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 화성행궁·명성황후 생가 '복원'
작년 오른손 일부 절단… 고생 겪기도
일본·미국등 젊은이들 방문 '큰 보람'
"대한민국 전통창호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외교관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수원 팔달구 북수동에서 47년째 '김순기 창호 전시관'을 운영 중인 김순기(77)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통창호 장인이다.
한옥의 창과 문을 만드는 소목장(小木匠)으로 지난 1996년 수원 화성행궁 창호를, 1997년 여주 명성황후 생가 창호를 복원했다.
그는 목재를 3년여간 건조한 뒤 정교하게 조각해 맞물리는 작업을 쉴 새 없이 반복해 창호를 완성한다.
14살 때 지인의 소개로 목수일을 시작했지만 29살이 될 때까지도 '결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정도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만 48세가 되던 1990년 화성 낙남헌 보수를 시작으로 경복궁 복원, 최규하 전 대통령 생가 창호 작업 등 굵직한 작업을 맡기 시작해 1995년 마침내 경기도 무형문화재 소목장 제14호로 지정된다.
김씨는 "유명세를 타서 각종 지상파 방송에 출연한 건 물론 모 은행 VIP가 됐을 정도로 돈 걱정이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6년 전인 2014년부터 작업 의뢰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는 1층 작업실에 간이 침대를 갖다 놓고 무작정 작업 의뢰를 기다리기 시작했지만 해가 지길 기다리는 게 일과가 될 정도로 발길은 뜸했다.
지난해 5월엔 작업 중 기계에 오른손 일부가 절단되는 사고까지 겪으며 마음의 병이 찾아왔다. 10월 무렵 작업실 건너편 간판 제작사 사장이 보다못해 김씨를 돕겠다고 나섰다. '인간문화재' 김씨를 소개하는 간판을 제작해 작업실 입구에 걸었다.
처음엔 자신을 인간문화재라고 광고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김씨였지만 행인 몇 사람이 간판을 보고 작업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자진해서 작업실 내부에도 자신을 소개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이런 그에게 최근 즐거운 일이 생겼다. 일본·미국 등 해외에서 온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창호 작품으로 가득한 자택을 구경시켜 주는 것이다.
그는 "외국 젊은이들이 '소슬 매화 꽃살문', '소슬 빗금강저 꽃살문' 같은 작품을 보고 '세상에, 문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느냐'면서 입을 못 다물더라"며 "우리나라의 전통 창호의 미(美)가 세계에 더욱 알려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여진기자 aftershoc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