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적 지정전부터 '지하벙커' 위치
작전상 꼭 필요 '보전' '보수' 상충
郡 "관광지 맞게 보완 軍에 요청"
국가 문화재로 등록된 경기도 내 고구려 옛 성 아래 설치된 군사진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지역이 삼국시대에 이어 오늘날 분단 현실에도 군사적 목적으로 쓰임새가 많기 때문에 가치충돌이 발생한 것인데, 문화재·군사 가치 모두 충족시킬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일 찾은 연천군 미산면 당포성 유적지.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로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곳은 당시 치열했던 세력다툼을 연상시키는 고구려 양식의 성곽이 일부 남아있다.
가장 큰 특징은 13m 높이의 천연 주상절리 성곽이다. 임진강 본류와 당개 샛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까닭에 웅장한 절벽이 자연 성곽을 형성하고 있다. 이를 발판 삼아 동쪽에 성곽을 쌓은 고구려는 동쪽에서 접근하는 신라군을 상대할 최전방 진지로 삼았다.
고구려 정취를 느끼기도 잠시, 이내 성곽 가운데 위치한 주황빛 차양막과 빛바랜 초록색 출입문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성곽이 위치한 언덕에 지하벙커로 추정되는 진지가 위치해 있었다.
곳곳에 벙커와 연결된 '숨구멍'이 나와 있었고, 여기로 향하는 언덕길은 폐타이어를 쌓아 만들어져 있었다. 그 뒤로 참호와 진지도 설치돼 있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관광객 A(57·여)씨는 "고구려 문화유적이라고 해서 찾아왔는데, 철근으로 만들어진 군사시설이 있어서 의아했다"며 "고구려 성곽보다 저 차양막이 더 눈에 띈다"고 말했다.
사적 468호인 당포성 아래엔 1970~1980년대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군사시설이 위치해 있다. 삼국시대 군사요충지란 입지가 오늘날 분단 현실에도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만들어질 당시엔 문화재 지정이 안 됐지만, 2001년 경기도지정문화재 지정에 이어 2006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자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보전'과 군사기지법에 따른 군사시설 '보수'가 상충하게 된 것이다.
특히 280억원을 들여 연천군이 2013년부터 시작한 호로고루·당포성·은대리성 등 고구려 3성 종합정비사업이 진행되면서 해당 진지를 둔 고민이 본격화됐다. 해당 진지에 위치한 차양막이나 폐타이어 등이 관광지와 도저히 맞지 않는 외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지를 철거하려 해도 지하 벙커가 동쪽 성곽 아래를 파고들어 설치된 까닭에 문화재 붕괴 우려가 있어 힘들다. 게다가 군 입장에서도 작전상 해당 진지가 꼭 필요하다.
이에 연천군은 지난해 7월 28사단에 '연천 당포성 내 군사시설 철거 요청'이란 제목의 공문을 통해 군 당국이 시설정비에 나서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지난달 26일에는 '지하벙커 주변 교통호·차양막·계단과 같은 부속시설과 참호를 식생참호로 변경' 요청공문을 재차 보낸 상황이다.
연천군 관계자는 "작전상 필요하다는 28사단 입장에 적극 공감하지만, 고구려 문화재 가치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며 "공생에 바탕을 두고 외형이나 부가시설만 관광지에 맞게 보완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28사단 관계자는 "해당 진지는 군 작전상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진지라 완전 철거는 어렵다"고 했다. 이어 "고구려 유적이란 문화적 가치도 존중해야 하는 만큼 관광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진지 외관과 같은 측면을 개선·보완하는 협의를 연천군과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오연근·김동필기자 phii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