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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태어나 이야기 속에서 살다가 이야기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가족 간의 정담, 연인들 사이의 밀어, '태양의 후예' 같은 드라마, 뉴스, 다큐, 게임, 강의, 소설 등 모두 다 이야기다. 우리는 이야기하는 인간 곧 호모 나라토아르(Homo Narratoire)다.

그런데 냉수도 차례가 있듯 이야기에도 순서와 공식(플롯과 유형)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와 장르판타지에도 이 같은 이야기 공식이 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1904~1987)은 모험과 영웅 이야기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서사구조를 밝혀내고 이를 명쾌하게 정리한 바 있다. 모두 12단계로 이루어진 '영웅의 여정' 또는 모노미스(monomyth)라고 부르는 이야기 공식이 그것이다.

① 평범한 일상의 세계가 그려진다. ② 모험에 대한 소명: 갑자기 일상의 균형이 깨지고 모험이 불가피해진다. ③ 주인공(영웅)이 소명을 부인하고 거부한다(소명에 대한 거절). ④ 선각자를 만난다. 선각자는 영웅이 소명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하거나 일깨워준다. ⑤ 영웅이 모험과 운명을 수용하고 새로운 세계에 진입한다. ⑥ 모험의 세계에 진입하고 적이 누구인지 친구(동맹자)가 누구인지 분명해지며 영웅의 자질에 대한 검증이 일어난다. 어머니의 상을 지닌 여신을 만나거나 주인공을 시험하고 판단하는 아버지의 형상(역할)을 지닌 캐릭터를 만난다. ⑦ 영웅이 특별한 경험과 능력을 쌓고 수단(무기, 수단)을 얻는 '동굴로의 접근(모험의 세계로 진입)'을 한다. ⑧ 모험의 완수를 위한 시련(장애)을 만나 맞서 싸운다. ⑨ 시련(모험)을 이겨내고 보상을 얻는다. ⑩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귀환하는 단계다. ⑪ 귀향하는 길에 부활한 적 또는 장애와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⑫ 모험을 통해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숙해져 집으로 돌아오는, 불로불사의 귀환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세상의 균형이 회복되고, 주인공은 진짜 영웅이 된다.

모든 영웅담과 장르판타지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가 이 같은 이야기 공식이 동일하게 전개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를 따른다.

집단으로 파티를 이루어 퀘스트와 미션을 수행하는 모험형 장르판타지와 게임 그리고 마블이나 DC코믹스, 대형 블록버스터들에 '영웅의 여정'이란 공식을 대입해보면, 대개 이 공식의 반복과 변주임을 확인할 수 있다.

무한 경쟁이 일상화하고 스토리와 스토리텔링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야기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잘 활용하며, 잘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