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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언어를 떠난 문학은 없다. 언어는 존재의 집(das Hous des Seins), 역설의 집이다. 문학은 서사와 시적 진실을 언어를 통해 재현하려는 순간 곧 언어의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장벽을 언어로 극복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버린다.

또 문학의 가치는 (독자의)감동과 (전문가의)평가로 결정되므로 작가는 항상 새로운 서사 형식을 창안해야 하는 악순환과도 대결해야 한다.

가라타니 고진(1941~)이 말하는 '근대문학의 종언'은 단지 19세기적 문학이념과 문학관의 사망 선언이었지만, 디지털기기의 총아인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상황은 문학을 존재의 위기 속으로 몰아세운다.

근대의 문학은 공동체의 역사를 노래하는 제의 또는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언어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로 비약한다.

"새로운 중산층과 상류층에게 특별한 가치관을 제공하고" "공평무사한 이해를 가르치며" "국가적 자존감을 제공하는" "강력한 국민적 기능"을 가진 '상상의 공동체'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이자 "더이상 사회통합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종교를 대체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반면 비서구 지역에서는 식민화라는 서세동점 앞에서 민족정신과 민족어를 지키는 저항의 수단이었으며, 민중에게 자신들의 비참한 조건을 자각하게 하는 이념의 매개물이었고, 언로가 막히고 국가의 폭력이 횡행하는 검열의 압제 속에서는 은폐된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사회적 교사요, 역사서였다.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현대사회에서 문학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영화의 서사와 영상이 문학의 서사와 재현 능력을 압도하며, 소설이 전해주던 이야기와 재미는 스마트폰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장르문학은 이제 영화나 게임을 위한 원천콘텐츠로 떨어졌고, 독자들은 이제 '읽지' 않고 '보며' '넘기지' 않고 '화면을 밀며', '쓰지' 않고 '두드리거나' '친'다. 쓰거나 읽지 않는 新문맹의 시대가 온 것이다.

문학은 독자의 머리 위에서 내려와 "고독한 읽기"를 통한 성찰과 삶과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거나 언어적 한계에 도전함으로써 언어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언어예술의 보루로,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소수 활자중독자들의 지적 허영을 위무하면서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화제의 베스트셀러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2016)은 여성의 삶과 수난을 주제화한 문제작이나 30대 여성독자 옆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대의 이야기로, 작은 '속삭임'으로 존재한다.

문학은 그런 세대성과 언어를 탐구하는 언어예술로 보통의 문학들을 능가하는, 상상을 넘어서는 상상력으로 또 새로운 생각의 창조자로서라도 거듭 나야 한다. 이곳이 지금 장르문학이 살아야 할 현실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