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상 중·장거리선수 활약
40년 가까이 인천육상 이끌어 온
지역 체육계 든든한 버팀목
아직도 뛰고 있는 선수들 보면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고
◈육상 접한 계기와 기억에 남는 순간
중 1학년때 잘 뛴다는 선배 권유로 시작
강화 3·1절 기념대회 내가 초대 우승자
◈체육계 수장으로 잊지 못 할 일
육상연맹도 안될거라던 亞육상선수권
2표 차로 인도 꺾고 인천유치 이끌어내
◈후배 체육인들에 당부의 말씀
'떠난 다음에는 말하지 말라'가 내 신조
비난이 될 수 있기에 조언은 안하는 편
◈송도국제마라톤대회에 대해
풀코스 국제대회로 개최위해 서둘러야
대회만의 특징있는 기념품 제공도 필요

고교와 대학 재학 시절 육상 중·장거리 선수로 활약했으며, 인천이 경기도에 속했던 1975년 경기도육상연맹 부회장으로 체육 행정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40년 가까이 인천 육상을 이끈 곽 전 회장의 육상 인생은 한 권의 책으로 엮어도 될 정도로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유치의 밑거름이 된 제16회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2005년 개최)부터 지역 육상과 마라톤대회들까지 곽 전 회장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아직도 운동장을 달리는 선수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는 곽 전 회장에게 마라톤과도 같은 체육(육상) 인생을 들었다.

당시엔 인천기계공고가 6년제였다. 숭의초교를 졸업하고 시험을 봐서 기계공고 6년제에 입학했다. 1학년 때 선배들이 한번 뛰어보라고 해서 운동장을 뛰었는데, 잘 뛴다고 육상부를 권유해서 바로 들어갔다. 일제시대 때 태어나 분위기상 운동을 할 수 없었다.
1945년 광복 이후 들어간 중학교 1학년 때 육상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에는 야구나 축구 같은 구기 종목이 뒤처져 있었기 때문에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은 육상 뿐이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지금도 매년 강화에서 3·1절 기념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60회가 넘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첫 대회가 열렸는데, 내가 1회 대회 우승자다. 60여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현재 인천 중구청 부근에서 출발해 옛 부평 경찰학교까지 돌아오는 20㎞ 코스였는데, 가장 먼저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이 밖에도 학년별 육상대회가 있었는데, 중·장거리 종목에서 3관왕에 오르며 최우수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요즘처럼 좋은 경기장에서 세련된 방식으로 경기를 한 건 아니었지만, 각 학교에서 펼친 응원전은 상당히 열광적이었다.
달리는 과정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완주를 하면 그 괴로움은 눈이 녹듯 사라진다. 완주했을 때 느끼는 희열을 잊지 못해 지속적으로 달렸던 것 같다.
-체육 행정가로 변신은 언제 한 건가.
고교 졸업 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동국대로 진학을 했다. 대학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는 경기도육상경기연맹에 들어갔으며, 어린 나이에 경기도체육회 이사로도 활동했다. 한때 인천 제일생명 초대 지점장을 지냈으며, 10년 정도 사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인천시육상연맹 회장과 시체육회 이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5년 9월 인천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다. 북한을 포함해 43개국이 참여했는데, 너무 자랑스러웠다. 당시 영창악기 대표가 친구였는데, 대회 관중을 위한 경품용으로 쓰기 위해 친구에게 피아노를 원가에 줄 수 있느냐고 제안했고, 친구가 흔쾌히 응해서 피아노를 경품으로 내걸 수 있었다.
그것 때문이었는지 응원전은 더욱 뜨거웠다. 대회 개최 전으로 돌아가서, 당시 안상수 시장이 대회 유치를 제안했다. 내가 공식적인 유치 활동에 나섰는데, 대한육상연맹에서는 안 될 거라고 했다. 인천 육상이 망신만 당할 것이라는 목소리들도 만만치 않게 들렸다. 내가 직접 아시아육상연맹을 찾아가 유치 운동을 벌였다.
필리핀 총회에서 대회 개최지를 선정했는데, 17-15, 단 2표 차로 인도를 꺾고 인천으로 대회를 가져왔다. 당시 깊은 관계를 맺은 아시아연맹 회장이 훗날 2014 인천아시안게임 유치 때도 도움을 많이 줬다. 지금도 모리스 니콜라스 아시아연맹 사무총장을 비롯해 다들 형제처럼 지낸다.
지역 체육계로 넓혀서 본다면, 1981년 인천시가 직할시로 편제된 후 시체육회 이사를 맡았었는데, 당시 숭의경기장 옆에 건립한 체육회관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심재홍 시장(시체육회장)이 체육회관을 짓는데 얼마가 들어가느냐고 묻길래 10억원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45억원이 들어갔다. 훗날 심 시장이 나한테 거짓말 했다고 하길래, '돈 많이 든다고 했으면 짓게 했겠느냐'고 답하고는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난다.
-현재 들어선 인천축구전용경기장과 주변 아파트 단지가 계획되면서 숭의경기장과 도원야구장, 체육회관은 모두 헐렸다. 체육회관 지었을 때가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으면, 헐릴 때 상당히 아쉬워했을 것 같다.
2008년께 경기장과 회관이 헐렸다. 헐리기 전 회관에 입주해 있던 경기가맹단체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아쉬움의 술잔을 기울였던 생각이 난다.
-지역 체육계 어른으로서 후배 체육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 신조가 '떠난 다음에는 말하지 말라'이다. 비난이 된다. 현재 연맹 회장도 관둔 상태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조언 등은 안 하려고 한다.
-오는 24일 올해 하반기 인천에서 열리는 최대 마라톤 축제인 2017 인천 송도국제마라톤대회가 열린다. 대회 설립을 주도했는데.
모리스 니콜라스 아시아연맹 사무총장이 대회 설립에 도움을 많이 줬다. 만약 나와 형제처럼 지내는 모리스 사무총장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상반기에 열리는 인천국제하프마라톤대회가 기존에 있는 상황에서 한 도시에 2개 국제 하프 마라톤대회를 배정하지 않았을 거다. 아시아연맹의 전 회장과 현 회장 모두 힘 써줬다.
-수년 동안 송도국제마라톤대회를 지켜봤는데, 더욱 발전하기 위해선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보나.
송도국제도시 안에서 이뤄지는 이 대회는 코스도 좋고, 발전 가능성이 많다. 최대한 빨리 풀코스 국제 대회를 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풀코스 국제대회로 올라서면 참가 선수들부터 해서 대회의 규모와 격이 올라간다.
그리고, 해외 이름 있는 마라톤 대회들을 보면 마라톤 완주자들에게 그 대회만의 특징이 잘 반영된 의미 있는 기념품들을 제공한다. 송도국제마라톤대회도 이런 부분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송도국제마라톤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마라토너들을 비롯해 마라톤을 즐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마라톤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으며 가장 정직한 운동이다. 달리면서 자아를 성찰할 수 있는 좋은 스포츠인 마라톤을 보다 많은 시민이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
대담·정리/임성훈 인천본사 문체부장·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곽재영 전 회장은?
-학 력
▲ 1951년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졸업
▲ 1955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경 력
▲ 1975년 경기도육상경기연맹 부회장
▲ 1976년 경우해운(주) 대표회장
▲ 1978년 대한육상경기연맹 이사
▲ 1981년 인천시육상경기연맹 회장, 인천시체육회 이사
▲ 1989년 인천시체육회 실무부회장
▲ 1994년 인천상공회의소 부회장
▲ 1996년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
▲ 2001년 (사)한국육상진흥회 이사
▲ 2004년 제16회 인천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
▲ 2013년 1월 인천육상경기연맹 회장 이임
▲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