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고급승용차 놓고 사진 찍어
여러 직함 넣은 명함 보이면
'거대한' 사람이라고 모두 믿어
마치 크게 보이는 붕어의
아름다운 흰 지느러미처럼…
실상은 작디 작은 모습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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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시인
아름다운 것들을 꼽아본다. 어느 먼 해안의 아침 햇무리에 반짝이는 이국적인 호텔, 열대의 빨간 꽃들이 가득하던, 그 향기가 진동하던 남미의 어느 나라, 아름다운 동해안의 바위섬, 새벽에 바라보던 그곳의 아침 햇무리, 멀리서 온, 음악소리가 울리는 크리스마스 카드, 그러다 왜 나는 먼 것들만 아름답게 생각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본다. '너의 앞에 아름다운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유리병 가득 담긴 저 매실의 연초록빛 몸매, 그 택시기사, 오갈 데 없는 장애인 여자를 사랑하는, 그 여자에게 무엇인가 사갈 때 무엇보다 즐겁다는 택시 운전사, 신부님댁의 작은 문 위에 늘어진 능소화, 수련이 가득 핀 그 연못, 빨간 열매 꽃을 단 먼나무, 황혼에 가슴을 잔뜩 오므리고 오두마니 서 있던 버스 정거장, 노오란, 노오란 콩나물, 누구의 머리인가를 가리다가 찢어져 버린 우산, 환히 불이 켜져 있는 손전등, 그러다 나는 나의 주변을 보기 시작한다. 늘 내가 무엇인가를 써주기를 기다리는 종이들, 켜주기를 기다리는 컴퓨터, 알람시계, 저녁이면 나의 지붕을 향해 날아드는 새, 아마 거기 둥지가 있는 모양이지, 나의 벽, 나의 마루, 그러다 거실 탁자 위에 놓인 볼록 어항을 바라본다. 한 마리는 죽어버리고 두 마리의 붕어가 열심히 물을 헤치고 있다. 그것들은 마치 물에 길이라도 있는 듯이 물 속을 날아다닌다. 그렇게 확신 있게 헤엄칠 수가 있을까. 붕어는 정말 크게 보인다. 하얀 지느러미가 면사포같이 길게 끌린다. 오물오물 물을 두드려보는 듯한 주둥이도 볼록 유리에 비쳐 아름답게 확대 되더니 뒤쪽으로 돌아가자 아주 작아진다. 붕어는 커질 때는 마치 거인국에서 오기라도 한 듯, 거대해진다. 또는 장자의 물고기 곤(鯤)이 변하여 된 삼천리 날개새 붕(鵬)새?

/ 北冥有魚. 其名爲鯤. 不知其千里也 化而爲鳥,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之雲, 是鳥也, 海運則將徒於南冥. 南冥者. 天池也 (북녘바다에 물고기가 있다.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몇천리나 되는 지 모른다. 변해서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이라 한다. 붕의 등넓이는 몇천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힘차게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 가득히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기운이 움직여 대풍이 일 때 남쪽 바다로 날아가려 한다. 남쪽 바다란 곧 천지이다) /

장자를 생각타가 나는 나를 볼록 어항에 넣어본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나는 나를 너무 볼록어항에 자주 넣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나는 누구인가 앞에서 글을 아주 잘 쓰는 듯이 굴었을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나를 과시했을 것이다, 특히 학생들 앞에서는 얼마나 잘난 척했을까. 그 어떤 광고에서처럼 '너희들이 이런 걸 알아?' 하는 것으로 보였겠지. 다행히도 가끔이었지만, 강연 할 때는 얼마나 많이 아는 척, 확신에 차서 말했을까? 유명한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서 나도 모르게 누구인가에게 심한 무안을 주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무시했을 것이다…' 아, 그것들을 어쩌나… 하다가 뉴스를 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거금의 횡령, 사기, 뇌물, 말대꾸한다고, 무시한다고 일어난 살인사건, 자기 자동차를 추월했다고 일어난 보복성 교통사고, 그런데, 오늘은 참 재미있는 기사가 있다. '그 관료'가 일을 잘 처리해줄 줄 미리 짐작하고 수억원을 주었으나 그는 결국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뇌물을 준 사람은 물론 분이 나서 고소했고 검찰은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모두 사건의 속을 조사해보면 지나친 자기 과시에서 비롯된 것들임이 분명해진다.

언젠가 나는 하숙하는 '고급하숙' 이층집 앞에 렌트한 고급 승용차(연식이 아주 오래되었던 것 같다)를 세워놓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는 그 사진을 대여섯 개도 넘는 직함을 나열한 명함과 함께 고객이 될 사람 앞에 내놓는다고 한다. 그러면 모두 믿는다고 한다. 순간 그는 '거대한' 사람이 된다. 마치 어느 순간 크게 보이는 붕어의 아름다운 흰 지느러미처럼. 그 아름다운 커단 지느러미가 그 붕어의 본 지느러미의 모습은 아닌데 말이다. 그것의 물을 갈아줄 때 그것은 얼마나 작디 작은가, 그것이 본모습인 것을.

/강은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