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_-_기명칼럼필진.jpg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코로나 팬데믹이 지속되는 동안, 언론과 학계에서는 코로나 이후의 사회적 삶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가 코로나 특유의 비대면 대화를 통해 자못 진지하게 이루어졌다. 근본적인 변화가 이미 발생했고 설사 코로나가 종결되더라도 과거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견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도 사람들은 관성적으로 자기 나름의 삶을 회복해갔다. 코로나 이전에 비해 위축되어 있었지만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는 물리적으로 뛰어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를 뛰어넘는 '소통'능력을 잊지 않았다. 생존을 위한 소통을 넘어서 집단지성의 창의성 또한 꿈틀거리는 본능이었다. 마스크에 호의적이지 않고 자유를 중시하는 서구인들이 축구와 야구 경기장에서 보이는 모습은 또 한 번의 유행을 경고하는 와중에서도 활기에 넘쳐 있어서 이미 코로나의 공포에서 벗어난 듯하다.

사회 마다의 역사와 문화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 적응하는 방식을 서로 다르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코로나가 다소 약해지면 사람들은 곧바로 그 이전의 삶을 다시 드러냈다. 한국인들처럼 집단주의적 심성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국가의 강제적(?) 격리를 규범적으로 수용하는 한편, 과거에 비해 소수의 사람들이 어울리는 심도있는 교류방식을 만들어낸 듯하다. 향후에 한국인들은 떼를 지어 모여서 노래하고 즐기는, 그러나 그 규모는 친밀도 높은 소수를 취하는 변화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재유행 경고에도 서구인들은 활기
결혼정보회사 '동질혼' 늘어나고
고독한 시민은 가족과 소통 갈구


결혼정보회사를 통한 동질혼이 상당한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20대 중후반에 이루어지는 결혼에는 스스로의 사회적 교류와 감성적 유대가 중요했다면, 30세를 훌쩍 넘겨 이루어지는 결혼은 긴 사회적 단절과 과도한 직업활동으로 인해 이들을 엮어주는 제3의 제도를 필요로 하였다. 잠깐이나마 코로나 팬데믹이 사회적 교류의 장을 제한했었다는 편의적 설명이 억지스럽지만 부가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결혼방식이 압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배경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결혼정보회사 혹은 소수의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비공식적 중매제도는 한국사회의 계급구조가 정착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래 이미 제도화되고 있었다. 상류층 사람들은 중산층이나 하류층에서 올라오는 '신데렐라'나 '개천의 용'이 불편했을 수도 있다. 반면 중산층이나 하류층의 내부분화는 미미해서 실질적인 이질혼이 비교적 쉽게 이뤄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의 폭등, 노령화로 인한 노후비용의 증가, 출산 및 양육 등의 비용 증가 등으로 인해 중산층 내부에서도 질적인 분화가 급속하게 심화되었다. 이제 결혼은 결정적인 위험(danger)에 노출되어 있어서 위험(risk)이 매우 큰 도전이다. 사람들은 그 리스크가 위험으로 전화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애완 대신 '반려동식물' 지위 얻어
비인간 소통대상 확대 변화 가속화

노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결혼연령이 늦어지며, 비혼이 증가하면서 세대 구성원의 수가 줄어들어 1·2인 가구의 비율이 64.1%에 이르고 있다. 이미 지방에서도 1·2인 가구에 특화된 소형주거시설이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3세대 이상의 대가족 구성은 더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동일한 공간 안에 거주하는 가족간의 소통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비단 도시인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사회에서 벗어나 일상화된 고독을 느낀다. 그야말로 '고독한 군중'의 모습이다. '고독한 시민'들은 가족과의 동반과 소통을 갈구한다. 그러나 사람 가족이 아닌 동물 가족이 그 자리를 메꾼다. 개나 고양이와 같은 친숙한 동물뿐만 아니라 토끼, 패럿, 기니피그, 햄스터, 다람쥐 등 포유류 외에도 조류, 어류, 파충류, 양서류, 갑각류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더이상 애완동물이라 부르지 않고, 자유의지와 권리를 가진 반려동물의 지위를 얻어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 관상적 필요나 공기정화 등의 기능을 넘어서는 반려식물도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인간들간의 사회적 교류를 제한함으로써 이러한 고독을 더욱 심화시켰는지도 모른다. 반려동물과 더불어 사는 어려움 때문에 반려의 대상이 더욱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 정적인 삶이 더 독백적이고 정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사회는 이미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개인화와 개인주의화가 지배적이고, 직접적인 교류가 사라지고 간접적인 교류를 통해 결합하며, 그를 대신하는 비인간 소통대상이 확대되는 그러한 사회적 삶이 점차 지배적이 된다. 2년 이상에 걸친 코로나 팬데믹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했지만, 그 이전부터 사람들은 그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