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하게 혹은 감성적으로… 자연에 대한 ‘끝없는 감응’

안, 정리된 인식의 결과물 깊은 울림

강, 손의 감각과 시간의 누적 탐구

강행복_명상의 나무-12_2009, 한지에 목판, 76㎝×56㎝.
강행복_명상의 나무-12_2009, 한지에 목판, 76㎝×56㎝.

자연(自然)은 여러 의미를 품고 있다. 예컨대 존재이자 현상이며, 본질이자 환경이라는. 그리고 이런 자연은 언제나 예술가들에게 있어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작가 개인의 시선에 따라 다양한 구상과 표현으로 화면에 담겨왔다.

그중 안정민(1952~), 강행복(1952~2022) 작가는 목판화를 매개로 자연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마주하면서 단순한 풍경이 아닌, 감각과 인식 또는 시간과 기억이 교차하는 장으로 바라본다. 두 작가 모두 자연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닮아있지만, 자연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분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먼저 안정민의 자연은 단정하다. 그의 목판화에는 분명 자연이 담겨 있지만, 구체적인 형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작가만의 실험적인 선과 색채로 담아내고자 하는 자연을 새롭게 해체하고, 재조합한다. 따라서 그의 화면에 들어선 자연은 정리된 인식의 결과물이다. 응축되어 있으면서도 간결하게 그려진 형태는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낯설지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안정민 - 가로·세로·깊이-해인(海印), 2011, 목판, 실리콘캐스팅, 244×61㎝×4점.
안정민 - 가로·세로·깊이-해인(海印), 2011, 목판, 실리콘캐스팅, 244×61㎝×4점.

반면 강행복의 화면은 감성적이다. 그가 표현한 자연은 삶의 배경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이다. 나무와 바람, 하늘이 강행복의 화면에서는 감정을 지닌 생명체로 느껴진다. 직선과 곡선이 겹치고, 색과 색이 중첩되어서 만들어지는 화면 속 자연은 부드럽고 흐릿하다. 한눈에 깊게 들어오는 강렬한 이미지가 아닌 파도처럼 울렁거리며 잔잔하게 아른거리는 이미지이다. 이렇게 그의 목판화 속 자연은 천천히 겹치고 더하는 실험을 통해 표현된 흔적이다.

두 작가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형식의 선택과도 연결된다. 안정민은 절제된 구성을 통해 자연의 구조적 질서를 탐색하고, 강행복은 손의 감각과 시간의 누적으로 자연의 감성적 층위를 탐구한다. 따라서 이들의 목판화 속 자연은 함께 ‘그려지는’ 경험에 가깝다. 그 안에는 목판화라는 언어에 대한 실험과 질문, 그리고 자연이라는 대상에 대한 끝없는 감응이 녹아 있다.

우리 곁에 있는 자연은 동적(動的)이다. 움직이고, 바뀌고, 속삭이며, 가끔은 고요하게 자신을 감춘다. 안정민과 강행복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소리를 듣고, 그 안에 자신의 소리도 담아낸다. 직선과 흔들리는 선, 그리고 다양한 색조로. 그렇게 그려진 화면은 일종의 감각과 사유의 기록이다. 이들이 자연과 맺는 관계는 하나의 회화적 실험이며, 그 실험은 조용히 계속되고 있다.

/심민하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