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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정비석(1911~1991)의 '자유부인'은 뜨거운 소설이었다. 1954년 1월 1일부터 그해 8월 6일까지 '서울신문'에 총215회에 걸쳐 연재되는 동안 독자대중들은 열광했고, 당대 지식인들은 분노했다. 또 때 아닌 '자유부인 논쟁'으로 사회가 후끈 달아올랐다.

황산덕 교수는 '자유부인'은 "야비한 인기욕에만 사로잡히어 저속 유치한 에로작문을 희롱하는 문화의 적이요, 문화의 파괴자요,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라며 맹공을 가했다. 여기에 변호사 홍순화, 평론가 백철, 작가 정비석 등이 가세하여 한 달 내내 지면을 달궜다.

기혼여성의 일탈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부인'은 멜로다. 한국전쟁 직후 미군정과 미군을 통해 흘러들어온 미국문화가 대중의 욕망을 일깨우며, 재래의 가치와 격렬하게 부딪치던 즈음이었다.

'자유부인'은 그런 시대풍조를 일탈의 기제로 활용하면서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 갇혀있던 여성의 '외출'을 다룸으로써 사회가 술렁거렸고, 엘리트 지식인들은 분개했다.

주인공 오선영은 대학 동창 모임인 '화교회'에 참석하기 위해 "화장"을 하고, 새삼 잊고 있던 자신의 매력과 욕망을 발견한다. 그녀는 신춘호 · 백광진 · 한태석 등 남성인물들과 댄스홀에서 교제해가면서 사업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간다.

한글학자이자 국문과 교수인 남편 장태연도 미군부대(!)의 타이피스트인 박은미에게 잠시 매혹되지만, 이내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고 남편이자 가장으로 복귀한다.

식민지와 전쟁 등 국가적 고비를 넘긴 신생 공화국은 새로운 시대의 가치인 자유와 민주를 자각하고 사회진출을 시도한 팜므 파탈의 매력과 개성을 감당하지 못한 채 민족과 부도(婦道) 같은 기존의 가치와 도덕률을 앞세워 오선영의 발걸음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세우는 완고한 젠더의 정치학을 보여준다.

폴리아모리(poly-amory)라는 다자연애가 일상의 토픽으로 등장하고 온갖 막장드라마가 전파를 타는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자유부인'이라는 우스꽝스런 제목을 지닌 이 낡은 노벨은 지루하고 순진한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집을 뛰쳐나온 '인형의 집'의 노라는 충격적인 문학적 주제였으나 큰 뉘우침과 함께 가정으로 돌아가는 '자유부인' 오선영의 '외출'은 그저 하나의 해프닝으로 막을 내린 멜로가 됐다.

그러나 '자유부인'은 미국문화가 동반한 새로운 가치와 전통윤리 사이의 갈등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동시대 우리 사회의 통념과 인식을 탁월하게 재현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외출마저 탈주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물거품 같은 욕망을 자극하는 물신주의사회에 커다란 축복이 있을진저!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