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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
미리 공부하겠다는 ‘선행학습’
법으로 규제할 대상인지…
가난한 학생 학습권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해결책은 현실 정확히 파악하고
학교 경쟁력 높이는게 급선무


일본 도쿄에 있는 히비야(日比谷)고교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200명 가까운 학생이 도쿄대에 입학하는 일본 최고의 공립학교였다. 그러던 히비야고가 1990년대에는 도쿄대 입학생이 1~2명, 때로는 없을 정도로 몰락했다. 일본 정부가 고교 평준화정책 차원에서 고교 입학권역을 대폭 축소했기 때문이다. 전국의 학생들이 히비야고에 지원할 수 있었지만, 고교 지원구역을 매우 작게 쪼개면서, 히비야고에 입학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대폭 줄었다. 이런 현상은 다른 공립고에서도 똑같이 발생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학부모들 사이에 “공립고에 보내면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다”는 공립고 불신감이 확산되면서, 사립고를 찾기 시작했다. 한국의 사립고는 공립고나 다름없지만, 일본 사립고는 매우 자율적인 대신 학비가 매우 비싸다. 공립고는 연간 100만원대, 사립고는 연간 2천만원대다. 그럼에도 무리를 해서라도, 사립고를 찾는 학부모들이 늘었고, 명문대에 입학하는 사립고 학생들도 부쩍 증가했다. ‘부모의 경제력=좋은 대학 입학’이라는 공식이 생겼다. 도쿄대 입학생 학부모의 경제력도 높아졌다. 지방자치단체들이 2000년대 들어 공립고 살리기에 나섰지만, 이미 부모 경제력에 의한 학력격차가 사회문제가 되었다. ‘부모 경제력-> 학력격차-> 빈부격차 확대’를 우려하는 ‘교육격차 사회’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히비야고 사례는 사회현실을 무시한 정책은 오히려 해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시장 논리와 맞지 않으면 시장은 반드시 보복한다. 미국에서 1920년대 시행되었던 금주법도 그랬다. 밀주가 성행하면서 범죄가 늘어나고, 마피아 조직만 살찌웠다.

갈수록 늘어나는 재수생이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는 사교육을 줄이고, 학생의 학업부담을 경감한다는 취지에서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난이도를 낮춰왔다. 그런데 ‘물수능’이 될 정도로 문제가 너무 쉽다 보니, 주요 과목에서 한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떨어져 지원가능한 대학이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자 아쉬움으로 처음부터 재수하거나, 대학입학 후 휴학하고 재수하는 ‘반수생’이 급증했다. 안민석 의원이 최근 공개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53개 대학 신입생 29만여명 중 5만여명이 입학 후 휴학이나 자퇴했다. 대부분 ‘반수생’이라고 한다. 이들이 낸 등록금만 500억원에 이른다. 재수학원 비용과 시간까지 감안하면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다. 그래도 시험문제가 쉬울수록, 특히 객관식에서는 풀어본 경험이 많은 사람이 유리하기 때문에 재수생은 늘고 있다. 정책 취지와는 달리, 고교 때는 사교육을 받을 수 있고, 졸업 후에는 재수나 반수를 할 수 있는 경제적 뒷받침이 있는 학생이 유리한 입시정책인 것이다.

정부가 지난해 만든 ‘선행교육 규제 특별법’도 학교의 선행학습만 금지하고, 학원은 풀어놓으니 오히려 학원만 웃고 있다. 교육부 조사결과 지난해 학생당 사교육비는 월평균 24만2천원으로 2013년보다 늘었다. 값싼 방과후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하지 못하자, 학원을 찾는 학생이 늘고, 학부모 부담은 더 커졌다. 가정형편상 학원을 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선행학습을 할 곳을 잃어, 학교에서는 걱정과 불만이 많았다. 교육부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올 3월 ‘방과후 교실 선행학습 허용’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이 법은 시행 전부터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받았다. 미리 공부하겠다는 것이 꼭 법으로 규제해야 하는 대상인지,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못하고 사교육도 받을 수 없는 가난한 학생의 학습권은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우리사회에서 교육격차 문제가 더욱 커지는 것은 아닌지도 우려된다. 해결책은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제도의 기본취지에 충실한 데 있다. 입시의 기본취지는 학생 선발에 있고, 그것은 변별력에서 나온다. 그래야 시험의 신뢰도 생긴다. 학교의 기본취지는 학습에 있다. 학교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다. 학교만 다녀도 잘 배운다면, 왜 학원에 가겠는가. 잘 가르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교육격차를 줄이는 길이다.

/오대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