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이야기를 나누게 된 한 의료기관 종사자의 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병원들의 환자분류와 발열체크 등을 담당하는 인력을 병원들에 지원하겠다며 '방역인력 지원사업'을 추진하는데,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형병원의 경우 외래진료는 보통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진료를 보기 위해 이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진료 시작 30분 전에, 이르면 1시간 전에도 와서 진료를 기다리기도 한다. 이들을 위해 병원들은 환자분류와 발열체크 등 업무를 7시 정도부터 시작한다. 진료가 끝나는 오후 5시 정도가 되면 외래환자의 발길이 끊긴다. 토요일에도 오전 8시부터 4시간 정도 외래진료가 있다. 그런데 건보공단의 '방역인력 지원사업' 내용을 보면 지원인력의 근무시간이 주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돼 있었다. 그는 "근무시간을 조금만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면, 전국적으로 5천400여명 규모의 지원인력을 병원들이 더욱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사전에 현장 의견을 수렴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탁상행정(卓上行政)'은 현실적이지 못한 행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탁상에서 행정을 좌우하는 비실제적인 것으로 말미암아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탁상행정을 펴는 당국을 비판하는 기사는 70여년 전 신문에도 등장한다. 정부·공공기관들은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정책 수립과정에서 시민이나 전문가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있지만, 현실과의 괴리를 좁히지 못하는 정책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인사나 유행가도 새로운 세대에겐 낯선 존재가 되는 것처럼 탁상행정이라는 말도 언젠간 신세대에게 존재감 없는 낯선 말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남는다.
/이현준 인천본사 사회부 차장 upl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