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1908~1953)는 한국근대문학사가 낳은 최고의 평론가다. 임화가 빠진 한국근대문학비평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는 평론가일 뿐 아니라 다재다능한 예술인이었다.

무려 842쪽에 이르는 평론집 '문학의 논리'(1940)를 비롯해서 '현해탄'(1938) · '찬가'(1947) · '회상시집'(1947) 등의 시집을 펴낸 전위적 서정 시인이었으며, '상록수'(1935)의 심훈(1901~1936)과 함께 당대 최고의 '얼짱' 문인으로 유명했다.

인물이 너무 출중하여 '혼가' · '유랑' 등의 영화에 출연하여 주연을 맡기도 했고, 독일 표현주의 영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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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유명한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1927)에 대한 영화평론도 썼다.

또 1935~1940년에 걸쳐 '신문학사'를 집필한 문학사가였고, 카프(KAPF)의 서기장을 역임했으며, 해방공간에서는 '조선문학가동맹' 출범을 주도했다. 1947년 남노당계 인사들과 함께 월북했으나 1953년 8월 6일 미국과 내통한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후 남북한 문단에서 배척받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그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조선의 신문학은 서양문학이라는 이른바 그의 이식문학론은 아직도 한국문학연구의 쟁점으로 남아있다.

임화의 이식문학론을 한국근대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속류사회학으로 볼 것이 아니라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가 투영된 방법론적 사유로 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화려한 문학 활동과 비극적인 그의 삶은 일본 추리소설의 소재가 된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사회적 차별을 딛고 일본 최고의 사회파 추리소설가가 된 마츠모토 세이쵸(1909~1992)의 '북의 시인'(1974)이 바로 그것이다.

마츠모토 세이쵸는 추리소설가면서도 '어떤 고쿠라 일기전'(1951)으로 제28회 아쿠다가와상(賞)을 수상했다. 그는 트릭과 반전 같은 상투화한 추리소설의 틀에서 벗어나 사회 현상의 이면을 탐색하면서 범죄의 동기를 찾아내는 '와이더니트(whydunit)'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북의 시인'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1987년으로 '북의 시인 임화'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작품은 1953년 8월 3일 북한 최고재판소의 특별군사법정의 판결문에 의거, 임화가 미군정 스파이였다는 가설을 다루고 있다.

미군정 방첩대(CIC)가 폐결핵으로 고생하는 임화에게 신약(페니실린)을 미끼로 접근하여 남노당과 조선공산당 운동에 대한 정보를 얻어낸다는 내용이다.

'북의 시인 임화'(1987)는 광주의 벽돌공장 노동자로 숨어 지내던 박헌영, 고향에서 헌책을 하던 한설야의 이야기가 언급되는 등 디테일도 풍부한 작품이다. 또 추리소설 같은 장르문학조차 한국문학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정론성과 근대성의 문제에서 비켜갈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