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제물포 개항 이후 다양한 신문물이 인천을 통해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서구의 클래식과 대중음악도 인천을 통해 들어온 신문물 중의 하나다. 인천 최초의 대중가요이자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초기형태를 보여주는 '인천아리랑'이 대표적 사례다. 개화기 무렵 제물포 부둣가에 몰려들어 힘든 하역작업을 하며 고달픈 삶을 이어가던 우리 노동자들이 부르던 가요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인천을 통해 들어온 서구 음악은 점차 토착화되면서 한국 대중음악의 현대화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미군군수지원사령부(ASCOM)가 자리 잡은 부평지역에 대중음악 클럽이 번성하면서 1970년대 중반까지 우리 대중음악의 산실과 성장의 발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돌아가는 삼각지'로 유명한 가수 배호는 17세부터 인천 부평의 미8군 와인클럽에서 드럼연주를 시작했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른 가수 한명숙도 부평의 클럽에서 노래했다. 조용필이 꼽은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 김홍탁도 인천 출신으로 부평의 하우스 밴드에서 음악생활을 했다. 1970년대 '데블스'라는 그룹사운드를 이끈 김명길을 비롯한 국내 유명 밴드와 가수, 악단들이 부평의 미군기지 인근 클럽에서 공연을 펼쳤다. 1973년까지 '애스컴시티'로 불린 부평엔 엔시오, 로터리 등 23개의 클럽이 있었다. 이렇듯 인천은 해방 이전부터 1990년대까지 음악, 음악인, 음악시설 등 350여 개의 대중음악 자원을 보유해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설립추진 중인 한국대중음악자료원을 인천에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대중음악도시로서의 이러한 역사적 공간적 배경 때문이다. 인천연구원 최영화 연구위원이 지난 24일 발표한 '한국대중음악자료원 설립에 관한 기초연구'는 타당성의 논리적 근거를 확인함과 동시에 과제도 제시한다. 인천시가 각 지역별 대중음악 자원을 하나로 묶어 이를 종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계획을 제시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침 부평구에서는 지난 2016년 '부평 음악·융합도시 조성사업'이 문체부 공모에 선정돼 2020년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인천시 차원에서도 대중음악자원의 발굴과 콘텐츠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클래식이 아닌 대중음악을 주요자원으로 삼아 음악도시 조성을 추진하는 도시는 사실상 인천이 유일하다. 제대로 한번 꿰어봄직한 구슬들이다.
[사설]'한국대중음악자료원'이 인천에 설립돼야 할 이유
입력 2019-02-2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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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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