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교부서 분양 전권받은 道 '세부 계획' 수립
업종제한·저렴한 용지 '자급자족 도시' 성공
손학규 前 도지사 "첨단 기업들 판교로 모여"

하지만 당시 건설교통부는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수요예측과 달리 산업단지의 분양이 쉽지 않을 거라 판단했고, 슬그머니 경기도에 분양 전권을 떠넘겼다.
자의반 타의반, 경기도가 자연스럽게 판교 테크노밸리의 세부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입주자를 선정하는 등 전체의 기획을 하는데 주도권을 갖게 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결과적으로 판교를 나름 성공작으로 만들게 한 단초가 됐다.
경기도는 첨단지식산업단지에 걸맞게 IT(정보기술), BT(바이오), NT(나노기술), CT(문화산업) 등으로 엄격하게 업종을 제한했다. 대신 이들 기업에 조성원가 수준으로 용지를 값싸게 공급했다.
당시 책정된 토지공급가격은 3.3㎡당 평균 952만원대였는데, 강남 테헤란밸리 땅값에 절반도 안되는 수준에 불과했다.
2001년 기준 테헤란밸리의 임대료가 3.3㎡ 당 1천만원 수준이었던 것을 비교하면 얼마나 저렴하게 기업에 부지를 제공했는지 알 수 있다.

이른바 토지개발로 얻어지는 수익성보다 벤처기업 수요에 초점을 맞춘 것도 주효했다.
이를테면 일반연구와 연구지원용지(공공지원센터, 산학연 R&D센터)를 구분한 건 판교가 첫 사례인데, 연구를 지원하고 협력하는 공공기관과 금융서비스 등이 한 공간에 자리한다는 점은 연구소를 보유한 중견기업들 90% 이상이 판교를 선호한 이유 중 하나였다.
경기도는 첨단산업을 이끄는 대·중견기업의 수요를 맞춰주면서 지가 상승으로 차익을 얻으려는 시도는 원천 봉쇄했다.
'10년간 전매제한' 제도를 둬 제 3자에게 양도를 제한한 것. 더불어 20년간 판교 테크노밸리의 입주기업 업종을 제한하는 정책도 폈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판교테크노밸리는 조기분양과 입주에 성공했다.
이 과정을 주도했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현 바른미래당 대표)는"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들이 많아 당시 경쟁이 치열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부지조성공사가 완료된 후 1차 공급에 삼성테크윈, 넥슨, 안철수연구소, 엔씨소프트 등 내로라하는 국내 첨단산업의 대기업들이 경쟁에 나서 39개 중 29개 용지를 선정했다.
2차 용지엔 LIG넥스원, 차그룹, NHN 등 7개 기업, 3차 공급에선 삼성중공업, 삼양사, 한화 등이 입주했다.
그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당시 경인일보 기사를 통해 살펴보면 "NHN은 1차 공급에서 엔씨소프트와 동일한 필지에 신청했다 보기 좋게 낙방했고 2차에 네오위즈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재도전 결과, 어렵게 입주에 성공했다"고 설명됐다.

초기 판교 테크노밸리의 안정적 출발은 애초 목표였던 '자급자족 산업도시'의 모습을 갖추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판교 테크노밸리는 매년 놀라운 성장세를 선보였다. 판교 테크노밸리 입주기업의 매출액은 2013년 54조원을 시작으로 2014년 69조원, 2015년 70조원, 2016년 77조원, 2017년 79조원, 2018년 87조5천억원으로 급증했다.
손 전 지사는 "솔직히 판교 테크노밸리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것이라고는 당시 생각 못했다. 그만큼 기술을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 기업들의 목마름이 판교로 모였던 것"이라며 "입주 기업을 모집할 때부터 많은 서울 소재 기업들이 판교로 내려오길 원했다. 삼성, 현대 다음으로 한국 경제를 책임지는 것이 판교"라고 추켜세웠다.
/기획취재팀
■도움주신 분들
임창열 킨텍스 대표이사,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재율 前 경기도행정1부지사, 이상후 前 LH 부사장,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오세일 이너보틀 대표, 오보영 이트너스 이사, 엄정한 컴퍼니B 대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성남시, 성남산업진흥원, 판교박물관
■기획취재팀
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
사진: 임열수부장
영상 : 강승호기자, 박소연기자
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