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석 교사<YONHAP NO-3422>
세월호 미수습자 9명 중 한 명인 단원고 고창석 체육 교사의 유해가 3년 만에 유족 곁으로 돌아왔다. 사진은 생전 고창석 교사 모습. /유족 제공
세월호 미수습자 9명 중 단원고 고창석 교사가 참사 1천127일 만에 돌아왔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지난 5일 오전 11시 36분께 침몰 해역에서 수습한 뼛조각 1점이 고 교사로 확인됐다고 17일 밝혔다. 유골이 발견됐던 곳은 유실 방지를 위해 쳐놓은 펜스구역 내로, 침몰한 세월호 선미 객실과 맞닿아 특별 수색이 이뤄진 곳이다.

고 교사의 유해가 확인되자 3년 만에 남편을 되찾은 유족은 "한 조각의 뼈로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고 교사는 대학생 때 인명 구조 아르바이트를 했을 정도로 수영을 잘했다. 긴박한 상황이 발생할 때면 항상 몸이 먼저 앞섰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의 순간에도 자신보다 제자들이 먼저였다.

학생들을 인솔하던 고창석·양승진(미수습자) 교사들의 숙소는 비교적 탈출이 쉬운 5층 로비 옆이었지만, 4층 객실 곳곳을 다니며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던 모습이 목격됐다. 침몰 순간에도 학생들의 탈출을 돕느라 본인은 정작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 유족이자 고 교사의 제자였던 오천이 형 권오현(30)씨는 "팽목항에서 바다를 향해 절하면서 그렇게 선생님을 불렀는데, 왜 이제야 오셨느냐"며 "긴박한 상황에도 본인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제자들 곁을 지킨 선생님께 유족이자 제자로서 감사하다는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침통해 했다.

최고의 교사였던 그는 또 아내에게는 다정하고, 두 아들과는 틈틈이 여행을 다니는 등 가정에도 충실했다. 그의 아내는 "언제나 자상한 남편이었고 아이들에겐 최고의 아버지였다"며 "지난 스승의 날은 유족들에게 너무 가슴 아픈 날이었다"고 남편을 추억했다.

세월호 참사 후 아내는 사고 당일 아침 남편이 보낸 "애들을 돌보느라 고생했다.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추억을 바다에 묻고 3년 넘게 버텨왔다.

한편 유실 방지펜스 구역에서 발견된 유골이 고 교사로 확인됐다는 소식을 접한 나머지 미수습자 가족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족들은 "(세월호 안이 아닌) 이곳에서 나오면 안되는 것"이라며 "유실되는 일만은 없기를 바랐다"고 침통해 했다.

/신선미기자 ssunm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