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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평가위해 열심히 일하고
사소한 차이 이해해 주는 사람들
나는 가끔 지치고 힘들때
그런 '프로사부작러'들을 찾는다
그들의 단단한 일상 유지하는
기운 확인하고 그 힘을 받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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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문화평론가
사부작사부작.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계속 가볍게 행동하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다. TV에서는 소주병 트리나 대왕 달고나 등을 만들고 드론을 날리며 혼자서도 집에서 잘 노는 김건모를 '프로 사부작러'라고 하지만 내 주위에는 좀 다른 의미의 '프로 사부작러'들이 많다. 크게 힘을 쓰지 않으면서 가볍게 걷는다는 뜻으로 '사부작사부작'을 사용하는 산사람들의 문법과도 비슷하다. 나에게 '프로 사부작러'는 아무도 모를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만은 아는 그 작은 '다름'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해야 하는 일의 사이즈와 상관없이 내가 뭔가를 더 하더라도 전체의 완성도를 높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 말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어깨에 힘 빼고 긴장하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무엇인가를 '사부작사부작' 자신의 페이스대로 계속해 나간다는 점이다. 오늘은 어디에나 있지만,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게 마련인 '프로 사부작러'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코스모스가 한껏 핀 배다리의 한 공터에 천막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책을 주제로 한 난장이 펼쳐진 이곳에 사람들이 속속 찾아와 사진을 찍고, 책을 넘겨보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구경하며 가을을 마음껏 즐긴다. 여유로운 사람들 틈 사이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분주한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행사 기획자. 어차피 천막도 다 세워졌고, 행사 세팅 다 끝난 거 같은데 왜 저렇게 바쁜가 싶지만 그야말로 '속 모르는 소리'다. 나도 행사장에서 기획자들을 만날 때마다 "어차피 앉아서 보는 게 더 편한데 왜 서 있는 걸까?" 늘 궁금했었다.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규모와 상관없이 어떤 행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 긴장되는 마음과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를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잠깐이라도 앉으라" 고 이야기하지만 소용없다. 그냥 서 있는 것 같아도 머릿속은 체크해야 할 리스트로 바쁘거나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거나 더 필요한 건 없는지 분석하고 스캔 중이라는 걸… 앉아 있든 서 있든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런 사소함이 바로 '다름'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동네에 식당이 하나 있다. 직원 없이 사장 언니 혼자 운영하는 작은 곳이다. 일본식 돈까스를 주로 파는데 '크림카레우동'이라는 특별한 추천 메뉴가 생겼다. 손이 많이 가서 저녁에만 가능하고, 그마저도 바쁘면 못 해준단다. 들어보니 그럴 만하다. 카레를 기본으로 리코타 치즈를 직접 만들어 넣은 크림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식자재 마트에서 재료를 사와 뜯고 데우는 것이 표준인 대부분의 식당 맛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차이가 난다는 사실조차 모르지만, 아는 사람들은 안다. 양파를 그냥 볶았는지, 카라멜라이징하면서 오래 볶았는지… 귀찮아서 뭔가를 생략하면 귀신같이 맛이 변한 걸 알아채는 손님이 꼭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장님은 자신이 정한 기준을 엄격하게 지킨다. 손님과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귀찮을 뿐더러 비용도 많이 들지만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정 수준 이상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는 거다.

일의 종류는 다르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나누겠다는 마음만큼은 행사 내내 앉아 있지 못하고 서성이는 기획자들과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이윤을 남기겠다는 장삿속만으로는 오래 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사장 언니가 손님이 맛있게 먹고 간다고 인사할 때 만족하는 것처럼, 기획자 역시 함께한 사람들이 즐거웠다면 그걸로 족하다. 사장님은 "돈 안 되고 시간 많이 드는 일 전문"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 귀찮은 과정을 해내며 꾸준히 일정한 맛을 유지하는 음식을 내놓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의 평가를 통과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그 작고 사소한 차이를 알아봐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더 좋은 '사부작러'들의 일상을 응원하는 이유다.

가끔 지치고 힘들 때 나는 그래서 이 '프로 사부작러'들을 찾아간다. 그들의 단단한 일상과 그 일상을 유지하는 '사부작사부작'의 기운을 확인하고 힘을 받아 돌아오는 거다. 얼마 남지 않은 한 해, 주위에 있을 '프로 사부작러'들을 찾아보길 권하고 싶다. 당신의 한 해도 그들과 함께 '사부작사부작' 풍요로워질 테니까.

/정지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