도 없이 길어서 건물 밖으로 길게 늘어서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저 수많은 모델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절감해야 했다.
지도를 보고 어렵게 오디션 장소를 찾아가 온종일 기다려 오디션을 치러도 단 10여초만에 '오케이, 넥스트' 소리를 듣는 일상이 2주나 반복됐다.
하지만 어느 날 '오케이, 넥스트'가 아니라 다른 옷을 입어보라고 권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디자이너를 만나고 면접을 보고 쇼 바로 전날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2014년 1월 '비비언웨스트우드'의 쇼를 통해 첫 무대를 밟았다. "굽어진 런 웨이를 끝도 없이 걸어갔죠. 마지막에 다다라 수백 대의 카메라에서 플래시가 터지고 나서야 실감했죠."
그렇게 밀라노에서의 다른 브랜드 2곳의 쇼를 더 참여한 것으로 2014년 FW시즌을 마쳤다. 그렇게 4시즌 연속 돌체 앤 가바나의 모델로, 3시즌 연속 베르사체 모델로 활약하는 성과를 거뒀다.
싱가포르와 스페인, 뉴욕의 백화점 등에 걸린 대형 광고판에 그의 사진이 걸리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광고판을 '캠페인'이라 부르는데, 면세점에 걸린 캠페인 모델이 되는 것이 모델에게는 무척 명예로운 일이라고 한다.
그는 모델이라는 직업이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꾸준히 자기관리를 하며 참고 기다려야 하는 인내의 직업이라고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도 아버지에게 배운 사자성어인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뜻의 '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그는 "누구든지 성실하게 자신의 꿈을 찾고 우직하게 나아간다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고 살고 있다"며 "앞으로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출생 : 1989년 1월 17일 인천 출생
-학력 : 만수초등학교·만성중학교·인천남고등학교·수원대 건축공학과
-신체 조건
▲ 키 : 187㎝ ▲ 몸무게 : 72㎏ ▲ 허리둘레 : 30인치 ▲ 가슴둘레 : 100㎝
-주요 활동 경력
▲ 2013 엘리트모델룩 차이나 콘테스트 1위
▲ 2014년 1월 이탈리아 밀라노 FW 비비안 웨스트우드 쇼 데뷔
▲ 2015년 1월 밀라노 FW 시즌 베르사체쇼 독점(exclusive) 모델 선정
▲ 2014 ~ 현재 뉴욕, 런던, 밀라노,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 암스테르담, 싱가포르, 중국에서 활동
▲ 세계 4대 패션위크(밀라노, 뉴욕, 런던, 파리) - D&G(돌체앤가바나), 베르사체, 디스퀘어드, 발망 등 약 30개 쇼
▲ Vogue(보그) 스페인, 독일, 일본, 한국 / GQ 영국, 중국, 한국 등 다수의 매거진 활동
▲ sacoop brothers(사콥 브라더즈), sepora(세포라) 등 브랜드 캠페인 광고
▲ D&G(돌체앤가바나), moncler(몽클레어) 카탈로그 촬영
▲ ZARA(자라), Massimo dutti(마시모 두띠), Amazon(아마존) 웹페이지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