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수·이태준·한설야·박태원 등 주요 작가들이 대거 납·월북하고 현진건과 김동인마저 타개한 작가 부재의 상황에서 오는 역사소설의 공동화를 막아냈다. 이광수 '단종애사'(1928), 김동인 '젊은 그들'(1930)과 '운현궁의 봄'(1933), 박종화 '금삼의 피'(1936)와 '여인천하'(1959) 등 한국 역사소설의 주류는 궁중 비화요, 왕조사극들이었다.
역사를 소재로 하는 역사소설의 최대 난관은 사실과 허구의 충돌―바로 역사적 사실의 간섭이다.
특히 신문연재 역사소설들의 독자 및 대중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궁중여인의 쟁총(爭寵), 군왕의 성적 편력, 개인에 과도한 영웅화, 정절과 충효절의 같은 유교적 덕목을 강조하는 보수주의, 왕조사극 임에도 정치는 없고 신파성만 과도하게 강조되는 역작용을 만들어냄으로써 역사가 실종되고 허구가 사실을 압도하는 주객전도 현상을 낳았다.
이처럼 장르문학으로서의 역사소설은 사료적 사실과 허구 사이의 길항이라는 항상적 갈등을 내장하고 있다.
월탄 박종화는 연산군을 다룬 '금삼의 피', 병자호란을 소재로 한 '대춘부'(1937),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랑을 그린 '다정불심'(1940),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와 양요(洋擾)의 퇴치를 형상화한 '전야'(1940), 대원군의 집권·경술국치·삼일운동 등 민족의 수난과 저항을 그린 '민족'(1945), 중종시대 궁중의 암투를 배경으로 한 '여인천하' 등 일련의 작품으로 한국 역사소설의 대표작가가 됐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백조의 동인'이나 '신경향파'에서의 활동이 아니라 이런 역사소설들 때문이었다.
월탄의 출세작은 단연 '금삼의 피'인데, 폭군 연산군의 심리적 파탄 과정을 그렸다.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의 전모를 파악하고 난 이후 갑자사화라는 피의 복수극을 벌이는 이야기라든지 후궁들 간의 암투와 음모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식민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월탄의 역사소설은 김동인처럼 왕실의 부정적인 모습을 흥미위주로 그려냄으로써 일제의 식민지문화통치에 상응하는 것이었다는 비판과 함께 그래도 극도의 억압적인 상황에서 민족의 역사와 민족정신을 환기하는 공적이 있다는 견해가 팽팽하게 맞선다.
월탄은 중인(中人) 명문가 출신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반가와 중인의 세계를 탁월하게 재현해낼 수 있었다. 또 한국문화재 수호자 간송 전형필(1906~1962)과는 사촌지간이었다.
친구 빙허 현진건이 타계하자 그의 외동딸을 거두어 며느리로 삼는 등 각별한 우정을 보여주었으며 매우 훌륭한 인품을 가진 큰 작가였다. 그의 품안에서는 대중문학과 본격문학도 함께 공존하고 행복한 조화를 이룰 수가 있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