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화 이후의 역대 정부들은 다원민주주의 하에서 목소리가 큰 사회집단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여 미봉적 해결을 취했던 데 반해, 현 정부는 '공정과 상식' 그리고 법치의 이름으로 이에 전면 대치하는 방식을 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면을 보면, 지탱가능한 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부드러운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실용적 권위주의'로 이행하는 양상이다. 과거에 '유신체제'와 '관료적 권위주의'를 만들어냈던 한국의 국가가 '포퓰리즘적 민주주의'로는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시도는 대통령탄핵으로 붕괴하였지만 문재인 정권의 정책적 난맥상은 '비효율적 민주주의'로 전락하고 말았다.
민주주의체제, 정치·경제조직 동반
한쪽 파국땐 전체 사회 붕괴 이어져
국가공격에 포퓰리즘 지속 불가능
민주주의체제는 자원분배를 둘러싼 국가 성원 간의 전쟁을 선거로 대체하는 체제이다. 역사적인 민주화 이행의 과정을 보면 전제적 권위주의적 정치권력이 물리적 폭력을 통한 지배를 포기하는 한편, 저항적 피지배세력 역시 대중동원을 통한 정치적 폭동을 자제하면서 선거를 통한 정치권력의 장악과 교체를 수용하는 거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때에 가능해진다. 이 과정을 통하여 사회경제적 자원의 정치적 분배 및 재분배가 자연스럽게 조정된다. 민주화 이행의 초기에는 정치적 목소리의 공간을 넓혀주기만 해도 충분했던 단순한 정치적 대립구도는 민주화와 자유화가 확장되면서 잠재해 있던 사회집단들의 요구가 분화하고 폭발하게 되면 매우 복잡다단해지게 된다.
이 민주주의체제는 기본적으로 정치체제이지만 동시에 경제체제와 동반한다. 즉, 진화하는 정치체제를 부담할 정도로 경제체제가 잘 작동하는가의 문제이다. 아무리 훌륭한 민주주의체제도 허약한 경제체제를 받쳐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정치체제와 경제체제가 동시에 지탱가능한 체제로 발전하지 않는 경우에 어느 한쪽에서 파국이 발생하면 그 파국은 전체 사회의 붕괴로 가기 마련이다. 기본적으로는 그 국가의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생존가능한 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정치적으로도 파국을 맞게 된다. 처음에는 포퓰리즘적 국가 혹은 권위주의적 발전국가로 나아가지만 극단적으로 국민의 생존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국가체제의 붕괴나 전제적 독재국가로 나아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체제의 비효율성 혹은 비효능감을 먼저 목도한다. 국민적 요구의 정치적 과잉과 국가의 미흡한 경제능력이 민주적 정치체제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대중들의 국가공격에 대해 정치권력은 포퓰리즘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지속적일 수는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정권이 그러한 대응방식을 취했지만 결국 정권재생산에 실패하는 것과 같다. 이 경우에 서로 다른 정치세력 간의 타협과 조정, 그리고 지지자 집단과 국민 전체에 대한 설득이 이루어지면 되겠지만 개방된 민주주의에 익숙한 국민들은 스스로에게 불리한 제안들을 수용하기를 거부한다. 결국은 국가의 강제력에 의한 통치가 실용적 권위주의라는 이름으로 비효율적 민주주의를 대체한다. 아마도 '국민의 힘' 정권은 사회집단의 모든 요구에 응하기보다는 경제체제의 존속에 유의하면서 선별하고 조정하고 억압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국민들 불리한 제안 수용하기 거부
동원된 민주주의로는 지탱 어렵다
정치체제나 경제체제는 모두 국민들이 참여하고 조직하고 운영하는 체제이다. 모든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체제의 한계 혹은 효율성을 인식해야 한다. 모든 체제는 기본적으로 자기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체제 하에서 확보된 중계적 위치 속에서 국가의 생존을 이어가는 대한민국이 목소리가 큰 집단들이 더 많아지는 '들뜬 혹은 동원된 민주주의'로는 지탱하기 어렵다. 민주주의에 능률을 더하는 방식이 법치를 내세운 '실용적 권위주의'의 외양을 띠게 될 것이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