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실한 장르영화로 동시대 우리 관객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관객 연령층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영화배우 한석규
지난 20일 오후 첫 시사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한석규는 '텔미썸딩' 이후 4년여만의 컴백이라 다소 들뜰만도 할텐데 시종일관 차분했다. '이중간첩'으로 자신의 9번째 필모그래피를 막 프린트해낸 그는 한국 최고의 배우답게 사려깊은 언어들을 꺼내놨다.

“'쉬리' '공동경비구역JSA' '이중간첩' 모두 남북문제가 공통적인 소재입니다. 하지만 '쉬리'는 가까운 미래가, '…JSA'는 현재가 시점인데 반해 '이중간첩'은 80년대 과거 이야기입니다. '이중간첩'은 과거를 통해 미래의 우리를 살펴보자는 의미의 영화입니다.”

1980년, 동베를린 주재 북한대사관 소속 인민군 소좌인 림병호가 위장귀순한다. 중앙정보부의 의혹과 혹독한 고문을 견뎌낸 그는 '자유대한 만세'를 소리높여 외친다. 3년후 중앙정보부에 몸담게 된 그는 고정간첩으로 라디오 DJ인 윤수미(고소영 분)와 접선, 고급정보를 빼낸다. 하지만 북측은 그를 용도폐기처리해 안전을 꾀하려 하고, 남측은 권력유지의 방편으로 간첩조작사건에 그를 옭아매려한다.

배신과 위기를 감지한 림병호는 간첩조작사건 자료를 외신기자에게 넘기고 윤수미와 함께 브라질행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끝내 북측은 브라질까지 쫓아가 그를 살해한다.

한석규가 연기한 림병호는 분단의 비극과 폭력의 현대사, 더 나아가 통일을 온 몸으로 관통하는 캐릭터다. '반공'이나 '이념'을 들이대면 림병호는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분단'의 시각으로 보면 림병호는 배신당하고 역이용당한 분단의 희생자다. 영화는 가족이 볼모로 잡혀있는 림병호와 윤수미가 신념에 충실한 인물인 동시에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지닌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강조한다.

림병호에게서 막 빠져나온 한석규가 분단과 통일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남북한내에는 집단이든, 개인이든 통일을 원치 않고 분단 체재가 그대로 가길 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제 세대안에 통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한 몸이 움직여야지 반쪽이 따로 놀면….”

영화와 자신의 연기는 또 어떻게 봤을까? “림병호는 조금씩 실체가 드러나야하는 캐릭터였는데, 확 드러내기 보다는 숨겨야하는 연기는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영화와 자신의 연기에 대한 한석규의 날카로운 분석은 계속된다. “림병호나 윤수미나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할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닙니다. 대신 유머가 좀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게 좀….”

관객들의 기대치와 개인적인 의욕때문에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아쉬운 부분이 먼저 다가온다는 한석규. '의식하는 무의식의 연기'를 평생에 걸쳐 이뤄내려 하는 그이기에 자신의 연기나 영화에 대해 인색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거의 모든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그는 한국영화에 대한 평가도 빼놓지 않았다. “연기로 승부를 거는 색깔있는 배우들이 우리 영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이지만 장르의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별로 없다는 부분은 아쉽습니다.”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준비되면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나설 수도 있다는 뜻을 비춘 한석규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멜로, 스릴러, 액션,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평생 해낼 계획이다. “충실한 장르영화로 동시대 우리 관객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관객 연령층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이중간첩'

'이중간첩'(24일 개봉)은 '분단'이라는 우리 현실만큼이나 시종일관 진지하다. 같은 소재의 '쉬리'가 액션을, '공동경비구역 JSA'가 코미디를 '분단'속에 섞어낸 반면 '이중간첩'은 정통 드라마의 길을 택했다. 또 '쉬리'가 '응징'을, '…JSA'가 '화해'를 통해 보는 이들에게 안도감을 안겨준데 비해 '이중간첩'은 '비극'이라는 현실을 간다.

영화는 림병호와 윤수미간의 슬픈 사랑을 한 축으로 하고 있지만 보는 이들에게 그 사랑을 강요하지 않는다. 남북의 대립, 대결이라는 이분법적 공식에서 빠져나온 영화는 '80년대 시대 상황'과 '이중간첩의 삶과 희생'을 통해 남북분단의 우리 현실을 되돌아보게한다. '공공의 적' 시나리오를 쓴 신예 김현정 감독은 쉽지않은 길을 용감하게 헤쳐나갔다.

영화가 담아낸 '간첩'이나 '중앙정보부의 간첩 조작' '중앙정보부의 북파 프로젝트' 등은 지금도 결코 자유스럽지 못한 민감한 사항이기에 김현정 감독의 뚝심을 높이 살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중간첩'은 가벼운 '조폭 변주 코미디'가 득세하는 현재의 극장가 분위기를 감안할 때 한국영화의 지평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

완성도 면에서도 영화는 세심한 노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림병호가 동독에서 서독으로 위장귀순할때 넘어선 '체크포인트 찰리'를 체코 프라하에서 오픈세트를 만들어 재현했다. 무엇보다 오프닝을 장식하는 평양 김일성 광장의 군사 퍼레이드 장면은