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적 질서'가 체제운영원리
선거통해 권력의 정당성 상호인정
특정이익 추구땐 사회적반발 초래
복원시키려면 엄청난 희생 불가피

민주주의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일정한 절차에 따라 움직이는 '적과의 동침'이다. 화해불가능한 적도 있고, 적인지 친구인지 불명확한 대상도 있고, 이해를 같이 하는 친구도 있다. 그러한 관계가 항상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상황에 따라서 적이 친구로 될 수도 있고 친구가 적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 이러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황에서 가능하면 더 많은 친구를, 가능하면 더 적은 적을 두고 있을 때에 더 안전하고 더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적이 없는,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추구했던 실험들은 결국 국가체제 자체를 붕괴시키거나 국민들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렸다.
민주주의는 특정한 세력이 주장하는 선과 정의를 실현하는 체제가 아니다. 그러한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장단기적 목표들을 서로 합의해내고 실현하기 위한 형식적 규칙들이다. 적과의 갈등을 풀어내는 제도화의 방식이다. 잠을 자지 않고 살 수 없는 인간들이 안전하게 적과 동침하기 위해 만들어낸 제도의 묶음이다. 내가 생존하기 위해 적의 생존을 보장하는 제도인 것이다. 즉, 친구도 아니지만 적도 아닌 기묘한 사회관계의 양식이 민주주의로 서로 얽힌 것이다.
그 민주주의는 극단적인 갈등과 폭력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어낸다. 정기적인 선거를 통하여 권력을 위임하고, 그 권력의 정당성을 상호 인정한다. 위임의 내용과 한계, 그 절차 등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규정되지만 완벽하지 않다. 이 경우에 우리는 상식과 관행에 따라 법의 미비점을 보완한다. 역사적 선례와 과거의 지도자들은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 예기치 않게 법을 재해석하거나 사문화된 법률조항을 되살려내는 행위는 법논리상 옳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합의정신과 충돌한다.
일반적인 사회규범 역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제약조건이자 균열을 메우는 시멘트이다. 평등과 차별금지의 에토스는 그 어떤 가치나 이데올로기로도 유보될 수 없다. 유교적 권위주의적 질서는 사회에 짙게 드리워져 있지만, 신분과 계급의 질서를 덧씌우기는 어렵다. 기회의 균등과 결과의 평등이 갈등하고 있지만 공정성을 배반하는 행위에 분노한다. 자본주의가 낳는 사회적 양극화에는 분노하지만, 그렇다고 경쟁의 가치와 사적 소유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반드시 유교에 기반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생래적 가족주의적 가치관 역시 강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어떤 진보나 보수라도 이에 대항한다면 그 긍정적 가치를 실현하지도 못하고 무너지게 된다. 산업화와 민주화, 민족주의와 반외세 등의 가치도 어느 것 하나 양보하기 어렵다. 자유의 가치 역시 또다른 사회적 억압이 체제화된다면 국민 모두가 호출할 것이다.
이렇듯 민주주의는 여러 가지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 유산과 제약들을 담고 있다. 특정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하여, 특정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민주주의를 파산시킨다면, 그들이 추구했던 것들을 이루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또다시 복원시키기 위해 엄청난 희생과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인류의 집단지혜는 민주주의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어렵게 만들어낸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훼손시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