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축공사 95% 진행 신축건물 유지·관리… 내년 30주년 행사준비가 목표
최첨단 소음방지·소화시설에 50㎾ 태양광 발전 설비 다른 나라 부러움 사
세종기지 주변은 온난화 '미미' 기온·강수량 등 상시 관측·자료 분석 중
팀워크 위해 운동 프로그램인 'S리그'와 분야별 강의 '아카데미' 등 실시

내년 남극 세종과학기지 30주년을 앞두고, 기지 연구동과 연구원 숙소를 대폭 증축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해 12월 세종기지에 파견돼 활동기간 절반가량이 지나고 있는 우리나라 월동대의 임무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이번 월동대 파견은 1988년 2월 이후로 꼭 30번째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남극 세종과학기지입니다. 잘 들리십니까."지난 16일 오전 10시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극지연구소 극지종합상황실. 대형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김성중(52) 세종과학기지 제30차 월동대장이 인사말을 건넸다.
한반도와 세종기지는 시차가 딱 12시간이다. 남극 현지시간으로는 오후 10시, 인천에서 1만7천200㎞ 떨어진 지구의 남쪽 끝에 있는 김성중 월동대장과 극지연구소 화상통화시스템으로 연결됐다. 통화 연결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세종기지가 있는 서남극 최북단의 킹조지섬은 한반도와의 시차만큼이나 계절도 정반대다. 한반도의 겨울철에 세종기지는 가장 활동하기 좋은 여름철이고, 한반도에 푹푹 찌는 불볕더위가 찾아온 최근에는 세종기지가 한겨울이다.
세종기지의 겨울은 해가 뜨는 시간이 하루에 4~6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김성중 대장은 "남극의 겨울은 추운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고, 태풍 수준의 저기압으로 며칠씩 강풍이 불고 계속 폭설이 내린다"며 "지난주까진 블리자드(남극에서 일어나는 거세고 찬 바람을 동반한 눈보라 현상)로 고생했는데 다행히 오늘(인터뷰 당일)은 영하 5℃ 정도로 날씨가 많이 풀렸다"고 말했다.
남극 생활은 혹독하기 그지없지만, 아름다운 순간들도 선사하곤 한다. 여름철에는 기지 주변에 펭귄, 물개, 고래 같은 다양한 동물들이 몰려다닌다.
기지 인근 바다인 마리아 소만에서 고래 떼가 물을 뿜으면서 빙하와 어울려 헤엄치는 평화로운 광경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은하수가 펼쳐진 밤하늘도 남극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세종기지에는 김성중 대장을 포함해 현재 17명의 월동대원이 머물고 있다. 남극의 여름철인 올 초까지 하계연구대와 기지 증축공사팀이 기지에 있었지만, 해가 거의 없는 겨울철에 접어들자 지난 4월 철수했다. 17명뿐인 월동대원이 하루 대부분을 실내에서 보내야 한다. 사실상 '얼음감옥'에 갇힌 셈이다.
김성중 월동대장은 극지연구소 극지기후과학연구부 책임연구원으로 기후변화를 연구해온 전문가다. 하계연구대 소속으로 남극의 여름철 한 달 정도 세종기지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1년가량을 남극에 머무는 월동대는 처음이다.
그는 "현재 95% 진행된 세종기지 증축공사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신축건물을 유지·관리하고, 내년 세종기지 3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게 이번 월동대의 가장 큰 목표"라며 "세종기지 증축은 다음 여름철인 올해 말쯤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1988년 준공한 세종기지는 그동안의 유지·보수에도 불구하고 부식이 극심해 건물 내구성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소음과 진동에도 취약하다고 한다.
정부는 세종기지 하계연구동 2곳과 하계숙소동 2곳을 철거하고 2개의 건물로 통합하는 기지 증축을 결정해 지난해 10월 착공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세종기지 연구공간은 기존 대비 약 80% 넓어질 전망이다.
김성중 대장은 "새 건물은 외벽 단열 방식, 방과 방 사이 소음방지시설, 소화시설이 최첨단이고, 특히 새로 도입하는 50㎾ 규모 태양광 발전 설비는 인근 다른 나라 과학기지에 없다"며 "인근 다른 나라 기지 월동대원들이 최근 견학했는데 반응이 무척 뜨거웠다"고 설명했다.

기지 증축공사로 바쁜 와중에도 세종기지 제30차 월동대는 지질·생물·고층대기(우주)·대기·기상·해양분야에서 다양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리아 소만의 빙벽이 계속 무너지고 있는데, 빙벽이 얼마나 빨리 녹아 무너지는지 관측하고 있다. 극지는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를 가장 빨리 느낄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빙벽 또는 빙하의 후퇴를 파악하는 게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연구다.
김성중 대장은 "남극지역은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기존 논문에서 많이 밝히고 있는데, 세종기지 주변은 기온이 크게 상승하지 않고 있다"며 "원인 파악을 위해 대기의 기온, 풍속, 풍향, 기압, 강수량 등을 상시 관측하고, 관측자료를 분석 중"이라고 했다.
김성중 월동대장은 대원 간 팀워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세종기지 월동대원 17명은 분야별 핵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최정예 전문가들이다. 각각의 대원은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기능을 맡아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팀워크가 무너지거나 한 명이라도 건강이 좋지 않아 임무 수행이 안 되면, 나머지 대원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월동대의 화합을 다지고, 대원들의 건강을 꼼꼼히 챙기는 것은 월동대장의 주요 임무이기도 하다. 김 대장은 인터뷰 내내 대원들을 한 명씩 소개하며 맡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김성중 대장은 이른바 'S리그'(세종리그)라는 자체 프로그램을 만들어 족구, 배드민턴, 윷놀이, 장기, 컴퓨터게임 등 5종목을 두고 매주 화요일 오후에 팀별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연말에 최종 우승팀을 정한다고 해서 '리그'라는 명칭을 붙였다는 게 김성중 대장 얘기다. 해가 있는 낮에는 대원끼리 주변 트레킹이나 눈썰매를 즐긴다고 한다.
대원 17명 모두가 각 분야별 전문가이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각자의 분야를 강의하는 '세종아카데미'도 열고 있다. 주변 기지 대원과의 소통을 위해 영어가 서투른 대원에게는 김성중 대장이 직접 일주일에 2번씩 영어강의도 한다.
김성중 대장은 "이달 21일에는 절기상 남극에서 가장 겨울이 긴 날이라는 '남극 동지(Midwinter's Day)' 행사가 인근 칠레 공군기지 주최로 열리는데, 주변 기지 대원들이 자국의 전통과 문화를 소개하며 친목을 다지는 연중 가장 큰 행사"라며 "우리 대원들도 한복을 입고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 중"이라고 말했다.

세종기지 대원들의 활동과 일상은 대원들이 매달 직접 제작해 극지연구소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웹진 '눈나라 얼음나라'에서 볼 수 있다.
최근의 지구 온난화는 45억년에 달하는 지구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의 기후변화 현상이라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이 같은 숙제를 인류가 공동으로 풀어가기 위해 우리나라도 극지연구에 동참하고 있다는 김성중 대장의 자부심이 컸다.
김성중 대장은 "극지연구소로 복귀하면 남극에서 직접 관찰한 기후변화 정보를 활용해 더욱 깊이 있게 연구할 계획"이라며 "현재 극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후변화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김성중 대장은?
▲1965년 충남 계룡시 출생
▲충남대학교 해양학과 졸업
▲미국 텍사스A&M대학교 해양물리학 석사
▲미국 텍사스A&M대학교 해양물리학 박사
▲2002년 캐나다 기후모형연구소 박사후 연구원
▲2003년 미국 듀크대학교 전임연구원
▲2008년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2014년 극지연구소 극지기후변화 연구부장
▲2016년~현재 남극 세종과학기지 월동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