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노후 모텔서 불, 1명 숨져

스프링클러 의무화 이전 건축

일용직·기초수급자 주로 이용

“정부가 지원해 설치 유도해야”

20일 오후 수원시내 한 모텔 전기 계량기앞에 먼지 쌓인 상자와 쓰레기들이 놓여 있어 화재가 우려되고 있다. 2025.5.20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20일 오후 수원시내 한 모텔 전기 계량기앞에 먼지 쌓인 상자와 쓰레기들이 놓여 있어 화재가 우려되고 있다. 2025.5.20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경기도 내 구도심에 이른바 ‘(한)달방’으로 운영되는 숙박업소 대부분이 초기화재를 진압하는 소화설비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어 화재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숙박업소의 경우 상당수가 노후화해 소화설비 설치 규제를 적용받지 않기 때문인데, 전문가들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일 오후 수원시 영화동 달방촌 인근에서 만난 박모(68)씨는 “라면을 끓여 먹다가 불을 낼 뻔한 적이 있다”며 보증금 없이 다달이 집세를 내는 달방에 거주했던 지난 기억을 꺼냈다.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해 그날 집세를 내고 돈이 조금 모이면 한 달 치 방세를 내는 방식으로 살았다던 그는 화재 위험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고 했다.

20일 오후 수원시내 한 모텔 외벽에 먼지 쌓인 콘센트와 전기선이 뒤엉켜 있어 화재 우려되고 있다. 2025.5.20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20일 오후 수원시내 한 모텔 외벽에 먼지 쌓인 콘센트와 전기선이 뒤엉켜 있어 화재 우려되고 있다. 2025.5.20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그는 “버너에 라면을 끓이다가 잠들었는데, 위 층에서 연기를 보고 뛰어 내려와 깨웠던 적이 있었다”며 “목돈이 없으니 도시가스와 (안전)설비가 갖춰진 곳으로 이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전 4시2분께 수원 영화동의 5층짜리 모텔 3층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화재 발생 세대에 거주하던 투숙객 1명이 숨지고 2명이 경상을 입었다. 해당 모텔은 매달 돈을 내고 거주하는 달방 운영 숙박업소로, 초기화재를 진압하는 스프링클러가 없어 피해를 키웠다. 숨진 투숙객은 매달 돈을 내는 방식으로 6개월가량 거주한 장기 투숙객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찾은 불이 난 모텔 주변에는 ‘달방 있다’는 안내문을 내건 숙박시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맞은편 건물에는 당일 일감을 구할 수 있는 인력사무소도 눈에 띄었다. 인근에서 달방을 운영하는 모텔 업주는 “형편이 되는대로 선불만 내면 하루, 5일방, 달방 등의 형태로 곧바로 살 수 있으니 일용직이나 기초수급자들이 많이 와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20일 오후 수원시내 한 모텔 외벽에 먼지 쌓인 콘센트와 전기선이 뒤엉켜 있어 화재 우려되고 있다. 2025.5.20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20일 오후 수원시내 한 모텔 외벽에 먼지 쌓인 콘센트와 전기선이 뒤엉켜 있어 화재 우려되고 있다. 2025.5.20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문제는 달방을 운영하는 숙박업소 대부분이 노후화돼 스프링클러 설치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1981년 11층 이상 숙박시설에 스프링클러를 의무 설치하도록 만들어진 관련 규정은 2018년 6층 이상 숙박시설, 2022년 12월 층수 관계없이 의무설치로 확대됐다. 그러나 소급적용되지 않는 탓에 달방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노후 모텔은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

실제 이번에 불이 난 모텔도 2003년 사용승인을 받았고, 인근 숙박업소 7곳도 모두 1970~2000년도에 사용승인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지난달 4일 평택시 서정동에서 불이 나 투숙객 1명이 다친 숙박업소도 1980년에 사용승인을 받아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와 관련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노후화된 건물도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소급적용하되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지방세나 화재보험료 등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설치를 유도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