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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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이율기 인천시컬링경기연맹·장애인컬링협회 회장 지면기사
돈 없는 市 대신 후원기업 직접 발굴최초 민·관 장애인체육 실업팀 창단선인중 동계체전 金 획득 밑거름 역할선수 경력 아들 덕에 빙상종목과 인연장애인 컬링 베이징선 인천도 노려볼만인천엔 고교팀 없어 제도 뒷받침 절실#인천시장애인체육회 휠체어컬링팀이 2016년 11월 25일 인천교통공사 대회의실에서 창단식을 갖고 출범을 알렸다. 전국 최초로 민·관이 함께 만든 장애인체육 실업팀이었다. 2015년 대한장애인체육회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 맞춰 관련 종목 실업팀 창단 지원안을 발표했다. 지자체와 향후 3년 동안 실업팀 운영 예산을 1대1로 매칭 지원한다는 제안이었다.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지어진 선학국제빙상경기장으로 인해 동계 종목 발전의 주춧돌이 놓인 상황이었지만,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인천시 입장에서는 이 제안을 수용하지 못했다.이때 인천시장애인컬링협회가 나서서 후원 기업 4곳을 찾았고, 이를 통해 전국 최초로 민간이 지원한 장애인체육 실업팀을 창단할 수 있었다.#인천 선인중 컬링팀은 2017년 1월 25일 이천훈련원 컬링경기장에서 열린 제98회 전국 동계체육대회 컬링 남중부 결승에서 서울 신구중을 11-3으로 완파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인천 컬링 사상 처음으로 동계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는 순간이었다. 특히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선인중 컬링이 당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며 의미를 더했다. 정규 수업을 마치고 방과 후를 활용한 훈련을 통해 동계체전 금메달을 획득한 데에는 인천시컬링경기연맹의 지원과 지도자들의 헌신적 지도가 크게 작용했다고 지역 체육계는 분석했다.인천 컬링사(史)를 새로 쓴 사건들이 몇 년 사이에 벌어졌다. 그 중심에는 이율기(58) 인천시컬링경기연맹 회장 겸 인천시장애인컬링협회 회장이 있었다.컬링 여자 국가대표팀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어느 때보다 국내에서 컬링에 대한 인기가 치솟고 있는 가운데, 이율기 회장을 만나기 위해 지난 26일 오후 선학국제빙상경기장 지하에 위치한 컬링경기장을 찾았다.코멕스전자(주) 대표이기도 한 이 회장은 이날 오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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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8번째 지방선거 앞둔 우근학 경기도선관위 상임위원 지면기사
1987 개헌 투표 시작으로 30여년 외길관리만 하던 예전엔 불법 심했지만…선관위 권한 강화·사전투표로 진일보무탈했던 '조기 대선' 등 기억에 남아안정적 시스템 입증 자부심 가질만해경기도 투표율 높지않아 어깨 무거워'처음'이란 누구에게나 설레고 잊지 못할 순간이다. 상인에겐 첫 손님, 배우에겐 첫 무대, 기자에겐 첫 기사의 기억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직원들에게는 처음으로 관리한 '첫 선거(투표)'가 그렇다. 일평생 선관위에서 일한 우근학(58) 경기도선관위 상임위원에게도 첫 선거는 잊을 수 없는 인생의 귀중한 조각이다.1986년 입사한 그의 첫 선거(투표)는 대통령 직선제를 결정한 1987년 10월 27일 9차 개헌 국민투표였다(투표는 찬성·반대 의사 표시를 묻는 것, 선거는 투표를 통해 공직자를 결정하는 절차로 사전적 의미가 다르다). 두달 뒤인 12월 16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대통령을 뽑은 13대 대통령 선거는 그가 관리한 두 번째 선거였다. 7번의 대통령 선거와 8번의 국회의원 총선거, 7번의 지방선거, 40여차례의 재보궐선거. 선관위 막내 직원이었던 그가 1급 상임위원이 될 때까지 30년 넘게 치러온 수많은 선거는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과정이기도 했다.2018년 6월 13일 우 상임위원은 경기도선관위에서 8번째 지방선거를 치르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지면 31년 만에 2번째 국민투표를 지켜보게 된다. 특히 올해는 대한민국에서 선거가 실시된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지방선거를 4개월여 앞둔 지난 8일 경기도선관위에서 우 상임위원을 만난 이유다.# '1987'에서 '2018'까지"격세지감이죠." 대한민국 선거의 산 증인으로 꼽히는 우 상임위원에게 30년 전과 지금의 선거를 비교해보면 어떻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 상임위원의 첫 선거는 혼란스러웠다. 9차 개헌 국민투표에 이어 실시된 13대 대통령 선거는 16년 만에 부활된 대통령 직선제였다. 선거 열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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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성인 대상 정규 중고교 과정 운영' 남인천중·고 윤국진 교장 지면기사
배움에 한 맺힌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 인천에는 '만학도(晩學徒)'들을 위한 학교는 없었을 것이다. 신포동에서 '메리야스' 장사를 하던 청년은 그 옛날 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던 '공순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웠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늦깎이 학생들의 배움터를 지키고 있다.인천 유일의 학력인증 평생학습 기관 '남인천중·고등학교' 윤국진(73) 교장은 "단 1명의 만학도가 있더라도 학교는 계속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 최초 성인 대상 정규 중고교 과정을 개설해 배움에 목말랐던 만학도의 꿈을 이뤄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월 31일 대한민국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국민훈장에 준하는 국민포장은 각계각층에서 묵묵히 국민을 위해 헌신한 유공자에 수여하는 포상으로 대통령표창보다 한 단계 높다.윤 교장은 해방을 한 해 앞둔 1945년 충북 괴산의 농촌에서 10마지기의 논과 2천 평의 밭을 가진 부농의 늦둥이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남부러울 것 없던 그의 유년기는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면서 산산조각 났다. 제대하고 돌아온 형은 집과 땅을 몰래 팔아치웠고 윤 교장은 어머니, 누나와 함께 말 그대로 길바닥에 나앉게 됐다."학교는 다녔는데 점심을 싸가지 못하니까 물로 배를 채우고, 결국에는 수업료를 내지도 못해 국민학교 졸업장도 따지 못했어요. 누나와 산에 가서 땔감용 솔방울을 따다가 8㎞ 떨어진 증평에 팔면서 끼니를 때웠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도 충격으로 정신병에 걸리셔서 '왜 어린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나' 하늘을 원망했어요."공부를 너무 하고 싶었지만 먹고 사는 게 우선이었다. 보리쌀과 풀죽을 쑤어먹으며 살았던 그는 어머니를 시집간 누나의 집에 맡기고 13살의 나이에 무작정 고향을 떠났다. 인천에 먼저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는 동네 형이 고향에 내려와서는 "인천에 오면 취직도 시켜주고 먹고 살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함께 인천에 가자고 했던 형은 연락을 끊고 사라졌고, 먼 친척에게서 150환을 얻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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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야구 인프라 전략 발표 류준열 SK 와이번스 대표이사 지면기사
프로야구 SK 와이번스는 2018년 새해 들어서 '야구 공유 인프라 전략'을 발표했다. '야구 공유 인프라 전략'은 SK 구단이 가진 자산 및 역량에 연고지인 인천 지역의 기업과 관공서, 각종 단체들의 참여를 결합해 지역 사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모든 활동을 일컫는다. 이를 통해 사회·경제적 가치 창출을 하려는 것이다.2007년 당시 막내 구단이었던 SK는 '스포테인먼트(Sportainment)'로 바람을 일으켰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인 '스포테인먼트'는 구단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당시 타 구단들이 무형의 홍보 효과에만 의존하던 상황에서 SK는 팬 중심(Fan first) 사고를 기반으로 혁신에 나섰다. SK의 스포테인먼트는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의 제공에서 출발했다. SK는 그해 창단 첫 우승도 달성했다. 이후 스포테인먼트는 관객들의 관람시설 개선, 경기장의 체험 및 스토리 기반의 복합 여가 공간 구축, 프로 구단의 사회적 책임 이행에 이르기까지 진화해왔다올해 구단 마케팅 중심에도 기업사회공헌(CSR) 활동을 두었다. 기존 CSR 활동에 연고 지역을 결합시켜 공익과 함께 보다 인천과 팬들에게 다가서겠다는 의지를 내세웠다.'야구 공유 인프라 전략'과 진화하는 구단 마케팅, 다가오는 시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류준열(54) SK 와이번스 대표이사를 최근 집무실에서 만났다. 류 대표이사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경제 전문가이기도 하다.류 대표이사는 새 구단 점퍼를 입고 취재진을 맞았다. 아직 공식 발표 전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새 점퍼가 첫 화제로 올랐다. 류 대표이사는 "선수들이 입고 싶은 옷이 아닌 팬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디자이너를 위촉해 새롭게 디자인했다"며 "야구장에서만 입는 옷이 아닌 생활 속에서도 즐겨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기 위해 빨간색을 줄였다"고 설명했다.이내 화제를 바꿔서 '야구 공유 인프라 전략'에 대한 류 대표이사의 설명을 청했다."예로 들어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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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한국 아동문학의 거장 윤수천 작가 지면기사
대부분 '영감' 버스에서 얻어매일 눈 뜨는 게 너무 신나시간 많은 노인에겐 최고의 놀잇감내가 글 쓰는 사람인 건 행운할아버지는 바람이 매섭게 부는 한겨울에도 버스 타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버스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 떠오르는 공상을 수집하는 일이, 아무리 해도 지겹지 않은 '창작여행'이라 즐겁기만 하단다. 그것이 평생 80여 권의 가슴 따뜻한 동화를 아이들에게 선물한 거장의 숨겨둔 비결이리라.한국 아동문학의 거장이자 어린이들의 친구인 윤수천 작가는 인터뷰가 약속된 날(지난 17일)도 버스를 탔다. 추운 날씨에 건강을 걱정했더니 "나는 버스 타는 일이 정말 즐거워요. 아무 일이 없어도 버스를 타고 세상 한바퀴를 돌기도 해요. 혼자 가만히 앉아 재미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이 버스만큼 좋은 게 없지요. 내 동화의 영감은 대부분 버스에서 나왔어요"라며 맑게 웃었다.윤수천 작가는 올해로 76세다. 흔히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윤 작가에게 나이는 정말 숫자일 뿐이다. 쉼없는 작품 활동이 이를 방증한다. 그는 지금도 매일 글을 쓴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너무 신이 납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는 일이 설레거든요. 나같이 시간 많은 노인은 놀잇감이 필요해요. 혼자서도 잘 놀수 있는 일 중에 글 만한 것이 없어요. 나는 내가 글쓰는 사람인 것이 몹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사실 윤 작가의 삶은 '글' 쓰는 것이 좋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님이 나를 너무 귀여워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어요. 심지어 물가가 위험하다며 가지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셔서 지금도 수영을 못합니다.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너무 귀하게만 키우셔서 오히려 모험에 대한 갈증이 강했던 것 같아요. 행동으로 옮기질 못하니,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그걸 글로 표현하는 게 즐거웠어요. 문학은 뭐든지 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윤 작가에게 글은 가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케 해주는 친구가 됐고, 나이가 들수록 재능으로 진가를 발휘했다. "중학교 작문시간에 내가 쓴 작품을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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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제2여객터미널 개장 앞둔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지면기사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개장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제2터미널 개장으로 인천공항은 연간 7천200만명의 여객과 500만t의 화물 처리 능력을 갖추게 돼 명실상부한 동북아 지역 대표 공항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인천공항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제2터미널을 포함한 3단계 사업(사업비 4조9천300억 원)을 마치자마자 4단계 사업을 추진한다. 제2터미널을 확장하고, 제4활주로를 조성해 연간 여객 처리 능력을 1억명 수준까지 확대한다. 인천공항은 셀프·자동화 서비스 확대, 첨단 ICT(정보통신기술), AI(인공지능) 등을 공항 곳곳에 적용해 '스마트 리딩(leading) 공항'으로도 거듭나고 있다. 세계공항서비스평가 12연패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보유한 인천공항은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인천국제공항공사 정일영 사장은 막바지 제2터미널 개장 준비 상황 점검을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2터미널 현장으로 출근해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며 성공적인 개장을 위해 전력하고 있다. 15일 오후 제2터미널 점검회의를 마치고 나온 정일영 사장을 만나 개장 준비 상황에 대해 들었다. 제2터미널 개장 준비로 바쁜 정 사장을 고려해 미리 질문지를 보내놓고 서면으로도 답변을 들었다. 그는 화장실 다녀올 시간도 없었던지 인터뷰용 사진 촬영 중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뜨기도 했다. 정 사장은 "개항을 위한 준비를 다 마쳤고, 이제는 혹시나 모를 비상사태,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일어날 것이라고 가정하고 이에 대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제2터미널에 올 때도 일부러 공항철도를 이용했다. 공항 이용객의 입장에서 불편한 부분이 있는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인천공항공사는 지난 2015년 12월 제2터미널 오픈과 관련한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운영·오픈 준비와 관련한 통합관리를 시작했다. 25개 분야 3천 개 세부 추진과제를 도출해 이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실제 운영 상황을 가정한 시험운영도 벌여왔다. 그동안 투입된 가상여객만 2만2천 명에 달한다. 가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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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사재 털어 '세터상' 만드는 프로배구 신영철 한국전력 前 감독 지면기사
수원 한국전력 신영철 전 감독은 배구팬들에게 80년대 한국 남자배구 최고의 세터로 평가 받는다.지도자로서도 인천 대한항공의 2010~2011 V리그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어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대한항공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건 2010~2011시즌이 처음이다. 또 만년 하위권팀으로 인식 되어 있는 한국전력도 4시즌 동안 사령탑을 맡아 정규리그 3위 2번 KOVO컵 정상 1번 등을 일궈내며 신흥 강호 대열로 이끌었다. 모교인 경기대에서 배구 트레이닝에 관한 박사 학위를 받으며 공부하는 지도자로도 알려져 있다. 명세터, 명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신 감독에게 별명이 하나 더 추가될 것 같다. #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 선배가 되고 싶은 신영철신 전 감독은 2018년 시작과 함께 한국 배구계와 스포츠계에 화두를 던졌다. 그가 배구계와 스포츠계에 던진 화두는 '나눔'과 '관심'이다.그는 지난해 세터상을 만들기 위해 사재를 내놓기로 결심하고 대한배구협회 산하 단체인 한국중고배구연맹(이하 중고연맹)과 협의를 마쳤다. 신 전 감독은 "이름을 알리기 위해 그런건 아닌데, 관심을 가져 주시니 너무 감사하다"며 손사래를 쳤다.사실 신 전 감독이 세터상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건 대한항공의 사령탑을 맡고 정규리그 정상에 오른 2011년 봄이다.당시 여러가지 상황상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고, 이후 한국전력 감독 시절에도 꾸준히 준비하고 있었다.그리고 지난해 한국전력 감독에서 물러난 후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로 했다.신 전 감독은 "배구 선배로서 유망주들에게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프로선수를 꿈꾸는 유망주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중고연맹과 논의를 거쳐 올해 대통령배 대회부터 세터상을 만들게 됐다. 상금은 중고연맹과 협의해 금액을 정하려 한다"고 전했다.이어 신 전 감독은 "제가 만든 세터상은 남고생들에게 주는 상이다. 제가 이 상을 운영하다 보면 다른분들도 여고생들을 위한 상을 만들어 주실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아마추어 유망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에 나서 주실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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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인천시 산업평화대상' 전국자동차노련 인천노조 김성태 위원장 지면기사
도로위 4800여 조합원에 수상 영광 돌려1975년 고속지부 조직부 노동운동 첫발1980년 강제해산 재설립까지 8년 '공백'취임 초기 계약직 전환·임금체불 '심각'준공영제 도입 정규직 비율 80%로 올려근로조건 개선으로 서비스 질 향상 뿌듯동네 방방곡곡에 실핏줄처럼 퍼져 시민의 발이 되어주고 있는 시내버스는 그 어떤 사업장보다도 노사관계가 중요하다. 버스 노동자와 사용자 간 관계가 어긋난다면 매일 버스를 타는 시민들이 정상적인 일상을 누리기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2009년 인천시가 인천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한 이후 버스운송사업의 공공성은 더욱 커졌다. 인천시는 건전한 노사관계로 지역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단체의 공로를 기리는 취지로 매년 '인천시 산업평화대상'을 수여하고 있다. 2017년 제27회 수상자로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인천지역노동조합이 선정됐다. 운수분야 노동단체가 개인이 아닌 단체자격으로 인천시 산업평화대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자동차노련 인천노조는 총 29개 지부(시내버스 23개, 시외버스 5개, 화물 1개)를 뒀고, 조합원은 4천800명에 달한다. 인천 버스노동자의 95%가 조합원이라서 교섭대표권을 가진 노조다.김성태(70)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인천지역노동조합 위원장은 "시내버스 준공영제 시행 이후 대중교통문화 정착과 인천지역 경제발전을 위해 더욱 전력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며 "산업평화대상 수상의 영광은 열악한 근로여건에도 묵묵히 참고 견디며 도로 위에서 고생하는 4천800여 조합원에게 돌린다"고 소감을 밝혔다.전국자동차노련 인천노조는 1988년 9월 설립돼 올해로 꼭 30년째를 맞았다. 당시 9개 회사의 노동조합에 조합원 1천300여 명으로 출범해 지금의 규모로 확대됐다. 하지만 전국자동차노련 인천노조의 역사는 30년에 그치지 않는다. 전국자동차노련 인천노조는 전두환 정권 초기에 단행한 '노동조합 정화지침' 중 '지역지부 폐지' 명령에 따라 1980년 해산된 바 있다. 김성태 위원장은 1975년 3월 전국자동차노련 고속지부 조직부에 입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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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42년 공직생활 마감 앞둔 홍승표 경기관광공사 사장 지면기사
문학소년, 가정형편 어려워 대학진학 대신 택한 길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이후 비서실로 자리옮겨열심히 산 덕에 선·후배 신망 높아… 명퇴 후 비서실장 복귀흑자 전환 등 성과로 화답… 이제 글 많이 쓰고 싶어평생 글쟁이로 살고 싶었다. 절절한 시구처럼, 시를 위해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은, 꿈처럼 살 수만은 없었다. 그 시대는 다 그랬다. 전쟁이 막 끝난 1956년, 경기도 광주 시골마을에서 6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난 홍승표는 하고 싶은 공부를 다할 수 없었다. 특히 시를 사랑하는, 심성 착한 문학소년은 내 욕심만 부릴 수 없었다. 홍승표 경기관광공사 사장은 오는 29일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다. 글쟁이로 살고 싶었던 문학소년이 생계를 위해 공직에 입문한 지, 42년 5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반세기에 가까운,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첫머리로 그는 문학소년이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연세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전국 고등학생 문예콩쿠르가 있었어요. 난 시조를 써 냈는데 장원을 했지. 그 문예콩쿠르는 국문학과 장학 특전도 있어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형은 군대에 가 있고, 밑으로 딸린 동생들이 수두룩해 집안 형편상 차마 대학 가겠단 말을 못하겠더라고. 학교 선생님들이 학비를 지원해준다 했지만, 광주 시골에서 서울까지 하숙비를 감당할 수 없으니까." 때마침 광주시 공무원 채용공고가 났는데, 그는 혹시 하는 생각에 가볍게 시험을 봤단다. 그리고 덜컥 합격을 하면서 공직에 들어섰다. "대학은 나중에라도 갈 수 있으니, 일단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어요. 그때 아버지는 미안하셨는지, 공무원을 반대하시더라고.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공직생활이지만, 글 짓는 재주 덕에 공보실로 발령받아 보도자료 쓰는 일을 했다. "공직생활을 돌아보면 홍보와 인연이 깊어요. 처음 공보실로 발령받고 보도자료를 썼는데, 그래도 잘 썼는지 내가 쓴 대로 신문에 나는 적도 많았어요. 전입시험을 봐 도청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공보실에서 일했는데 그때도 계속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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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모던 인천 시리즈 1' 펴낸 일본인 건축가 도미이 마사노리 교수 지면기사
1930년대 조감도·사진첩 토대 지역별로 기록… 세밀함에 놀라관동갤러리 리모델링 작업 참여… 부평 영단주택 주제로 강연도학생들 열정에 반해 한국 정착… 월미도·인천항·강화도에 관심일본식 건축구조에 온돌 접목 등 독특한 특성 연구에 힘보탤 것인천은 일제 시대 지어진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1883년 개항이 이뤄지면서 일본인들이 대거 이주해 살았고, 이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건축물을 지어 생활했다. 이 건축물들은 하역사 사무소, 주택 등으로 활용됐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식 건축물은 잇따라 지어졌고 이러한 흔적은 인천 중구, 부평구 등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인천 곳곳에 스며 있다. 도미이 마사노리(富井 正憲·69) 한양대 객원교수(건축학과)는 이러한 인천의 매력에 빠진 일본인 건축가다.그는 지난 8월 1930년대 인천의 모습을 담은 책 '모던 인천 시리즈 1'을 펴냈다. 김용하 전 인천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인천에 사는 일본인 작가 도다 이쿠코 등이 공저자다. 1930년대 조선신문사가 발행한 조감도 '대경성부대관'과 사진첩 '대경성도시대관'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책은 당시 인천을 소개하고 있다. 조감도와 사진첩의 '인천부' 부분을 바탕으로 인천 중구 관동, 사동, 율목동, 북성동, 해안동 등 각 지역별로 1930년대 인천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사진첩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개항장을 중심으로 인천의 명승지나 사찰, 관공서, 학교, 병원, 민간회사, 상점, 공장 등을 망라해 간단한 설명을 붙였다. 이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에 대해서는 현재 용도와 상호 등을 넣어 현재와 과거 인천을 비교할 수 있도록 도왔다.그는 "사진첩의 존재는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조감도인 대경성부대관은 오랫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며 "처음으로 조감도 존재를 안 시기는 2011년이며, 그 세밀함과 아름다움에 놀랐다"고 했다.이어 "인천은 개항장을 중심으로 일본인이 거주했던 지역과 한국인이 살았던 지역이 확연하게 구분되며, 조감도에 이러한 부분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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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에버트 인권상 대표 수상 수원 동남보건대 응급구조학과 장애진씨 지면기사
안도의 손길 내민 응급구조사에 고마움 느껴보육교사에서 사람 살리는 쪽으로 진로 바꿔아직도 친자매 같던 친구들 떠올라 괴롭지만용기 북돋아 준 아버지 있어 세상밖으로 나와실습중 배운 대로 했더니 심정지 환자 살아나기억하기 싫은 역사도 반복 막기위해 상기해야앳된 얼굴의 스무살 소녀가 대한민국 1천700만 촛불 시민을 대표해 연단에 섰다. 독일 베를린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수여하는 '에버트 인권상' 대표 수상자, 장애진(20)씨다.세월호 생존자로도 잘 알려진 장씨는 현재 수원 동남보건대학교 응급구조학과에 재학 중인 '예비 응급구조사'다. 죽음의 바다에서 살아남아 새로운 꿈을 꾸는 장씨를 지난 11일 동남보건대 사담기념관에서 만났다.장씨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며 응급구조학과에 진학했다. 아이들을 좋아해 보육교사가 되고 싶었으나 지금은 응급구조사를 꿈꾸고 있으니, 세월호가 장씨의 운명을 바꾼 셈이다.참사 당시 장씨는 SP-1(세월호 다인실 격실) 구역에서 같은 반 친구 7명과 함께 구명조끼를 입고 해경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배가 점점 더 기울고 급기야 칸막이 대용으로 설치된 캐비닛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벽이 바닥으로 내려가고 출입문은 천장으로 올라갔다.큰 충격을 받아서일까. 극적으로 몇몇 친구들과 함께 탈출했지만 해경 보트를 타고 큰 배로 옮겨타는 순간의 기억은 희미하다. 서거차도에 발을 딛고 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때 장씨 곁을 지켜준 고마운 이가 급파된 119 응급구조사였다. 당시 따뜻한 담요와 말 한마디로 자신을 위로하며 안도의 손길을 내밀었던 응급구조사처럼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장씨의 꿈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거역하고 지켜낸 소중한 삶을 이제는 다른 이를 돕는 데 쓰고 싶다는 것이다.아직도 해가 지고 나면 중학교 때부터 친자매처럼 지냈던 민정이와 민지 생각에 괴롭다. 단짝 2명을 비롯해 한순간에 반 친구 18명과 담임 선생님을 잃었고, 세월호가 인양된 뒤에야 돌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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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생애 첫 수필집 '뜨거운 빙수' 펴낸 이영옥 수필가 지면기사
평범했던 삶 '문학 소녀의 꿈을 이루세요' 공모전 문구에 마음 움직여입상 후 일기 대신 습작… 매달 2~3편씩 300여편 노트 20여권에 담아이혼하고 싶은 마음·경제적인 고통도 펜으로 풀어… 일터와 집이 글감창피한 내용이지만 글쓰기는 삶의 일부… 정년도 없어 평생하고 싶어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글을 쓰지 마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매일 작업하지 않고 피아노나 노래를 배울 수 있습니까.어쩌다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레프 톨스토이작가의 재능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희귀하지 않다.오히려 그 재능은 많은 시간 동안의고독을 견디고 계속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에서부분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리베카 솔닛학창시절 수많은 문학소년·소녀들이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꿈을 꾼다. 하지만 그렇게 꿈을 꾸는 이들이 오래도록 그것을 간직하고 실제 이루는 경우는 결코 흔하지 않다.사는 게 바쁘고 힘들어서, 먹고 산다는 일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대개는 그 꿈을 포기하고 글쓰기와 담을 쌓은 채 산다.글을 쓰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글을 쓰지 않고 살아도 평범한 삶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말이다.그 흔하디흔한 문학 소년·소녀들이 그렇게 하나둘 사라져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인천에서 30년 가까이 산 이영옥(56)씨도 학창시절 문학소녀였다고 했다. 그는 "적어도 환갑이 될 즈음이면, 내 글로 채워진 책 한 권쯤을 세상에 내놓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었다고 한다.그는 그 꿈을 잊지 않았고 계속 글을 썼다. 마침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첫 수필집을 세상에 내놓으며 그 꿈을 이뤘다.20여년을 '커피 아줌마'로, 최근에는 인천대공원에서 기간제 청소 노동자로 일해온 주부 이씨가 펴낸 수필집 '뜨거운 빙수'(에세이문학출판부 刊)는 평범한 이들이 잊고 사는 꿈을 이뤄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특별해 보인다.지난 3일 오후 불과 며칠 전 까지 자신이 일했다는 인천대공원에서 그를 만났다.첫 에세이집을 펴낸 소감을 묻자 이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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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박해진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이사장 지면기사
■신보 이사장 연임 어떻게 가능했나처우 개선하니 사기 오르고 실적 따라와자연스레 신뢰 얻고 행감서도 칭찬 받아■함께 일한 3명의 도지사 차이점은孫 준비된 지도자형… 金 청렴한 일꾼南 미래 내다보는 눈 남다르고 개혁적■경과원 조직 내부 갈등 묘책 있나나 포함 모두가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쪼개진 노조부터 하나돼야 변화 가능■경기도는 어떤 의미인가군사력·중소기업·핵심기술 등 집중돼한국 동력이자 미래, 위기의식 가져야박해진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이사장은 경기도에서 입지전적 인물이자 공공기관의 신화로 불린다.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장, 농협중앙회 금융대표 부회장, 농협대학교 총장, 경기신용보증재단 이사장, 민주평통 경기지역회의 부의장 등 그가 있었던 자리에는 항상 신기록과 기관의 한 단계 도약이 있었다.특히 경기도지사가 바뀌는 과정에서도 경기신보 이사장을 4번이나 연임한 것은 박 이사장에 대한 도민들의 신뢰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런 공로로 산업포장,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받기도 했다. 그런 박 이사장이 최근 통합을 통해 초대형 공공기관이 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이하 경과원)의 이사장을 맡으면서, 다시 한번 화제의 인물이 됐다.그의 경험과 노하우가 신생 통합기관에 긍정적 에너지를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서다.박 이사장을 만나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2012년 경기신보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후 5년 만에 다시 공공기관에 복귀했다. 소감은 어떤가."공직 생활 45년 정도했고, 그 중 30여 년을 경기도에서 했다. 농협 경기본부장을 비롯해 경기신용보증재단 이사장을 4번 연임했다. 5번째도 나한테 하라고 하는 걸 사양했다. 당시 손학규 도지사를 통해 발탁됐고 김문수 지사의 신뢰를 받아 연임했다. 임기가 끝나고 민주평통 경기도 부의장이 됐다. 대통령이 의장이고 각 광역단체마다 부의장이 있는데, 전국 부의장회 회장도 맡았다. 민주평통은 대통령 자문 헌법기관으로 청와대 회의에 들어가면 모두 발언을 했다. 사실은 부의장만 한 게 아니고 전체 평통을 이끌다시피 했다. 민주평통이 7월로 끝났다. 그래서 이제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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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김교흥 국회 사무총장 지면기사
■신뢰받는 국회 만들기 구상은불체포 남용 방지 등 특권 내려놓기민원 적극 검토 국민입법 실현 초점■개헌 방향성과 공감대 형성은국민기본권 강화 지방분권도 담아야100회 이상 전문가와 의견 청취 수렴■'수도권 족쇄' 규제 완화 입장은경제자유구역 국내 대기업 유치 절실법개정 등 엉킨 것 풀고 끊긴 곳 이어야제17대 국회의원(인천 서구 강화 갑)을 시작으로 민주당 수석사무부총장, 인천시 정무부시장, 국회의장 비서실장 등 인천과 중앙 정치권을 넘나들며 활동 무대를 넓혀온 김교흥 전 의원이 최근 장관급인 국회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국회사무처는 국회의원의 법제 업무를 지원하고 의원 외교, 의정 연수 등 국회 내 모든 행정사무를 처리하는 곳으로 의원 보좌진을 포함해 4천여 명의 직원이 상주하는 입법부의 중심 기구다. 지난 16일 오전 국회 본관 3층 사무총장실에서 만난 그는 취임 이후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여의도를 누비고 있다고 했다. 지난 1일 취임 이후 사무처 업무보고를 시작으로 국정감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을 준비하는데 온통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국회에서 심사 중인 내년 정부 예산안도 원만히 통과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역량을 모으고 있다고도 했다.24시간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의 마음과 머리는 항상 인천을 향하고 있다. 김교흥 사무총장은 인천과 경기도 등 수도권 지역 발전의 족쇄로 지적받고 있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을 포함한 많은 규제를 손봐야 한다고 했다. 그 대표적인 게 인천 송도를 비롯한 경제자유구역에 국내 대기업이 들어올 수 있도록 관련 법규가 개정돼야 하는 거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국회 내 가장 큰 현안 중 하나인 개헌 문제와 관련해서는 개헌의 추동력은 오직 국민이라며 여야 정치권을 떠나 국민의 공감대를 힘으로 개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총력을 쏟겠다고 강조했다.특히 여권 내 인천시장 출마 후보군에 늘 이름을 올리고 있는 그는 "시장이나 국회의원이 내가 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분위기와 명분이 돼야 뜻을 이룰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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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포천 군사시설 피해대책 마련 촉구' 이길연 범대위 위원장 지면기사
야간 사격만이라도 줄여달라 했지만 개선 안돼사격 안할때 포함한 소음측정 평균치 어이없어재발방지 약속에도 목숨 위협 도비탄 사고 계속외부단체 참여 차단 불구 왜곡·호도 분통 터져보상 앞서 주민 목소리 귀기울이는 진정성 필요우르르 쾅! 펑! 펑! 펑!아직 시계는 정오도 가리키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훈련장에서 들려오는 사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에 위치한 미군사격훈련장인 '로드리게스 사격훈련장(Rodriguez Live Fire Complex·이하 영평사격장) 정문 앞에 거주하는 주민 대다수의 스마트폰에는 소음측정용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돼 있다.영평리 마을회관 옥상에도 소음측정기가 설치돼 상시 소음을 측정한다. 한 주민이 스마트폰을 꺼내 포 사격 순간 소음 측정치를 보여줬다. 결과는 75㏈.도심 도로변 아파트 실내에서 들리는 주간 소음 최대 기준치가 65㏈인 점을 고려하면 시내서 동떨어진 산골짜기 소음치고는 꽤나 큰 편이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들으면 깜짝 놀랄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영중면 영평리 주민들에게 낮에 들리는 이런 사격 소음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지난 2014년 영평사격장 등 군사시설 피해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조직된 '포천시 사격장 등 군 관련 시설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이길연(61) 위원장은 "만약 도시에서 이런 소음이 1년 365일, 24시간 들린다면 어느 누가 참을 수 있겠냐"고 분통을 터뜨렸다.그나마 낮 시간에 들리는 사격 소음은 참을 만하다. 주민들이 직접 측정한 야간사격 소음은 거의 매일 100㏈을 넘긴다.기차 철로로부터 100m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소음이 약 90㏈이고 건설공사 현장 반경 10m에서 나는 소음이 약 100㏈ 수준이다. 사실상 사격장 일대 주민들의 일상은 소음으로 시작해 소음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 위원장은 "이곳 주민들은 평생을 사격 소음 속에 살면서도 한·미동맹과 대한민국의 평화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고통을 참으면서 살아왔지만 야간사격만이라도 조금만 줄여달라고 요구한 지가 언 10년이 넘었다"며 "국방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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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영화 '대장 김창수' 연출 이원태 감독 지면기사
■개항기 인천에 대한 접근과 주요 장면 고증은?서양과 동양·봉건시대와 근대 등 충돌하는 공간 표현건축물 옆 판잣집처럼 부조화 이미지도 꼼꼼히 묘사백범일지 셀 수 없이 읽고 수차례 답사 디테일 살려■사실 아닌 '경인선 부설공사 노역' 다룬 이유는?곡식·광물 이어 위안부·노동자까지 실어나른 '만행'일제수탈의 현장 국민들에 알리기 위해 역사 재구성소설 아편전쟁 등 개항장 소재 이야깃거리 더 있어인천은 청년 '김창수(金昌洙)'가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자 '백범(白凡) 김구(金九)'로 다시 태어나는 전환점을 맞은 공간이다. 김구는 인천에서 2차례의 감옥살이를 했다. 국모 시해(을미사변)를 보복한다며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土田讓亮)를 죽인 '치하포 사건'으로 1896년 인천감리서에 투옥된 게 첫 번째 옥살이다. 당시 21살이던 김창수는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고, 얼마 후 인천 감옥에서 탈출했다. 이름을 고친 김구는 독립운동을 위한 서간도 무관학교 설립 움직임과 관련된 '안악 사건'으로 1911년 서울에서 또다시 옥살이하다가 39세 때인 1914년 인천 감옥으로 이감된다. 두 번째 인천 옥살이에서 백범은 인천항 축항 공사 강제노역에 동원되기도 했다. 김구는 이때 옥중에서 백정(白丁)의 '백'과 범부(凡夫)의 '범'을 따서 '백범'이라는 호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떠나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을 때까지 상하이 임시정부를 이끌며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지난달 19일 개봉한 영화 '대장 김창수'는 백범의 일대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이나 '해방 후 남북 분단의 격동기'를 다루지 않았다.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백범의 인천에서의 감옥살이를 이야기했다. 영화 '대장 김창수'가 백범의 20대 초반 청년 시절, 그중에서도 인천감리서에 사형수로 투옥된 시기를 스크린에 투영한 이유는 뭘까. 지난 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압구정 CGV에서 '대장 김창수'를 연출한 이원태(49) 감독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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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전국체전 경기도선수단 총감독' 최규진 道체육회 사무처장 지면기사
■체육인·정치인으로서 걸어온 길집안 형편 탓 야구 대신 중·고교 시절 태권도 선수 활약수원시체조협회장 역임 후 도의원으로 소관 상임위 활동산악연맹회장땐 도지사 설득해 히말라야 원정대 파견도■도체육회 사무처장의 고민18연패 새목표 지금 성적 만족하지 않고 발전방안 모색통합 성공 체육회 흔들림 없는 단체로 거듭나는 게 과제"16연패에 대한 기쁨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해 고민해야 합니다."경기도는 제98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종합우승을 달성하며 대회 종합우승 최다연속 기록인 16연패를 달성했다. 도선수단 총감독을 맡았던 최규진 도체육회 사무처장은 "16연패를 달성했다는 것은 기쁘지만 생각해 볼게 많아졌다"고 말한다.최 사무처장은 종합점수와 메달수가 전년도 보다 낮아진 것을 고민하는게 아니었다. 인구 1천300만명의 한국 최대 광역단체인 도의 규모와 위상에 맞는 성적을 냈는지, 그리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부분을 고민하고 있었다. 16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는데도 불구하고 최 사무처장이 경기체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건 그도 체육인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첫번째 인연, 야구를 하고 싶었던 어린이 태권도 선수 되다"경기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체육인인가요?"처음 최 사무처장을 만나는 사람은 그의 범상치 않은 체격으로 인해 이런 생각을 갖고는 한다.3선 도의원 출신이라 정치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수 있는 최 사무처장이기에 혹자들은 그를 체육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하지만 최 사무처장은 중·고교 시절 태권도 선수로 활약했었다.그는 "청소년시절 태권도를 했었다. 소년체전이나 전국체전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지역대회에서는 입상한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수원북중에 재학 당시 서울에 있는 모고교 태권도부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을 정도로 재능이 있었다.최 사무처장은 "어렸을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지동초등학교에 입학했을때 막 야구부가 생겨서 가입해서 훈련도 했었지만 당시 집안 형편이 여유가 없어서 못했다"며 "가끔은 내가 그때 계속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고 전했다.이어 최 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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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붓으로 한글지도 그리는 '세계평화작가' 한한국 작가 지면기사
20대때 이름 걸맞은 정체성 찾던 중 세종대왕 메시지 꿈 꿔 기획·제작20여년간 1㎝ 200만자 38개 작품 완성… UN본부 22개국·북한서 전시팔·무릎 피범벅 고통 속 자음·모음 화합의 원리처럼 한반도 통일 염원이산가족 아픔 담아 8년간 만든 '우리는 하나' 北도 예의 갖춰 가져가"본명이세요?"그를 만나면 많은 이들이 물어보는 말이다. 그의 이름은 '한한국(50)'. 본명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름에 나라가 3개(나라 한(韓), 나라 한(韓), 나라 국(國))나 들어가 있고, 전남 화순의 필봉산(筆峰山) 자락에서 태어나 한석봉의 후예(33대손)로 그 기상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붓 하나로 한국을 전파하고 세계평화를 얘기하는 '세계평화작가'라는 타이틀이 억지스럽다거나 어색하지 않고, 그의 운명인 양 자연스럽기만 하다. # 내 이름은 '한국', 정체성 찾다 한글지도 제작의 길로… 그가 하는 일은 한글로 세계지도를 그리는 작업이다. 한지를 수차례 배접하여 만든 대형한지 위에 세계평화의 염원이 담긴 글을 한글로 한자한자 빼곡히 담아낸다. 그의 작품은 각 나라의 지도에 마치 점처럼 한글을 채워넣는 것이 특징이다. 채색 대신 한글을 넣는 것이다. 한글 내용은 그 나라의 역사나 특징, 때론 문학작품이 들어가기도 한다. 글자는 1㎝의 작은 붓글씨로 채워가게 되는데 한번 오탈자가 나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글씨를 잘쓰는 것은 기본이고, 글자체와 형태 글씨의 강약과 전체적인 줄이 0.1㎜도 틀리지 않게 써야 한다. 어지간한 집중력과 체력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짧게는 5개월, 길게는 수년의 작업시간이 든다. 그 시간을 온전히 쭈그린 자세로 집중해야 하니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수련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연장이 남다른 것도 아니다. 작품활동을 할 때 사용하는 붓은 '대형 붓'을 제외하곤 세필붓(1㎝ 그릴때 쓰는 붓) 등은 모두 주변에서 쉽게 구입할수 있다.그와 붓과의 인연은 어릴적 부터 시작됐다. "8살에 붓을 잡고 한학을 공부했다. 군대에서도 모필병(毛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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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마지막 가곡집 7권 발간 강화 출신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 최영섭 지면기사
600여곡 작곡 슈베르트만큼 쓰겠다던 목표 이뤄… 도움 준 많은 분들께 감사초교때 처음 들은 노래 단번에 외우는 등 인천서 작곡가로서의 숙명과 만나인천중학교 밴드부서 실력발휘 다양한 악기 섭렵… 고 2때 작품 발표회 가져식민시절 아픔도 생생하지만 인생의 '노른자위' 고향서 기악곡 정리 바람도인천 강화 출신의 작곡가 최영섭(88)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수식어는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다. 같은 강화 태생의 시인 한상억(1915~1992)의 시에 최영섭 작곡가가 곡을 붙여 만든 이 가곡은 한국 음악 역사에서 가장 자주 애창되는 가곡 가운데 하나로 꼽는데 누구도 이견이 없다.인천의 작곡가 최영섭이 1947년부터 70년 동안 작곡한 665곡의 가곡이 마지막 143곡을 수록한 가곡집 7권(아브라함 음악사) 발간으로 모두 책에 정리됐다. 그의 작곡인생 꼭 70주년이자, 지난 2010년부터 정리 작업을 시작한 지 8년 만인 올해 마무리된 작업이다.가곡 정리작업은 2010년 210곡을 담은 1~3권을 시작으로, 2012년 70곡과 111곡을 각각 정리한 4·5권, 2015년 131곡을 실은 6권에 이어 올해 143곡을 담은 7권으로 마무리됐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가까이에 있는 작은 공원에서 그를 만났다.최영섭 작곡가는 "가곡을 600여곡 작곡했다는 슈베르트만큼 곡을 남기겠다며 다짐한 중학교 시절의 바람이 이제 이뤄졌다고 생각하니 흐뭇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며 "남은 여생은 관현악곡과 칸타타, 오페라, 합창곡 등을 정리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작곡하는 사람은 세상에 남겨 놔야 한다는 소명 때문에 시작한 일인데, 건강이나 생각의 흐트러짐이 없도록 보살펴 준 신의 가호가 없었다면 이뤄내지 못했을 일"이라며 "어쩌면 마지막 가곡집이 될 지 모를 작업에 관심을 가져주고 도움을 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이번 작곡집에는 좀 더 쉽게 부를 수 있게 고친 '그리운 금강산 개정판'의 악보와 고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광교 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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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홍희성 한국자유총연맹 경기지부 회장 지면기사
'안보에 좌·우 없다' 취임 후 혁신 발걸음, 많은 회원들 공감·동행사재 털어서라도 회령진성에 국제자원봉사센터·힐링센터 세울것세월호 분향소 지킴이 자처, 안산 정부 합동 분향소 유일하게 지켜3차례 부도 위기 딛고 일어선 뚝심 "봉사 힘으로 지역 발전 돕겠다""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1597년) 승리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장흥 회령진성을 안보와 자원봉사의 메카로 만드는 게 소망입니다."홍희성 한국자유총연맹(이하 자총) 경기지부 회장(54)은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이순신과 12척의 배'를 화두로 꺼냈다. 화두라기엔 구상이 구체적이다. "이충무공의 유적이 있는 전남 고금도에 안보와 자원봉사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국제자원봉사센터와 힐링센터를 세우겠다"며 "사재를 헐어서라도 회령진성에 12척의 배를 복원해 역사관광 명소를 만든 뒤 안보·자원봉사재단을 설립해 나라를 위한 참다운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밝혔다.이유가 의미심장하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이 망가진 배 12척을 300여 명의 목수를 동원해 수리한 뒤 왜군의 침략으로 위기에 내몰린 민족과 나라를 구했듯이, 장흥 회령진성에서 안보정신으로 무장한 자원봉사자를 육성해 북핵과 외세 등으로 전쟁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을 지켜내겠다"는 것이다. 왜침에 대비한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이 떠올랐다.최근 홍 회장의 행보는 자총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탄핵정국을 통해 '태극기 부대'로 낙인찍힌 낡고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참다운 안보단체로서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소신에 따른 행보다. 지난해 자총 안산시지회장 시절엔 일부 회원들이 촛불집회에 맞서 서울 태극기 집회에 나가자고 주장하자 "자유총연맹은 순수 안보단체이지 특정 계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단체가 아니다"라고 반대했다. 내부의 눈총과 외부의 신선한 평가가 엇갈렸다.자총 경기지부 회장 취임 이후에도 홍 회장의 자총 혁신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지난 8월 한국자유총연맹 경기도지부 제11대 회장 취임식에서 김구 선생의 "독립된 내 나라의 문지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