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세 내림굿 6·25때 인천 월남
1972년 민속경연 '연기상' 주목
풍어제 계승·후학 양성에 앞장
'인간과 신이 벌이는 한판 잔치 굿. 굿은 나누는 것이다. 복을 나누고, 덕을 나누고, 먹을 것을 나눈다. 무당은 그 중심에서 이런 일들을 도와주는 존재다.'
지난 23일 향년 88세로 별세한 만신(萬神) 김금화 선생의 자서전 '만신 김금화'에서 무당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생전 제자들에게 "무당은 됨됨이가 중요하다. 남의 덕을 빌어주려면 내가 덕이 있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고 한다.
1931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2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난 김금화 선생은 12살 때 무병(巫病)을 앓은 후 17살에 큰무당이던 외할머니 김천일에게 내림굿을 받았다.
내림굿 이후 2년여간 동네 무당들을 따라다니며 굿 현장을 경험했고 혼자 대동굿을 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내림굿을 받던 날 외할머니는 김금화 선생에게 "만신이 된다는 것은 뭇사람들이 참지 못하는 고통을 숱하게 참아내는 것"이라고 말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1950년 6·25전쟁 때 월남한 그는 무속인 방수덕씨와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65년에 서울로 활동지를 옮겼다.
그는 1972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해 '해주장군굿놀이'로 개인 연기상을 받으며 민속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춤을 추며 어장의 풍어(豊魚)를 기원하는 '서해안 풍어제' 명맥을 김금화 선생이 계승해 지금도 매년 인천 소래포구와 연안부두에서는 서해안 풍어제인 배연신굿이 열리고 있다.
'사단법인 서해안풍어제보존회'를 이끌며 전통문화로서의 굿을 시민들에게 보급하는 사업에도 앞장서 왔다.
특히 그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인천 민예총에서 개최한 추모위령제에 참여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진혼굿을 펼쳤고, 2005년엔 후학 양성과 무속문화 전수를 위해 강화도에 '금화당'을 여는 등 인천에서 많은 활동을 이어왔다.
/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